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김려령 장편소설 〈두고 온 일주일이 불현듯 나타났다〉

by 안서조

이 소설의 카피는 〈두고 온 일주일이 불현듯 나타났다〉이다.


소설의 시작은 경남 어느 도시에서 북콘서트를 하는 장면이다. 작가 도연과 지방 유지, 그리고 진유철 국회의원이 등장한다. 도연과 유철은 일 년 전 터키 이스탄불에서 우연히 만나 일주일을 같이 지낸 사이다. 전화번호도 주고받지 않았고 어디에 사는지도 서로 몰랐다. 그런데 북 콘서트장에서 재회하게 된 것이다.


유철은 터키에서 돌아온 직후 아내 정희와 이혼했다. 아내의 요구였다. 도연은 결혼해서 딸 하나를 두었지만, 남편과 이혼했다. 재회한 이들은 서로 탐닉한다. 유철의 오피스텔을 오가며 사랑을 나눈다. 유철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출발했는데 험지인 경남 고향 옆 지역구에 출마해서 당선된 2선 의원이다. 도연과 재회한 유철은 행사를 기획하고 지역구에서 도연과 같이 진행한다. 이들은 서로 자주 만나는 사이로 발전한다.

임기가 끝나고 총선이 시작되었다. 출마한 유철은 지역구에서 유세하는데 도연과 데이트 장면이 찍힌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후보직을 사퇴한다. 도연과 연인 사이가 언론에 연일 보도되면서 도연도 절필 선언을 하고 둘은 결혼한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거, 그게 사랑이야. 사랑하면, 꺼져, 난 그걸 원해.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언젠가의 이별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의 이별도 무수한 이별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영원이라는 허울에 집착하면 현재부터가 지난했다. 언제 거기까지 가나. 그랬기에 옛 만남을 좋으면 좋았던 대로 싫으면 싫었던 대로 이별한 과거로 남겼다. 인생이 원체 아이러니해서 도무지 영문 모를 관계가 맺어지기도 하고, 서로 좋게 바라보면서도 각자 타인의 품에 안기는 씁쓸함을 겪기도 했다.


부부가 뭔데 그토록 싫음에도 함께 살아야 합니까. 도대체 부부의 연이 뭔데 단 한 번의 선택으로 평생을 살라고 하십니까. 인간이 그토록 완벽한 존재입니까. 실패한 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억지의 삶을 살 수는 없다. 실패에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새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통념에 어긋났으므로 말하는 순간 얻는 것보다 잃는 의미가 더 많았다.


부부면서도 같은 것을 전혀 다르게 보았다. 가치관이 너무 달라 하루가 멀다고 부딪쳤다. 그게 맞지, 내 생각은 달라. 말을 해, 말을! 말하고 싶지 않아. 왜 말을 못 해?


모든 일에는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인연과 운명이 따라붙는다. 그렇게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게 보는 사람의 판단, 그것으로 살거나 혹은 죽어도 어쩔 수 없다. 그때는 그만큼의 인연으로 결정된 그만큼의 운명이었을 테니까. 다행히 살면 안도하고 죽으면 비통한. 참견과 간섭은 대개 운명을 나쁜 쪽으로 기울게 한다. 돌아보면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 참견하는 자들은 결과를 내다보는 것 같지만 어떤 결과에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골격처럼 기품도 저마다의 것을 타고 난다. 거지도 기품이 좋아야 동냥 잘하는 수하를 거느리는 법이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억울한 요소 하나 없이 태어나는 인간은 없다. 억울한 것을 다른 것으로 보완하며 살 뿐이다. 그중 대체나 보완이 가장 어려운 것이 기품이었다. 이것은 얼굴에 재를 발라도 사라지지 않고, 얼굴에 금칠을 해도 없는 것이 생기지 않는다.


당신도 죽으면 태워서 재는 뒷동산에 뿌리고 제사는 지내지 말라고 했다. 잿밥 먹으러 오는 것도 귀찮고 그리울 이승의 삶도 없을 거라고 했다. 자신을 챙길 수 없던 삶이었다. 가진 게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저 처지에 맞는 배필이었다. 처지가 그랬으므로 복도 그만큼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인. 아내의 고생이 미안해 딴눈은 팔지 않았다. 가슴에 그리운 사람 하나 없는 인생이 어디 있나. 밖으로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살았지만 죽어서는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는 부부였다.


헤어질 이유가 없어 평생 산 부부였다. 서로에게 잘못한 것도 없고 잘한 것도 없는. 왜 그렇게 정이 안 가는지 몰랐다. 누구는 늙으면 그래도 아내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젊어 미운 것이 늙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미움에 늙음이 붙어 더 흉했다. 미운 아내가 미운 엄마는 아닐 거였다.


작가는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을 소개한다. 주인공 올렌까는 사랑이 많은 여자였다고. “당신인가 싶으면 곧 따라 들어오는 당신의 ‘올렌까’, 언제 어디에서든 당신과 나와 우리를 지켜보는 당신의 ‘올렌까’. 돌연 사라져 버린 올렌까의 그들이 당신에게서 겹친다.” 소설의 정희를 올렌까에 비유한 것일까? 재미있게 읽었다.


책 소개

『일주일』 김려령 지음. 2019.05.15. (주) 창비. 299쪽. 15,000원.

김려령.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7년 『완득이』로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샹들리에』, 장편소설 『우아한 거짓말』 등을 썼다. 마해송 문학상,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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