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복터진 주말부부 중 아내의 하소연
청기백기 게임 하는 줄 알았다.
A지점으로 와! 다시 B지점으로 가!
월요일은 안 되니까 화~목요일 사이에 와!
노상 출장만 다니니 내 일 못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사정 잘 모르는 팀장은 내게 한 소리 한다.
그렇게 출장 다닐거면, 그쪽으로 희망인사 내라고.
그 때마다 표정 싹 바꾸고 단호히 말한다. "싫어요."
원해서 다니는 출장이냐? 아니다.
출장 다니는 걸 좋아하냐? 역시 아니다.
놀러다니면서 여기 저기 다니는 것과
일로서 여러 지역을 오가는 건 차이가 크다.
일단, 하나도 즐겁거나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거!
평소에 일을 가리거나,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꺼리진 않는 편이다.
딴에는 중간급인 사회중년생이라
후임들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몸이니,
단순 작업부터 뇌를 거쳐야 하는 어려운 일까지 도맡곤 한다.
근데 회사 이것들이 나를 진짜 찾아도 너무 찾는다.
참을만큼 참았다만, 일 좀 그만 시켜라...
특히, 필요 이상의 부담스러운 일들과
내 승진, 명예, 포상에 하나도 도움되지 않는 그런 일들.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걸 고려해달란 말이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니, 시키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면
돈 좀 제대로 주고 하든지.
보람은 됐고 수당으로 주세요.
수당이 아니라면 다른 보상 수단을 주든지.
내 희생이 당연한 줄 아나?
무슨 갈아만든 음료도 아니고 작작 갈갈이 했으면 좋겠다.
요즘 드는 생각.
일부 능력 있는 아나운서들이
프리선언을 왜 하는지 그 심정만큼은 이해가 가겠다는 거.
희생을 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하등 보람이 없다.
대체 이 일을 해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부터,
자랑스럽게 이 일을 했다고 내세울 수 있느냐에 대한 근본적 의문까지,
상당한 회의감과 피로가 누적되었다.
내가 잊혀지길 바라는 마음과
한편으론 그러지 않길 바라는 양가감정이 늘 공존했다.
결혼한지 이제 3년이 되어가는 신혼부부인데,
이렇게 일만 주구장창하고 다니면, 가족 계획은 어찌하누.
집에서 꽃같은(?) 남편이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는데.
아이 여부가 중요한 결혼 고려 요소는 아니었대도
해보고 안 되는 것과 그냥 안 낳겠단 건 관점이 다른 셈.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지 않겠는가- 싶다.
아주 아이 생각이 없는 것도 아녔으니.
거기다 현재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도망갈 수 있는 수단은
출산휴가에 육아휴직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내 나이가 평균적으로 그럼직한 나이기도 하고,
사내에서도 출산휴가에, 육아휴직이라고 하면 이해하니까.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제도 사용자라고 배려받아도 그러려니 하니까.
오죽했으면 일을 피하기 위해 아이까지 생각하게 됐을까.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게 됐을까?
오랜 장거리 연애에 주말부부 생활까지 하느라 지쳤으니,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게 되면
둘 또는 셋이서 함께할 시간이 늘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교통비 하며,
혼자 쓸쓸히 있어야 하는 시간도 줄지 않을까?
일도 좋지만, 내 개인의 삶도 있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그렇듯
일과 가정 혹은 일과 생활의 균형은 늘 맞추기 쉽지 않다.
잠재적 계획 실행을 위해
남편을 통해 엽산을 구매해보았다.
배란 테스트기와 임신 테스트기도 구비했다.
자 남편, 준비하시고~ 쏘세요!
저는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했으니
몸만(?) 오시면 됩니다.
가수 엄정화의 '초대'라는 명곡이 있으니,
그 가사를 짤막하게 소개하도록 한다.
오늘을 기다렸어, 이런 밤이 오기를
매주 쉽지 않은 보랏빛 밤,
당신과 언젠가 함께할, 그 밤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