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장편소설
무더위가 기승이다. 부담 없이 읽을 소설을 골라 읽고 싶었다. 이 책을 읽은 이유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나쁘다.
소설은 조선시대 말부터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러시아가 소비에트연방공화국(소련) 이던 시절 이야기다. 조선에서 못 먹고, 못사는 사람들이, 내 땅 한번 가져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 땅을 찾아 소련으로 갔다. 국경지대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지역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척박한 땅을 가꾸며 조선인으로 살아간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이런 백성들의 고난을 알았을까? 이 땅의 권력자들은 언제나 백성의 고달픔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권력다툼만 일삼았다.
단군 이래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오늘도 민생은 안중에 없고 국민의 혈세로 세비를 받아 가며, 에어컨 빵빵 돌아가는 국회에서 허구한 날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역사에서 일어났던 전쟁, 외침이 재발한다면 제일 앞장서서 외국으로 도망갈 인간들이 권력자들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14,000명을 구한 미국 화물선 메르디스 빅토리호에 관한 이야기 『기적의 배』가 생각났다. 겨우 식민지에서 해방된 민족은 남, 북으로 나뉘어 결국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다. 그것도 북한의 김일성이라는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지금까지 수천만 명이 살상과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아픔을 겪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한심하다.
이 책에서 소련(러시아)의 스탈린 공산정권은 조선인에게 상상할 수 없는 핍박을 자행했다. 볼세비키 혁명에 앞장섰던 조선인들을 가차 없이 숙청한다. 그러나 『기적의 배』에서 피난민 14,000명은 화물선에 다리 뻗을 공간도 없이, 화장실도 없는 상황에서 5일간의 항해를 무사히 마친다. 미국인 선장과 선원들의 인도주의적 희생과 리더십의 결과다.
작가는 이 책에서 강 이름과 한인 마을 지면은 현재 러시아 지명으로 표기했다. 황 노인의 캄차카 연어어장 이야기는 이인섭의 『망명자의 수기』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모티프로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황무지를 개척하며 살아가는 조선인들이 사는 마을 신한촌에 소비에트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주민들에게 3일 치 양식을 갖고 무조건 열차에 탑승하라는 공산당의 명령이다. 이주 명령이 떨어졌다. 주민들은 집과 가재도구, 키우던 가축들을 두고, 가는 곳도 모른 체 기차에 탄다.
기차는 화물차다. 바닥에 건초를 깔아서 앉을 수 있게 했다. 화장실도 없다. 사람들은 2, 3일이면 여행이 끝날 것으로 알고 탄 기차는 작년 가을 페르바야 레치카 역을 출발해서 겨울에야 카자흐스탄에 도착한다. 모래와 바람만 있는 황무지, 어린애는 살 수 없다는 곳이다. 소련 정부는 조선인을 범죄자 유배지인 이곳에 강제 이주시켰다.
몇 달 동안 이어지는 이동은 동물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식수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화장실은 아예없다. 목욕, 세수는 생각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악취 때문에 서로 다가갈 수 없다. 그런데도 추위는 볼이 얼 정도로 혹독했다. 그런 환경에 처했지만, 자국민을 보호해 줄 정부는 북한에도 남한에도 없었다.
임산부는 기차에서 출산한다. 하지만 며칠 못 살고 죽는다. 작가는 그런 아이의 시체를 기차 밖으로 던지는 부모의 처절한 마음을 묘사한다. 그러나 미국의 『기적의 배』에서 피난민 14,000명은 5일 후 14,005명이 된다. 그사이 출산한 것이다. 환경이 열악하지만, 인권을 최선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미국과 소련의 정책이 대비된다.
이주 통보를 받고 소덕은 내내 죽은 남편의 제사를 걱정했다 그녀는 길흉화복이 조상들에게서 오기 때문에 자손들이 복을 받으려면 제사를 정성껏 지내야 한다고 믿었다. 제사상을 차릴 때 고향에서처럼 사과 같은 붉은 과일은 동쪽에, 배 같은 흰 과일은 서쪽에, 생선 대가리는 동쪽을 향하게 놓았다. 평생을 굶주림에서 놓여나지 못한 인간이 죽어 자손들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전능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우습다.
나는 땅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땅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지. 세상은 얼마나 넓은지 가도 가도 땅이 있고, 가는 곳마다 사람ㄷ르이 집을 짓고 땅을 경작하며 살고 있지. 농사꾼에게는 자신이 씨앗을 뿌리는 땅이 세상 전부야. 게다기 러시아에서는 더 이상 개인이 땅을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어. 더구나 난 내 소유도 아닌 땅에 매달려 살고 싶지 않아. 연해주 조선인들이 늘어나자, 차르 정부에서는 조선인들에게 주던 땅 할당량을 줄였어. 대신에 연해주로 이주해 오는 러시아인에게 마음에 드는 땅을 골라 농사짓고 살 수 있는 혜택을 주었지.
이 아이가 열차에 태워진 건 이 아이의 운명이니 너무 자신을 질책하지 마. 자신의 운명도 어쩌지 못하면서 자식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게 부모지. 세상에 엄마 품만 한데가 없지. 참새 둥지처럼 작고 빈약해도 엄마 품이 세상에서 가장 깊고 따뜻하지.
나쁜 생각들은 떨쳐버려라. 인생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거란다. 다람쥐가 죽어야 쳇바퀴가 멈추지. 그러니 절망할 것도, 기뻐할 것도 없어.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접하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권세는 소수의 권력자가 누리고 피해는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다.
책 소개
『떠도는 땅』 김숨 지음. 2020.04.27. (주)은행나무. 279쪽.
김숨.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느림에 대하여』,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혀균문학작가상 등 수상. 장편소설 『철』, 『노란 개를 버리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