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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Feb 27. 2024

『관찰력 가르는 법』 사도시마 요헤이 지음

같은 것을 달리 보이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이 책의 부제목은 〈같은 것을 달리 보이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이다.

책 뒤표지에 “관찰이 전부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하라. 그리고 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에서 배워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어록을 보고 읽었다.     


사람의 눈은 이상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광경을 보고있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때문이다. 직업과 연관해서 한동안 길가에 교통표지판만 눈에 들어오던 적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관심을 가지면 보이고 관심이 없으면 안 보이는 것이 사람의 눈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지은이는 관찰의 사례로 뉴턴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것을 든다. 관찰이란 무엇인가. 애초에 관찰이란 불교에서 온 용어다. 과학이란 관찰의 역사이기도 하다. 철학자들도 관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 왔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추론해낸 것은 ‘질문’에 있다고 한다.      


관찰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상태나 변화를 객관적으로 주의 깊게 보고 조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관찰력은 ‘객관적으로 주의 깊게 보는 기술’과 그를 통해 얻은 것을 ‘조직적으로 파악하는 기술’의 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관찰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 가지 요인이 있다. 


① 관찰을 방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상식’과 ‘편견’이 관찰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존재다. 우리는 눈으로 관찰하지 않는다. 뇌로 관찰한다. 뇌 안에서 무엇을 볼지 먼저 정해 두고 뇌가 보고 싶은 것을 추론하는 식으로 눈을 통해 볼 뿐이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서 시각 정보는 인지하는 데 10% 정도밖에 쓰이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고에 필요한 ‘언어’와 ‘개념’도 관찰을 촉진하는 동시에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상식, 편견, 언어, 개념 이러한 것은 전부 뇌의 인지에 관여한다. ‘인지’는 심리학 용어로 인간이 외부에 있는 대상을 지각한 후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거나 해석하는 과정을 말한다. 관찰은 뇌 속에 있는 인지를 바꾼다. 동시에 인지는 관찰의 구조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인지와 관찰은 무한 반복을 되풀이하지만, 무의식적인 인지를 파악하려면 ‘가설’이 효과적이다. 가설을 언어화하고 의식함으로써 무의식적인 인지도 의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찰은 기존의 인지가 전혀 바뀌지 않는 이미 아는 사실을 전제로 바라보는 상태다. 반면 좋은 관찰은 기존의 인지를 흔든다.     


② 신체 · 감정이다. 관찰은 우리 신체와 오감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그 상태에 따라 관찰의 질이 크게 좌우된다. 과거가 사실 축적이 아닌 것처럼 관찰 대상 또한 절대적이지 않다. 관찰하는 주체의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우리는 ‘감정’이라는 필터를 통해 관찰한다. ‘화’란 소중한 것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주의가 향하는 상태이다. 자신의 가치관이 부정당할 때 화는 들끓기 쉽다. ‘슬픔’은 ‘없는 것’에 주의가 향하는 상태이다.    

  

③ ‘맥락’이다. 인간의 뇌는 무언가에 주목하면 거기에 ‘목표를 고정’해 버리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주목하기 어렵다. 시간 축의 전후를 감안하지 않고 그 순간의 정보만으로 판단하는 일이 많다. 대상만 관찰하면 관찰을 그르친다. 시간적, 공간적 맥락을 동시에 관찰해야 대상에 더 다가설 수 있다.     


소개한 관찰을 방해하는 ‘요인 인지 편향(=뇌), 신체와 감정(=감각기관), 맥락(=시공간)이 버그를 일으키기 쉽다’라고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관찰의 정밀도는 달라진다. 이 세 가지를 총칭해서 ‘안경’이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은 이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이 어떤 안경을 쓰고 있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쓰고 있는 안경에 대한 이해가 관찰을 촉진한다.     


인간의 뇌는 모르거나 불확실한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부족한 것을 찾아서 곧바로 행동하고 싶어 하며 모든 것에 임시라도 답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만 일어나진 않는다. 지금은 변동성 Volatility, 불확실성 Uncertainty, 복잡성 Complexity, 모호성 Ambiguity의 약자인 VUDA(뷰카) 라는 말로 표현하는 혼돈으로 가득 찬 시대다. 코로나19, 기후 변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우리 사회의 모든 측면을 위협한다. 세상은 통제할 수 없을뿐더러 완전히 이해할 수조차 없다. 잘못된 정보나 선전 등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인지 편향에 휩싸이게 될 가능성은 커졌다.      


이제 제대로 멈춰 서서 관찰하지 않으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양극화로 몰릴 수 있다. 세상만사는 복잡하고 자기 모순적이며 애매모호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정답주의’에 빠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관찰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없다. 자신의 가설에 물음을 제기하고 새로운 관찰을 시도하는 사람은 통찰력에 도달할 수 있다.      


관찰력을 기르면 인풋의 질이 높아진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질 높은 정보가 점점 축적된다. 인풋이 쌓이면 ‘감성’이라고 하는 것이 몸에 붙는다. 감성이 쌓이면 깨닫는 것의 질과 양이 압도적으로 늘어난다. 아웃풋의 질도 높아진다. 이 궤도에 올라타기만 하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일만 남는다. 관찰력이야말로 다양한 능력으로 이어지는 도미노의 첫 블록이다. 관찰력을 기르면 과거 감옥이라고 느꼈던 자신의 몸도 최강의 무기로 바꿀 수 있다. 자신의 뇌, 감정, 몸을 좋아하게 되고 그 힘을 마음껏 쓸 수 있다.    

 

가설은 관찰을 시작할 때 최강의 도구다. 예를 들어 2,5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불, 공기, 물, 흙’으로 세상이 구성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가설을 바탕으로 세상을 관찰하며 깊게 사고했다. 가설을 먼저 세우고 그 가설을 바탕으로 세상을 관찰했다. 많은 정보와 도구가 현대사회에 넘치지만, 그것을 한 번 전부 손에서 놓고 가설만을 무기로 삼아 보자. 그것이 관찰력을 갈고 닦는 방법이다.     


먼저 있는 그대로 ‘디스크립션’하기. 디스크립션이란 ‘기술, 묘사, 설명, 표현’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지만,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말로 기술한다는 말이다. 그림을 보는 것은 ‘그림을 보고 움직인 내 마음을 관찰하고 마음의 변화를 만들어 낸 그림의 표현 방식과 저자의 의도를 떠올리는’ 행위지만 느낀 것을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가설은 말로 표현함으로써 시작된다. 인간은 신체 모든 부분을 사용하여 세상을 느끼지만, ‘말’만이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는 도구다. 말로 표현하기에 암기하고 정리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해야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말’이란 인간이 유일하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지할 수 있는 무기다. 본 것을 어떻게든 말로 표현해야 한다. 말로 표현하다 보면 자연스레 물음이 떠오르고 가설이 생겨난다. 관찰에는 가설이 필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말로 표현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아 관찰을 시작하면 된다.     


나는 묘비에 뭐라고 새겨지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이런 자문자답을 반복했다. 내가 도달한 답은 ‘배우고 싶어서’였다. 이것은 이유가 없다. 물음의 종착점일 뿐이다. 나는 평생에 거쳐 배움의 숙련자가 되고 싶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만을 선택해서 바라본다. 그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망상에 가깝다.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에서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풍파도 자신이 상정한 범위 내에 있기에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미래를 모르면 사람은 불안감을 느낀다. 한편 그 불안은 미지에 대한 설렘이기도 하다. 사람은 알고 싶어 한다. 진짜 정답은 없다고 하더라도 정답 쪽에 서고 싶어 한다. 모호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편향과 감정 모두 의사결정을 무의식적으로 행하도록 돕는 행위다. 가능한 한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본능은 무의식이 사람을 자동으로 조종해 살아가도록 이끈다. 관찰이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위를 모두 의식하는 것이다. 즉 관찰이란 본능에 저항하는 행위다.     


대화 도중 ‘알아’라는 말은 마음이 셔터를 내리는 말이다. ‘알아’라는 말을 들으면 그 화제는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아직 말하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것이 남았는데, 대화는 중단된다. 안다는 말로 자신이 먼저 셔터를 내렸기에 상처 입은 상대방도 셔터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감정이 아직 정리되지 않아 스스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지 못할 때, “당신 마음을 안다”라는 말을 들으면 내팽개쳐진 기분이 드는 법이다. 좋은 이야기는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품고 사는 인물을 그린다.     


관찰은 사랑이다. 좋은 관찰을 하려면 편향을 의식해야만 한다. 하지만 관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랑이다. 사랑만 있다면 시간이 좀 걸릴지 모르지만 좋은 관찰을 할 수 있다. 좋은 관찰을 하면 사랑이 보다 깊어진다. 대상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을 계속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판단을 내리지 않으므로 끝이 없다. 곧장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고 변화를 재촉하고 싶어져도 참는다. 그것이 상대에게 깊은 신뢰가 뒷받침된 사랑이다.    

  

아이의 행동을 보고 우리는 아이의 장래를 판단하지 않는다. 아직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판단을 중지하고 관찰한다. 좋은 관찰은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본다. ‘하는 것’은 결과가 나온다. 결과로 판단할 수 있다. ‘있는 것’이라는 모호한 상태를 관찰하려면 압도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찰만 해야 한다.     


정말로 창조적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분주함이 아니라 무료함이다. 자연 속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관찰하고, 관찰한 것을 표현한다.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표현한다. 관찰력이 있는 표현이란 사랑으로 넘치는 표현이다.      


이제 무료함이 나의 삶이 되었다. 따라서 ‘사랑’이 필요한 시간이다.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표현해야 하겠다. 좋은 책이다.     


책 소개

『관찰력 가르는 법』 사도시마 요헤이 지음. 구수영 옮김. 2023.04.04. 도서출판 유유. 242쪽. 17,000원.


사도시마 요헤이 佐渡島庸平. 관찰하는 사람. 콘텐츠 제작, 배급사, 작가 에이전시인 주식회사 코르크의 대표이사, 편집자. 1979년 출생. 중학교 시절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냈다. 도쿄대 문학부 졸업. 저서. 『당신의 가설이 세상을 바꾼다』     


구수영. 일본어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단단한 지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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