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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Sep 03. 2024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지음.

“신뢰와 존경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동안은 어떤 영혼도 절망하지 않는다.” -조지 엘리엇. 『로몰라』     

‘외로움’이 사회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되었다. 영국에서는 ‘고독청’이라는 국가 기관이 생겼다고 한다. 외로움의 철학적 의미는 어떤 것일까? 외로움에 관해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인생이란 우리의 연결 욕구가 충족되리라는 보장도 없이 흘러가는 것. 어떤 이는 어쩌다 가끔 외롭고, 어떤 사람은 외로운 줄 모르고 산다. 어떤 이는 날이면 날마다 외롭다. 외로움은 일상의 한복판에 찾아올 수도 있고, 심각한 생의 위기에 찾아올 수도 있다. 모두가 이 감정을 알지만,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지는 않는다. 일시적 외로움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울지언정 감당할 수가 있다. 그러나 빈번하게 느끼는 고질적 외로움은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서서히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 책은 8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에서 철학보다는 심리학과 사회과학에서 보는 외로움에 관한 개념들을 명확히 하고, 예를 들어 ‘혼자 있음aloneness’, ‘외로움loneliness’이 어떻게 다른지. 를 개괄한다. 제2장에서는 감정의 성격을 간략히 논의 하고 감정으로서의 외로움을 알아본다. 제3장에서는 외로운 사람을 좀 더 밀착해서 살펴본다. 외로움이라는 경험을 촉진하는 여러 요인들도 알아본다. 제4장에서는 ‘신뢰’와 외로움의 상관 관계를 알아본다. 제5장에서는 외로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인생에서 사랑과 우정이 담당하는 역학을 알아본다. 제6장에서는 현대의 개인을 살펴본다. 인간이란 어떤 동물인지, 과연 인간이 특히 외로움을 잘 느끼는 동물인지를 고찰한다.     


외로움의 본질은 무엇일까? 외로움은 여러 가지로 정의되지만, 그 정의들에는 고통스럽거나 슬픈 느낌, 자신이 고립되었거나 혼자라는 지각, 자신이 타인들과 가깝지 못하다는 지각 등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혼자 보내는데도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거의 항상 가족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유별나게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로움은 주관적 현상이다. 인간관계가 희박하거나 아니면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친밀감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서 인간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외로움을 경험한다.     


외로움은 곧잘 공적 질병 혹은 공공 보건의 문제처럼 제시된다. 하지만 외로움은 병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 현상이다. 먹지 못해 허기를 느끼는 것이 병이 아니듯,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허기를 느끼는 것도 병은 아니다. 그러나 외로움이 정신과 신체가 장애를 일으킬 위험을 극적으로 높일 수는 있다.     


외로움이 사망에 미치는 영향은 매일 10~15개비의 흡연이 미치는 영향과 비슷하고, 비만이나 산체 활동 부족이 미치는 영향보다 더 치명적이다. 외로움은 혈압과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신체 내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인지증 발병 위험도 높이고 전반적으로 인지 기능을 장기간에 걸쳐 악화시킨다. 또 외로움은 노화 과정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로운 사람들도 수면시간은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수면의 질이 낮고 밤에 자주 깬다. 열악한 정신, 신체 건강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 사회적 지지의 양이 아니라 주관적 감정인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정신 질환이 아니며, 정신 질환이 되어서도 안 된다. 누군가와 진실로 맺어지지 못하는 고질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당사자의 모든 인간관계에 영향을 줄 때 그리하여 어떤 관계도 가깝다고 보지 못할 때, 외로움은 병적 성격일 수 있다.      


아렌트는 1951년 9월 3일 쓴 글에서 “정치는 최소한의 신뢰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법은 이러저러한 행위를 하면 이러저러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진술한다. 합의는 네가 이러저러한 것을 충족할 때 나도 이러저러한 것을 충족하겠다고 말한다. 법과 합의는 예측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예측 가능성의 얼개를 마련한다. 법과 합의는 예측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 예측 가능성의 얼개를 마련한다. 도덕돠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도덕에 의지하기가 힘들수록 정치와 제도는 냉혹하다. 세계가 확대되면서 다양한 도덕률이 서로 충돌하고 상대화되는 시대의 정치와 제도가 냉혹한 것이다.”라고 했다. 신뢰의 결여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낳고, 그러한 태도는 타인과의 애착 형성에 중요한 직접성을 망친다.     


사랑과 우정을 표현할 수 있는 자만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거나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외로움은 모든 사회적 공간에 깃든다. 어떤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더라도 그 경험의 어떤 면은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완전하게 전달할 수 없다.     


가장 완전한 우정은 좋은 사람들, 탁월성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 성립하는 우정이다. 그들이 좋은 사람인 한 그들은 서로가 잘되기를 똑같이 바라는데, 그들 자신이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위하여 그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최고의 친구다. 그들이 그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그들 자신을 이유로 한 것이다.


인생에는 우정과 사랑이 필요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쓸 때 세상은 의미를 얻는다. 그러한 마음 씀씀이를 통하여 자신이 하나의 인격체로 구성된다.      


우리의 존재는 죽음을 향한 존재다. 죽음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이지만 그래도 나는 언제나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죽음은 개개인의 것이다. 장차 죽을 이는 나,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타인이 나를 대신해 죽을 수는 없다. 죽음은 ‘나의’ 죽음,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불안으로 다가오는 ‘에고의 죽음’이다. 죽음은 오직 나 혼자만의 일이므로 불안은 나를 개별화하고 나를 나 자신에게로 물러나게 한다.      


죽음은 외롭다. 당신의 죽음은 더할 것도 없고 덜 할 것도 없는 당신만의 죽음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자기 얘기를 많이 하고 상대에게 질문은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고 즐거워하는 기색도 덜하다. 그들은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을 어려워한다.          


세상이 삭막하다고 느낄 때가 점점 많아진다. 나이 듦은 고독을 동반자로 만들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찾아오는 사람 없고, 알아야 할 사람도 없다. 행동반경이 점점 줄어들면서 거실과 안방을 오가는 것이 일과가 된다. 할일도 없다. 그저 눈을 뜨고 습관적으로 먹고 숨을 쉰다. 삶이 다 그런 것 같다.



책 소개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지음. 이세진 옮김. 2019.10.10. 청미출판사. 251쪽. 15,000원. 


라르스 스벤젠 Lars Svendsen.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 철학교수. 저서. 『지루함의 철학』, 『노동이란 무엇인가』 등.     


이세진. 사강대학교 철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 공부.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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