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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Sep 10. 2024

『약빨』 곽경훈 지음.

「현직 의사가 들려주는 약의 세계」

이 책의 부제목은 「현직 의사가 들려주는 약의 세계」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먹는 약의 숫자도 늘어간다. 1493년부터 1541년까지 활동한 독일계 스위스 본초학자, 연금술사, 점성술사, 의사였던 파라켈수스(Paracelsus)는 “모든 약은 독이며 용량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약에 관한 상식을 넓히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비타민과 관련한 분야도 마찬가지다. 비타민의 역할을 규명하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괴혈병, 펠라그라, 각기병 같은 질병을 효율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비타민을 과대평가하는 주장도 나타났다.      


노벨화학상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1901~1994)이 대표적인 사례다. 폴링은 양자역학을 이용하여 화학결합을 설명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았고, 1950년대 냉전 시대에 반전과 반핵을 부르짖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위대한 과학자이며 훌륭한 인격자였으나 비타민 C에 대해서만큼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그는 비타민 C에 집착했다. 비타민 C의 결핍이 조현병의 원인이라 주장했고, 감기뿐만 아니라 암, 뇌졸중, 심장질환, 패혈증 같은 질환도 비타민 C를 과량으로 복용하면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노벨상 수상자란 권위를 악용하는 세력이 폴링의 권위를 이용하여 ‘비타민 C가 만병통치약이다’란 유사 의학을 대중에게 퍼트렸다.     


이 책에서는 우리 생활에 밀접한 13가지 약물을 소개한다. 신경근육차단제, 항암화학요법, 메스암페타민, 인슐린, 에프네프린, 항정신병약물, 항생제, 아스피린, 키닌, 스테로이드, 아편, 이뇨제, 전신마취제 이다.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기 위해 시행하는 기관내삽관이란 시술에서는 ‘베크론 투여’가 필수적이다. 베크론을 투여하면 심장근육을 제외하고 근육 대부분이 정지한다. 당연히 호흡근육도 멈춘다. 인공호흡기는 고농도의 산소를 불어 놓는 기계다. 폐렴, 만성폐쇄성기관지염 같은 질환으로 폐 기능이 감소하여 심각한 호흡곤란이 발생하면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여 고농도의 산소를 강제로 불어 놓는다.      


기도로 물 한 방울만 넘어가도 심하게 기침하고 불편한 데, 플라스틱 관을 넣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안정제를 투여해도 저항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이유로 기관내삽관을 시행하고 인공호흡기를 연결할 때는 베크론 같은 약물을 투여하여 호흡근육을 비롯한 대부분의 근육을 멈추게 한다. 베크론 같은 신경근육차단제는 수술에도 필요하다. 복잡하고 정교한 수술일수록 신경근육차단제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고대 그리스인은 철학과 의학을 결합하여 치료를 개발했다.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의사는 혈액, 점액, 담즙 같은 체액의 균형이 무너지면 암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발생한 암은 가능하면 제거했고 제거할 수 없는 경우 연고를 바르고 ‘체액의 균형’을 회복하는 약물을 먹였다. 영어에서 암cancer과 게crab는 각각 다른 단어가 있으나 라틴어에서 유래한 별자리 이름 게자리cancer와 암cancer이 단어가 같다.  

    

엄청나게 많은 세포가 인체를 이룬다. 각각의 세포는 저마다 다른 수명을 지녀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세포가 대체한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수많은 복제가 일어난다. 그런 과정에서 정상적인 세포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체는 때로 비정상적인 세포를 만든다. 비정상적인 세포가 지나치게 많이 발생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통제할 수 없다. 비정상적인 세포는 원래 수행할 기능을 하지 않고 끝없이 자신과 같은 비정상적인 세포를 복제한다. 그렇게 괴물처럼 커진 비정상적인 세포의 무리는 영양을 독차지하며 주변 조직을 파괴하고 혈관과 림프관을 따라 멀리 있는 장기까지 퍼진다. 이것이 암이 발생하는 과정이다.     


메스암페타민,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환각제는 광대버섯이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8,000~10,000년 무렵부터 사용한 것을 추정한다. 광대버섯을 시작으로 인류는 한층 안전하고 효과적인 환각제를 찾아냈다. 기원전 3000~4000년 무렵 수메르인이 아편을 사용한 기록을 남겼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천식 같은 호흡곤란의 치료에 마황을 사용했다. 마황은 강력한 기관지확장제인 에페드린을 함유했다. 에페드린은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강력한 흥분제다. 기관지를 확장하여 기침을 완화하고 천식을 치료하는 작용도 중추신경의 흥분, 정확히 말하면 교감신경이 흥분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20세기 초 에페드린과 유사하면서 싸고 손쉬운 방법으로 구할 수 있고 효과가 한층 강력한 합성 물질을 개발했다. 암페타민이다. 인체가 메스암페타민을 흡수하면 중추신경계를 자극하고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황홀경과 함께 졸음과 피로가 사라지고 집중력이 향상하며 자신감을 얻는다. 처음 메스암페타민을 투여했을 때 느끼는 희열은 다시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점차 복용량을 늘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투여하지 않으면 불안, 초조, 망상 같은 금단증상이 발생한다. 과다복용은 고열, 고혈압, 발작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질환을 유발하고 심하면 사망한다.     


박테리아가 만든 기적, 인슐린! 당뇨병이 발병하면 인체의 세포가 당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혈액의 당분 수치가 상승한다. 그러나 혈액에 당분이 넘쳐나도 정작 당분이 필요한 세포에는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 혈당이 500 이상으로 지나치게 높아지면 인체의 지방조직에서 혈액으로 지방산을 배출한다. 지방산은 곧 케톤산으로 변하고 점차 ph7.35에서 ph7.45가 정상범위인 인체의 산염기균형을 무너뜨려 심각한 산증을 만든다. 이런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당뇨병의 대표적인 급성 합병증으로 빈호흡과 구토 같은 증상으로 시작하여 이후 의식 저하와 저혈압이 발생하고 끝내 급성신부전을 비롯한 다양한 장기의 손상으로 사망한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1978년 대장균의 DNA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인슐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1982년부터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덕분에 당뇨병은 통제가 가능한 만성질환이 되었다.     


에프네프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극히 드물다. 죽음 자체가 인간이 경험하는 최악의 고통은 아닐지라도 ‘완전한 소멸’에 해당하며 ‘죽음 이후’의 시간은 존재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확히 죽음을 초래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호흡곤란이 죽음의 원인이란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했다.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기도 확보, 호흡, 순환이다.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심장 압박을 시행하고 기관 내 삽관을 통하여 기도를 확보 한다. 또 심전도를 부착하여 심실세동을 확인하면 제세동을 시행하고 심장박동을 회복할 때까지 3분마다 에피네프린을 정맥으로 주사한다.     


정신질환을 육체의 문제, 뇌의 구조적 이상 혹은 생화학적 불균형이라는 판단을 했다. 1952년 뇌의 도파민 수용체를 억제하는 클로르프로마진을 조현병 치료제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장이 열렸다. 클로르프로마진을 시작으로 개발한 많은 약물은 조현병뿐만 아니라 조울증 같은 대부분의 정신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정신질환은 꾸준히 치료하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만성질환일 뿐이다.     


항생제. 1930년대 초반 게르하르트 도마크가 아조 염료와 황을 결합한 화학물질이 인체에는 해롭지 않으면서 세균에 선택적인 독성을 지닌다는 것을 발견했다. 1933년부터 임상시험을 시작하여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이 프로토질이란 상품명으로 생산을 시작한 이 물질이 바로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다.     


설파제를 시작으로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합성한 화학물질이 아니라 미생물에서 추출한 새로운 향생제인 페니실린이 등장했다. 상처감염, 전조직염, 골수염, 종기, 뇌수막염, 폐렴, 요로감염, 심지어 결핵까지 역사 이전부터 인류를 괴롭히던 질병이 과학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장밋빛으로 가득한 미래가 펼쳐졌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그러니까 1980~1990년대에 접어들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때까지 인류가 개발한 어떤 항생제에도 굴복하지 않는 무시무시한 세균, 이른바 ‘슈퍼 박테리아’가 등장한 것이다.     


진화는 모든 생물에서 균일하게 진행하지 않는다. 과거의 모습으로 현재에도 번성할 수 있으면 굳이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악어와 상어가 그렇다. 반면에 과거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현재에 적응할 수 없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모습을 바꿀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존하고 번성하려고 진화를 재촉하는 힘을 생물학에서는 ‘진화압’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에 이르자 이미 너무 많은 항생제를 개발해서 이제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할 후보 물질이 거의 바닥났다. 이제 인류는 항생제의 사용에 익숙해져 하루도 항생제 없이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인간의 감염병 치료 목적 외에도 양어장, 양계장, 축산농가에서 생선, 닭, 돼지, 소 따위의 질병을 방지하고 빠른 시간에 살찌우려고 엄청나게 많은 항생제를 사용한다. 이렇게 다양한 목적으로 막대한 양의 항생제를 사용할수록 세균도 한층 강력한 진화압을 받아 더 빨리 해당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을 획득한다. 인류는 언제까지 세균과의 투쟁에서 계속해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약물, 아스피린! 고대부터 지금까지 의사가 처방하는 약물 가운데 정말 치료 효과가 있는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인 아편, 말라리아에 사용하는 키닌, 그리고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 아스피린이다.      


아편은 대부분이 통증에 효과적이다. 말라리아 환자가 키닌을 복용하면 발열이 호전한다. 고열과 근육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버드나무 껍질을 먹이는 것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효과가 확인된 처방이다. 1897년 염색약을 제조하던 독일회사 바이엘이 처음으로 버드나무 껍질에서 아세틸 살리실산을 합성했다. 이 아세틸 살리실산의 상품명이 ‘아스피린’이다.      


1974년 심근경색을 치료하고 퇴원한 환자에게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처방하는 연구를 시작했고 이어진 다양한 연구의 고무적인 성과에 힘입어 심근경색과 뇌경색을 앓은 환자에게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투여하는 치료법이 확립됐다. 그러나 아스피린을 장기간 복용하면 위궤양이 발생한다. 위궤양은 위장 출혈을 일으킨다. 또한 아스피린은 혈소판 기능을 억제하여 지혈을 방해한다. 위장 출혈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번식하여 자신과 유사한 후손을 남기는 것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심지어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바이러스도-목적이다. 이 과정에서 치열한 경쟁이 생긴다. 몇몇 생물은 평범하지 않은 방법을 선택했다. 기생이 대표적인 사례다.      


말라리아 원충은 기생을 선택한 생물 가운데도 매우 복잡한 방법을 골랐다. 말라리아 원충의 생애는 크게 모기에게 있을 때와 인체에 있을 때로 구분한다. 일단 말라리아 원충을 지닌 모기가 인간을 물면 모기의 침샘에 있던 포자원충 단계의 말라리아 원충이 혈액에 침투한다. 포자원충 단계에서는 간세포에 다다를 때까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간세포에 다다르면 안으로 침투해서 무성생식을 시작한다. 이 단계의 말라리아 원충을 분열소체라 부르며 어느 정도 숫자가 늘어나면 분열소체는 간세포를 떠나 혈액의 적혈구로 이동한다. 그리고 적혈구 내부에서 역시 무성생식으로 생식모세포를 생산하는데 생식모세포는 암수 구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암수 생식모세포가 서로 만나도 인체에서는 유성생식을 할 수 없다.      


유성생식을 하려면 다시 모기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모기가 피를 빨려고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된 인체를 물 때, 암수 생식모세포가 모기의 소화기관으로 들어가 유성생식을 시작한다. 이 단계를 포자생식이라 부른다. 모기의 소화기관에서 성숙한 포자원충은 모기의 침샘으로 이동하고 거기에서 모기가 인체를 물면 앞서 언급한 과정을 다시 시작한다. 말라리아 원충을 동물이나 모기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까지 모기도 동물도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말라리아 원충도 건재한 것이다.     


멋진 몸매와 강력한 힘의 유혹, 스테로이드! 스테로이드 약물을 오랫동안 복용하면 원래 인체에서 스테로이드를 만들던 역할을 하는 부신의 기능이 쇠퇴한다.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하다가 갑작스레 복용하지 않으면 입맛이 없고 힘이 없을 뿐 아니라 인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전해질 수치가 낮아진다.      


사람의 옆구리에는 신장이 위치한다. 콩팥이라 부르기도 하고 혈액의 불순물을 걸러 소변을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 신장 위에 부신이란 작은 기관이 있다. 부신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스테로이드란 호르몬을 분비한다. 스테로이드는 스트레스 상황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호르몬으로 염증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기능도 있다. 스테로이드 약물을 복용하면 밥맛도 좋아지고, 힘이 나고, 관절염 같은 질환의 증상도 호전한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했다.     


코르티코스스테로이드는 다양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염증반응과 면역반응을 강력하게 억제하기에 사소한 알레르기부터 시작해서 천식, 만성폐쇄질환, 다양한 자가면역질환, 통풍, 퇴행성 관절염을 비롯한 근골격계 질환까지 널리 사용한다. 또 외상 혹은 질병으로 부신의 기능이 저하한 환자에도 처방하며 뇌의 악성종양과 혈액암이 치료에도 사용한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일정 기간 이상 투여하면 형당이 상승하고 고혈압이 나타나며 감염병이 자주 발생한다. 외모도 변화해서 얼굴은 달 혹은 찐빵을 떠올릴 만큼 둥글어지며 팔과 다리에서는 근육이 사라지고 대신에 부종이 발생하여 팽팽해져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괴한 모습이 된다. 위궤양과 골다공증도 자주 발병한다.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토혈과 골절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런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코르티코스테로이드의 복용을 중단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메스꺼움과 구토 때문에 식사량이 줄고 무기력해지며 심각한 경우 의식 저하와 저혈압까지 나타난다.     


1970년대 중반 올림픽위원회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사용을 금지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처음에는 신체 능력은 향상하지만, 곧 심각한 부상이 찾아올 가능성이 커진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근육은 강화하나 힘줄을 강화하는 효과는 없다. 지나치게 강력해진 근육의 힘을 힘줄이 이기지 못하고 파열할 위험이 커진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뇌를 손상한다. 특히 사고와 판단, 감정의 통제 같은 고차원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영향을 주어 인지 기능이 저하하고, 우울증과 조울증 같은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또 심장근육의 비대와 동맥경화를 초래한다. 심장근육은 다른 장기와 달리 단순히 두꺼워진다고 기능이 향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두꺼워진 심장근육은 기능이 저하할 뿐만 아니라 갑작스러운 심정지의 위험을 높인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오랫동안 사용하면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통을 잊게 하면, 삶도 시든다. 아편. 초기 인류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판단했을까? 호기심과 모험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괴짜가 목숨을 담보로 맛을 보고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편의 발견도 그랬을 것이다. 양귀비의 설익은 열매가 손상하면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이내 말라붙어 어두운 노란색 결정이 되는 것을 관찰하고 그 결정을 맛보았을 것이다. 쓰디쓴 맛이지만 묘한 행복감이 밀려오면서 몽롱해졌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결정이 효과적인 진통제이며 기침과 설사에도 효과가 있음을 깨달았다. 아편은 심각한 문제를 지닌 약물이다. 강력한 진통제이며 기침과 설사에도 효과가 있으나 중독성이 매우 강하고 과량으로 복용하면 심각한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     


19세기 초 아편에서 다른 불순물을 제거하고 유효성분만 추출하여 모르핀을 만들었다. 모르핀 역시 아편과 다르지 않은 중독성을 지녔고 과량으로 투여하면 호흡곤란이 발생했다. 1898년 모르핀에서 한층 순수한 형태의 물질 헤로인을 추출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목적과 달리 헤로인은 최악의 중독성을 지닌 매우 위험한 약물로 밝혀졌다. 1960년 폴 얀센은 모르핀과 헤로인보다 훨씬 강력한 진통과 진정 효과를 지닌 펜타닐 합성에 성공했다. 메스암페타민, 코카인, 마리화나, 페티딘, 펜타닐, 옥시콘틴 같은 아편 계열 진통제가 있다.     

소변을 봐라, 그러면 평안을 얻을 것이다, 이뇨제. 이뇨제란 용어는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한 그림에도 포도, 올리브, 체리 같은 식물이 소변의 양을 늘린다는 묘사가 있다. 1930년대 게르하르트 도마크가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를 개발했고 뒤를 이어 성능을 개선한 다양한 설파제 계열 약물이 등장했다. 1930년대 후반, 설파제 계열 항생제인 설파닐아마이드를 복용한 환자에서 소변량이 확연히 증가하는 증상을 확인했다. 의료진은 소변량에서 수분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나트륨도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이뇨제를 가장 먼저 적용한 분야가 바로 폐부종이 치료였다. 이뇨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당연히 화장실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뇨제 복용을 중단하거나 힘이 없어서 수액을 맞거나, 영양제 맞는 행위는 심각한 폐부종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약과, 전문 약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과유불급,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떠오른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고 가급적 최소량을 먹는 것이 신체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책 소개

『약빨』 곽경훈 지음. 2023.03.20. 마르코폴로. 255쪽. 16,700원. 

   

곽경훈. 197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지은 책. 『응급실의 소크라테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의사가 뭐라고』, 『날마다, 응급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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