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을 바로 알자』

by 안서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호국영령들의 희생과 애국심을 본받고 숭고한 뜻을 이어가는 마음을 다지는 달이다.

이 책은 제주 4·3에 관한 내용이다. ‘제주4·3사건재정립시민연대’에서 펴냈다. 부록으로 「대한민국 건국절 논쟁」을 싣고 있다.


목차는 1, 제주4·3사건의 정의와 성격은? 2, 제주4·3사건이 폭동·반란인 이유는? 3, 제주4·3 발생 이유는? …. 25, 화해·상생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26, 결론적으로 제주4·3사건은? 26개의 주제와 [부록] 대한민국 건국절 논쟁으로 되어 있다.


〈제주4·3사건의 정의와 성격은?〉

“제주4·3사건은 남로당제주도당이 중앙당과 전남도당의 지령을 받아 5월 10일 예정된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1948년 4월 3일 시작된 남로당의 폭동·반란으로서, 1957년 4월 2일 사건을 완전히 진압할 때까지 만 9년 동안 많은 도민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라고 정의한다.

※무장 폭력의 성격은, 1948년 4월 3일~8월 14일까지는 폭동,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이후는 반란.


〈제주4·3사건이 폭동·반란인 이유는?〉

주동자의 실토 : 남로당대정면당 위원장 이운방은 “제주4·3사건 주도자는 빨갱이, 최종 목적은 공산주의, 우선 목적은 통일조국건설이다”라고 말했고, 일본으로 도피한 제주4·3사건 주동자 김봉현도 “제주4·3사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을 위한 투쟁”이라고 고백했다. 이런 이유로 제주4·3사건은 민중항쟁이 아니라, 대한민국건국을 방해하고 공산통일을 목표로 한 폭동·반란이다.


〈남로당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사령관은 누구?〉

1947년 8월 남로당제주도당은 무장전투부대인 인민해방군(제주도인민유격대)를 조직했다. 첫 사령관은 김달삼이다. 김달삼은 4·3사건을 주도했고, 이후에 여러 사람이 사령관으로 활동했다. 4·3정부보고서는 2대 이덕구, 3대 김의봉, 4대 허영삼, 5대 김성규라고 하고 있다.


김달삼은 제주도 대정면 영락리 출신으로 본명을 이승진이다. 남로당중앙위원인 강문석의 딸과 결혼했고, 강문석의 가명 김달삼을 이어받아 사용했다. 1946년 10월 대구폭동에 깊이 관여했고, 제주에 돌아온 후에 남로당대정면당 조직부장, 대정중학교 교사, 인민해방군 첫 번째 사령관으로 4·3사건을 이끌었다. 1948년 8월 2일 월북한 후 북조선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헌법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국기훈장 2급을 받아 북한의 영웅이 되었다. 1949년에 게릴라 300명을 인솔하여 태백산지구에 침투하여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다가 월북했고, 1950년 9월 30일 6·25전쟁 중 국군에게 사살되었다.


2대 사령관 이덕구는 조천면 신촌리 출신으로 일본관동군 소위로 복무, 대위로 제대했다. 조천면민주청년동맹의 책임자, 조천중학원 교사였다. 1948년 10월 24일 남로당제주도당 구국투쟁위원회를 소련식 혁명투쟁위원회로 개편하고, 부대마다 정치위원을 배치하고 대한민국에 선전포고한다. 1949년 6월 7일 경찰에 사살되었다. 이덕구는 북한에서 국기훈장 3급과 조국통일상을 추서하고 평양 신미동 애국열사 묘역에 가묘를 만들었다.


〈4·3사건의 폭동계획과 그 결과는?〉

남로당제주도당이 수립한 계획은 1948년 4월 3일 02:00~04:00에 제9연대 프락치 고승옥 하사관이 동원할 수 있는 200명을 주력군으로 하여 제주읍에 있는 경찰본부인 제주경찰감찰청(현 제주경찰청)과 제1구서(제주경찰서)를 분쇄하고, 자체 양성한 인민유격대, 자위대 400명으로 도내 24개 지서 중 14개 지서를 공격하고 경찰과 그 가족 및 우익인사를 숙청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김달삼의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에 의하면, 제주읍 경찰관서 공격은 9연대 병력이 동원되지 않아 미수에 그쳤고, 이외 지역에서는 남도당인민유격대와 자위대 350명이 12개 지서를 기습공격하여 경찰관 15명이 사상, 경찰 가족 3명 사망, 우익인사 및 가족 등 합계 27명이 사망하고 부상 8명 피랍 5명 등이 피해를 입었다.


〈김달삼의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

이 보고서는 김달삼이 1948년 8월 25일 해주대회 보고용으로 작성한 것으로, 같은 해 3월 15일부터 7월 24일까지 상황, 조직과 작전, 지역별 일자별 투쟁 결과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종합보고서이다.

주요 내용은 9연대에 프락치 입대, 전남도당 오르그로부터 무장 반격전 지시 받은 사항, 단선단정 반대 구국투쟁 방법으로 무장 반격전을 기획하고 결정, 4·3사건 발생 이후 113일간 경찰,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우익인사 숙청 상황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소련의 〈스티코프 비망록〉, 〈러시아 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 문서군 172, 목록 614631, 문서철 11, 19~23쪽〉, 〈미군정 문서〉 등 다양한 기록을 근거로 하고 있다.


2000년 1월 12일 공포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제주4·3특별법)에 의해 구성된 제주4·3위원회가 확정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4·3정부보고서)는 사건이 원인보다 군경의 과잉진압에만 초점을 맞춰 역사적 안목이 아닌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편 가르는 방식으로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보고서가 되고 있다.


정부보고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관점에서 작성하고,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면서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방향으로 써야 한다. 보고서에 정치가 역사 문제에 간섭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주4·3평화공원 영상, 전시물은 올바른가?〉

대검찰청 수사국이 발행한 「좌익사건 실록」에 남로당은 977건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런 방해에도 대한민국은 5·10선거를 통해 제헌의원을 선출하고 건국하여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제주4·3평화공원 영상물이나 전시물은 남로당이나 제주4·3사건 주동자에 대한 비판은 없고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피해에 초점을 맞춰 대한민국은 원한과 증오의 대상인 나라로 묘사되고 있다.


〈화해·상생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제주4·3사건을 대한민국 국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남로당의 관점이 아닌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군경이 4·3사건을 진압해야 하는 불가피성과 당위성을 인정해야 한다.


요즘 제주4·3사건에 관해 피해자 보상금 지급 등이 진행되고 있다. 보상금을 둘러싸고 친족간에 배분이 원만하지 못하여 갈등 관계로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역사적인 사안에 진상을 규명하고 사실관계를 밝히는 방법은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는 한 명확한 것이 아니다.


큰 사건이 터지면 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가 꾸려지고 국가 예산이 투입된다. 지루한 시간을 끌고 결과는 보고서로 갈음한다. 보고서의 내용이 만족스러운 입장이 있고, 불만족인 입장도 있다. 집권자의 입김에 의해 원인과 사실관계는 희석되고 내 편에 유리한 결과로 결말이 난다. 사실은 묻히고 목소리 높이는 의견만 돋보이는 세상이 안타깝다.


일본 국민은 대한민국의 독도가 ‘다케시마’이고 일본의 영토로 알고 있다. 교육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일본 초중고 교과서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주4·3사건에 대한 교육이 교육기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다케시마’ 교육과 같이 잘못된 것을 미래 세대에게 전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며 다시 일어나서 안 될 교훈적인 진정한 상생과 화합의 내용을 교육하기 바란다.


책 소개

『4·3을 바로 알자』 김영중 지음. 2024.09.03. 프리덤칼리지장학회. 66쪽. 7,000원.

김영중. 1941년 제주출생. 해병대 병장 제대. 서귀포, 제주 경찰서장 역임. 광주고등법원제주부 민사조정위원, 제주특별자치도 치안행정위원회 위원장, 제주도재향경우회장 역임. 저서, 『내가 보는 제주4·3사건』 『레베데프 비망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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