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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신부인 Oct 18. 2024

120일 아기랑 험난했던 첫 여행

세종, 공주, 부여군 방문기

임신 전, 여행을 줄기차게 다녔다.

난임휴직 중에도 우울감을 떨쳐내고 집에만 있는 갑갑함을 해소코자 줄기차게 다녀왔다

집돌이 남편과는 다르게, 집에만 있는 건 성에 차지 않았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느낌은 번번히 짜릿했다.

나의 사고는 연역적이라기 보단 귀납적이다. 경험이 주는 격렬한 느낌이 늘 그리웠다.

그랬던 내가... 임신과 출산과 양육 과정 동안 밖으로 나가고픈 마음을 참고 억눌렀다.


'아기가 100일 넘고, 영유아 검진을 통해 충분히 백신 접종까지 완료하면... 그 때까지만...'

이런 마음으로 참았다가 결국 폭발했다. 미치도록 여행이 가고 싶었고 집을 떠나고 싶었다 

계획을 세우고 이를 그대로 실행시키는 맛에 살았던 내가,

계획이 조금 어그러져도 하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너털웃음을 짓게 됐다.

육아는 일상 반복인 것 같으면서도 변칙적이니까!


일정 잡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문제였다.

혼자 여행을 다닐 땐 나 하나만 생각하면 됐는데, 이제는 집단이고 절대 혼자 다닐 수 없다.

명실공히 독박육아의 주양육자로서 내 배에서 난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

의사 표현조차 제대로 못하는 아기를 혼자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원래 아이 한 명을 제대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하나,

핵가족화가 가속되다 못해 1인 가구가 더 많아지고 있는 조건에서 최선의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고로 든든한 나의 우군, 남편이 필요했다.

육아휴직으로 일정이 자유로운 나와 달리, 직장에 다니는 그는 시간을 빼기가 어려운 편이다.

하여, 그의 일정에 맞추느라 다소 맘에 안드는 일정이라도 급히 여행계획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은 뒤로 남기기로 했다.

'여행을 갈 수 있게됐다!' 이 하나만으로 당장은 족했으니!

강원도보다는 충청도 지역을 택했고, 평소 맘속에 담아뒀던 남쪽을 택했다.

일정을 짜도 타이트하게 짜고, 그 일정대로 지켜내던 나였는데, 순순히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변동이 생길 것이다- 그리 맘을 먹으니 화가 덜 나고 순탄하게 보낼 수 있었다.


사랑스러운 똥쟁이!


예상대로 출발하는 날부터 차 안에서 줄기차게 똥을 싸는 우리 아기!

평소에도 변을 못 보진 않았으나 여행가는 줄은 어찌 알고 잔뜩 비웠을까!

아마 혼자 있었다면 당황해서 대응하기 어려웠겠지만 다행이 과업을 함께해줄 파트너가 있지 않은가!

생애 처음으로 고속도로 휴게소 수유실에 들르게 됐다.

그간 실내 방문지 어딜 가도 수유실을 들를 일이 없었으나 

아기를 낳고서 눈을 씻고 찾아보니 의외로 감사하게도 필요한 시설이 구비돼 있는 곳들이 많았다.

더구나 깔끔하고 정돈도 잘 돼 있으며 쾌적하게 관리가 돼 있는 곳들이 태반이었다.


곧이 곧대로 달렸다면 2시간 반 남짓 걸렸을텐데,

아기랑 함께 가니 같은 거리도 3~4시간은 더 걸렸다.

계획한 것이 점차 틀어져가고, 주말을 껴서 길이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혼자 갈 때보다 체력은 2배 더 들었다.

우는 아이를 케어해야 했고, 똥 싸는 아이를 닦아줘야 했고, 밖에서는 2시간 마다 수유를 해야해서 힘들었다.

넌 대체 누굴 닮아 울고 보채는 목소리가 그리 큰거야?

... 라고 하기엔 그 대상이 나인 게 확실해서 할 말이 없다.

너의 그 타고난 생존 본능, 기본에 충실한 감정, 직설적인 면모까지 나를 빼다 박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더니...


한데, 피곤한 건 우리 부부 뿐만이 아녔나보다.

환경 변화로 영향을 받은 건 아기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걷는 건 우리가 걸었는데, 의외로 아기가 예민하게 굴지 않고 통잠에 긴 밤잠까지 쭉 자준 것이다!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세종수목원 온실에서


이동시켜준 건 아빠, 엄마인데 왜 네가 지치니?!

그래도 대견하기만 하다. 여행까지 와서 보챘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마 남편은 학을 떼고 두 번 다신 안 가겠다고 하겠지!

그런 상황을 막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뒷좌석에서 나를 대신해 운전해 준 남편에게도 감사했다.

운전만 한 게 아니라 방문지에 가서도 아기를 안아주고, 유모차를 끌어주고, 짐도 들어줬으니!

돌이켜보면 감사한 것 투성이다.



2박3일간의 아기랑 첫 여행,

체력적으로 험난하고 힘들었지만 잘 따라와 준 남편, 아기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여독을 푸는데 하루면 될 줄 알았는데, 3일이나 걸렸지만 정말 행복하고 뿌듯해서 기억에 오래 남겠다.

잠시, 또 체력 회복하느라 쉬겠지만 근처라도 또 놀러가서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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