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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Sep 22. 2024

보금자리를 옮기다.(1)

나의 여름 이야기(2)


 모름지기 일은 느닷없이 찾아오는 법. 이번 일도 그랬다.


 집과 나의 근무지인 학원까진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다.

지난 20여 년간 일을 해오면서 이렇게 먼 거리를 통근한 적은 없었다. 길어야 도보로 10분 남짓, 그랬기에  나름 손이 많이 가던 아들 둘을 건사하며 그 긴 시간을 견뎌왔는지도 모른다.


 낯선 동네에, 바닥과 천장뿐인 텅 빈 건물을 하나씩 채워가며 제법 먼 거리를 왕래하는 것이 힘에 부쳤던 걸까, 아니면 우여곡절 끝에 막상 학원을 오픈하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였을까,  난 그 이후로 시름시름 앓는 일이 아졌다.


 한 달에 두세 번 장염은 기본이고, 툭하면 체하고 잦은 몸살로 앓아눕는 일이 많아졌다. 하다 하다 119에 실려가는 일까지 발생했으니  일반적인 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 누워 편히 쉴 수도 없는 처지였다. 이제 막 오픈을 한 상태라 강사를 따로 둘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업과 상담, 홍보, 갖은  업무처리까지 오롯이 우리 부부 몫이었다. 몸이 배겨 나지 않았다. 무슨 수라도 써야 했다.




사실 근무지 근처로의 이사를 생각한 건 학원 자리를 보러 다닐 때부터였다.

이미 성장해 각자  따로 떨어져 생활하고 있었기에 건사해야 할 자녀들도 없었고, 당시 입주할 땐 새 아파트였지만 이미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어  구축 아파트가 되어버린 우리의 보금자리를 한 번쯤 옮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무 시간이 어중간해 통근 시간까지 포함해 버리면 나만의 여유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아침에는 주로 식사와 도시락 싸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나이가 들수록 먹거리의 중요도가 높아져서인지 하루 한 끼라도 제대로 차려먹고 싶었다. 그리고 학원 근처에는 딱히 먹을 만한 식당이 없는 것도 나의 일손을 번잡하게  이유 중 하나이다.


 개원 초반에는 할 일도 많고, 시간이 빠듯해 저녁은 밖에서 사 먹거나 시켜 먹기도 했는데, 늘 그렇듯 바깥 음식에 곧 질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퇴근하고 집에 가서 먹자니 시간도 늦고  파김치가 된 나는 손 하나 까딱하기도 싫어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자 서서히 지쳐갔다. 벌여놓은 일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일단 고민만 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입주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 낡은 아파트에 누가 선뜻 들어오겠냐며 반신반의했지만 부동산에 집을 한 번 내놓아 보기로 한 것이다. 근처에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도 연락 한 번 오지 않았다. 난 혹시나 하는 기대만 품은 채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집을 세놓았디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낼 때 즈음,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부동산 업자는 몇 팀 데리고 두서너 번  보러 오더니 이사 날짜며 보수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은근슬쩍 나의 의사를 타진해 왔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말겠거니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빗나갔다. 몇 번의 조율이 오가더니 상대편이 덥석 미끼를 문 것이다. 그리곤 오히려 내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새로운 상황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땐 낚인 건 나인 것 같았다. 찌에 물린 채 낚싯대가 이끄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랜 기다림이었지만 막상 계약을 앞두곤 마음이 심란했다. 결혼 후 전세를 4~5번 돌며 10년 만에 마련한 첫 집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무지렁이들이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겪을 때마다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했다. 우리 네 가족의 가장 빛나는 시절울 함께 한 고마운 은인 같은 이곳을 떠난다니 막역한 지인과 헤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

 

 그리고  나를 주춤하게 한 건 현실적인 문제도 컸다. 세를 놓으려니 손 볼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밥벌이를 하느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서 수리하려고 하니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사에 드는 제반 비용은 또 어떤가? 많은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낯선 곳으로 이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결정일까?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난 꼬박 하룻밤을 끙끙대다가 결국 이사를 결정했다. 이때가 아니면 영영 눌러앉을 것 같았다. 타당한 명분과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더 아상 뭘 주저하겠는가?

난  새로운 상황 속으로 기꺼이 나 자신을 밀어 넣기로 했다.




 가계약금을 받고 나자 일의 속도가 급물살을 탔다.

상대방이 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한 달 안에 집을 비워야 할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아상, 될 수 있으면 상대방의 요구에 맞춰주기로 했다. 날이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시작되었다.

가족들과 코타키나발루로 여름휴가를 떠나기 불과 일주일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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