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야, 로스쿨 가."
친한 언니가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불쑥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언니는 내가 알겠다는 대답을 할 때까지 굴하지 않고 '로스쿨을 가야 하는 이유'를 어필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한창 꽂혀있던 나는 무슨 학위 수집가라도 되는냥 로스쿨도 한번 도전해볼까, 란 생각을 했었다고 맞장구를 쳐줬다. 그 말에 언니는 이게 가능하겠다 싶었는지 본격적으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해 나름 자리를 잡은 사회인이 로스쿨을 간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로스쿨은 야간대학도 없을 뿐더러, 직장인들의 못다한 학위 로망을 채워주는 부류의 대학원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등록금도 등록금이지만 공부량이 어마어마하다. 내가 우영우만큼 미친 천재여서 누군가 학자금과 생활비를 다 대주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일단 생업을 중단하고 나인 투 식스는 물론 그 이상을 공부에 올인해야 한다.
그럼에도 언니가 '김지나 로스쿨 보내기'를 주장하는 이유는, 흔히 말하듯 내가 아직 '자리를 못 잡아서'다. 정규직에, 어느 정도 명예도 있고, 수입도 괜찮은, 서울대 타이틀이 어울리는 그런 자리.
"아까워서 그러지~"
"대체 뭐가요."
"아니~ 너 정도면~ $%^#도 할 수 있고 @#!%도 좋고 $@#%g한데~"
나를 걱정해서 하는 이야기란 걸 알면서도 언니 말이 더 이상 뇌에 머물지 않고 한쪽 귀로 흘러나가기 시작한건 "말 타는 것 좀 줄이고..."라는 대목에서였다.
'이거 참 누구한테 이해받기 힘든 일이구나.'
나는 씁쓸한 마음을 술잔으로 감추고 언니의 일장연설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우리 엄마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가 석사를 졸업하고 여행사에 취직했을 때. 엄마로선 참 기가 막힌 노릇이었을 거다. 잘하는 공부나 계속해서 어디 번듯한 연구원이나 교수가 됐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여행사라니. 그래도, 그래봤자 내 나이 아직 20대였는데, 한번쯤 그런 경험 해봐도 좋지 라는 너그러운 응원은 해줄 수 없었던 걸까.
여행사 일은 정말 힘들긴 했다. 그만둔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가장 외롭고, 자신없고, 불안했던 시기였다. 녹초가 돼 집에 오면 밥도 먹기 싫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또 무슨 사고가 터지진 않을까 24시간 긴장 상태에, 이해심이라고는 1도 없는 진상 손님을 상대하고 난 날이면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미워 보였다.
그러면서 점점 집에 전화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는데, 솔직히 그때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도저히 생겨나지 않았다. 전화를 하면 엄마는 하소연, 아빠는 취조(?)를 시작한다. 내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건성건성 대답하면 또 타박이 이어졌다. 여행사에서 일한다는 대전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힘들어하는 모습을 봐도 안쓰러움보다 답답함이 앞서셨던 것 같다.
"니 인생은 실패다."
끝내는 이런 말까지 나왔고, 내가 무어라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이 좀 무뚝뚝하셔서 자식 걱정되는 마음을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신다는 걸 안다. 나 또한 무뚝뚝해서 넉살좋게 받아치질 못했다. 뼈속까지 무뚝뚝한 경상도 DNA가 박힌 가족들이라 제대로 풀지도 않고 유야무야 지나갔다. 그래서 가끔 장기기억 저장장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가 문뜩 떠오르는 CM송처럼 소환돼 내 마음을 쿵 하고 울리곤 한다.
물론 어떤 점에서는 '실패'라고 할만한 순간들도 있었다. 원하는 직장에 가지 못했을 때, 일이 적성에 안 맞아서 그만두고 나왔을 때, 사랑했던 사람을 내 인생에서 내보내기로 했을 때.
하지만 덕분에 더 재밌고, 다채롭고, 다음을 알 수 없는 스릴 넘치는 삶을 살게 됐다. 나는 아직 내 인생이 로스쿨로 '리셋'해야 할만큼 실패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승마를 시작하기 전, 일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면서 수입이 부쩍 늘었다. 바빠서 놀 시간은 없는데 쓸 돈만 많아진 나는 비싼 술들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가고 십만원이 넘는 와인을 만원짜리마냥 주문해서 마셨다. 점차 3만원 이하 와인은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됐고 수십만원짜리 와인도 가끔가다 한번씩은 마실만한 만만한 사치품이라고 생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어느날,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30만원짜리 와인을 마셨으니 다음엔 40만원, 50만원짜리도 괜찮겠다 싶지 않을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그러다보면 내가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도대체 얼마나 비싼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야 그 다음을 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몇천만원짜리 로마네 꽁띠 같은 와인만 마시는 삶이라면, 만족스러울까?
마릴린 먼로처럼 매일 아침 샴페인으로 눈을 뜨는 나날이라면, 충분히 행복할까?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수천미터 상공 위에서 수십만원짜리 샴페인을 홀짝이며, 도착한 여행지에서는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머물고, 그렇게 살면 만족할까?
오히려 와인 한병을 비우고 나면 아쉽고 헛헛해서 또 다른 와인 한병을 더 따곤 했다. 그렇게 혼자 술을 퍼마시다보면 마지막은 나도 모르게 와인잔을 손에 든채 소파에서 잠드는 일의 반복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고 아무리 좋은 술, 좋은 음식, 좋은 옷을 입어도 그 '좋음'은 그저 항상 찰나였다. 나는 계속 '더 좋은 것'을 찾으며 '더 이상 닿지 않는 저 너머의 것'을 꿈꾸다가, 어쩌다 손에 그것을 쥐더라도 그 성취감이 너무나도 빨리 사라져버리는 걸 거듭 목도하게 된다.
그건 그냥 여우의 신포도 같은 생각일 뿐이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그럴지도 모르지.
칸타파와 아침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술 마시는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와인 한두잔 마시고 나면 이제 그만 마시고 싶다, 더 안 마셔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비교적 말짱한 정신으로 집에 돌아와 잘 자고, 다음 날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승마장 갈 준비를 한다.
그 어떤 전 남친도, 다음날의 출근도, 무엇도 내가 술을 줄이게 하진 못했었는데, 이 어려운걸 칸타파가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