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by Outis

버스정류장 그늘막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하얀 셔츠 소매는 금세 반투명하게 변했는데, 내 손은 조금도 줄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소금인형처럼 물에 녹아 없어지면 좋을 텐데.

평행우주, 그 어딘가에는 있을까? 그런 세상, 그런 내가.


아니.


- 그러게 왜 갑자기 둘째 낳자고 해서.


가장 완벽한 세상은 애초에 내가 없는, 나란 존재가 태어나지 않은 세상이다.


나는 눈을 감고 상상했다. 그 세상에서 엄마는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아들을 낳고, 너무 늦지 않게 사회에 복귀해서 커리어 우먼으로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계실 거다. 그럼 아빠랑 엄마가 다투실 일도, 형도 지금처럼 일부러 집을 피해 다닐 일도 없겠지. 화목한 집 거실에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 있을 거고, 거기에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복한 미소가 찍혀 있을 테다.

이토록 완벽한 피날레에 박수갈채와도 같은 빗소리가 쏟아졌다.


- 너만 없었어도.


챙그랑. 아직도 선명히 들려오는 듯한, 섬뜩한 쇠붙이가 타일 바닥을 때리는 소리.

나는 눈을 떴다. 비를 맞아 새까매진 아스팔트, 눅눅한 비내음 그리고, 나.


“... 하다못해 그날 사라졌더라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나는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비를 맞고 싶었다.

국어 교과서 예문으로 빠지지 않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 보면 병약한 여자아이가 비를 맞고 몸 상태가 악화돼서 죽던데. 혹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있을까.

설마. 헛웃음도 아까울 정도로 가짢은 망상이다. 우선 지병도 없을뿐더러, 흠뻑 젖어서 버스에 오르면 기사님도 다른 손님들도 싫어하겠지.

날 향한 사람들의 못마땅한 눈초리를 한창 상상하고 있는데, 기다리던 버스가 내 앞에 와 섰다.


버스에 올라탄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빛과 비가 그린 수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뒤로 달려가는 풍경과 함께 기억이 뒤로 걸었다.


- 내가 다음에 쓸 이야기, 그건 네 이야기란 거야.


“......”


비에 젖은 손이 찝찝하다.

걔는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런 소릴 한 걸까. 대체 뭘 쓰려고. 아니, 쓸 얘기나 있으려나. 전혀 재밌을 거 같지 않은데.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가 나에 대해 쓴다면 뭐라고 쓸까. 이야기 속 나는 어떤 캐릭터일까.

이제 막 시작된 스케치를 보고 완성작을 가늠하려 드는 것처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창문에 어렴풋이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할 불순한 존재, 이기적이고 주제를 모르는 한심한 인사, 주인공도 악당도 아닌, 그래,


‘아무것도 아닌 것’.


갑자기 오른쪽 눈이 따끔거렸다. 9년 전 ‘그때’부터 계속되어 온 증상이다.

딱 한 번, 엄마가 작정하고 집을 나가려 하신 적이 있었다. 정말 큰 마음먹고 결심하신 것 같았는데, 어쩌면 엄마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는데, 그걸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나였다.


- 엄마! 가지 마아!


그 결과 엄마의 삶은 지금과 같다. 나 자신만 생각한 죄, 겨우 바로잡을 기회를 날린 죄에 천벌이라도 내린 걸까. 아빠가 던지신 전화기에 현관 거울이 깨졌고, 그 파편이 내 얼굴에 튀었다.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 다행히 눈에는 아무 이상도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웃으셨고, 부모님은 화를 내셨다. 맹세코 거짓말은 아니었다. 눈은 정말 아팠고, 지금도 가끔 아프다.

남들은 심인성 증상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건 그날 깨진 거울에서 본 진실, 내 본모습을 잊지 말라는 각인이다.


‘괴물’. 그래, 내 이야기는 괴물 이야기가 될 거다.





“어? 아현아.”


버스에서 내려 보니 동생이 정류장에 나와 있었다. 아마 비가 와서 날 마중 나온 모양이었다. 말은 까칠하게 해도 속은 깊은 동생.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든 우산을 보고 아현이가 물었다.


“뭐야, 웬 우산이야?”


“오늘 만난 애가 빌려줬어.”


“뭐야. 괜히 나왔잖아.”


“이히히. 나 걱정했어?”


“전혀. 감기라도 걸려서 옮기면 귀찮으니까, 그뿐이야.”


“으휴, 하여튼 말 한 번 이쁘게 해요.”


우리는 나란히 집으로 걸었다. 아현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날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 만난 사람이라면 혹시, 저번에 말했던 ‘쏘 스위트’ 가이(‘so sweet’ guy)?”


“어?”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내가 갈피를 못 잡자 아현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왜에, 그 ‘So sweet’라고 쓴 쪽지를 보냈다는.”


“아..! 아하하~ 아 뭐야, 스위트 가이라니! 난 또.”


틀린 말은 아니다만, 정말 안 어울린다.

스위트 가이는 무슨. 어이가 없어서 웃고 있는데, 동생이 내가 쓴 우산을 가리키며 재차 물었다.


“근데 진짜, 이 우산 그 사람 거야?”


“어.”


“좋은 사람인데? 이런 날씨에 자기 우산을 주다니. 그럼 그 사람은 비 맞고 가겠네.”


“... 어?”


“보통 우산은 하나만 들고 다니잖아.”


생각이 많아지면서 걸음이 느려졌다. 그러고 보니 걔 한쪽 어깨가 유난히 젖어 있던 거 같은데. 나는 내 어깨를 한 번 만져보았다. 뽀송뽀송한 면의 감촉이 느껴졌다.


집에 거의 다 와갈 때도 빗줄기는 좀처럼 지칠 줄을 몰랐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걔네 집 멀지 않으려나...’


집에 다 왔다. 들어가기 전에 동생이 다리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며 투덜거렸다.


“누가 아침에 우산만 잘 챙겨갔어도 이런 귀찮은 일은 없었을 텐데.”


“미안.”


귀찮더라도 우산 가져갈걸. 미안함과 후회가 동시에 밀려왔다.

그치만, 날씨 탓도 있다. 오전엔 무려 잠시 맑게 개기도 했었다고. 그런데 갑자기 비라니. 여러모로 사람 헷갈리게.


-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열렸다가 닫혔다가, 맑았다가 흐렸다가.

오늘 날씨는, 길냥이다.





“아, 안녕.”


“어, 안녕.”


다음날,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얘랑 학교에서 인사하는 건 처음인 거 같은데. 오히려 그랬던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나는 곱게 접은 하늘색 우산을 돌려주며 쭈뼛쭈뼛 물었다.


“어제, 잘 들어갔어? 비.. 많이 안 맞았어?”


그는 처음 보는 물건 대하듯이 자기 우산을 내려다보더니, 우산을 받아 들고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응. 너는?”


“나야 뭐, 덕분에 잘 들어갔지.”


“그럼 됐어.”


“... 풉.”


그럼 됐어라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왜 그래? 뭐 잘못됐어?”


“쿡쿡, 아니.”


“뭐야...”


전혀 스위트하지 않은 저 한마디 한마디에 이상하게 마음이 진정된다.


“자, 앉아! 주말 잘 보냈나 봐? 다들 얼굴이 좋아 보이네?”


4월 중순의 화창한 날씨.

밤새 내린 비에 먼지가 씻겨서 그런가. 활짝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산들바람이 상쾌하다.





<일주일 후>


방과 후 한 초등학교의 교무실.

곱슬곱슬 웨이브 진 긴 갈색 머리카락을 흔들며 30대 초반의 젊은 여자가 한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이중상 선생님?”


“아, 혹시...”


“네. 연락드렸던 강혜정입니다.”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남자는 혜정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시군요. 어서 오세요. 어디, 상담실에 가서 얘기할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딱히 비밀 얘기도 아니고요.”


혜정의 말에 이중상 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가, 바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여기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어떻게,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혜정은 정중히 사양했다.


“아닙니다. 한창 시험 준비기간이라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찾아뵈어서 죄송해요.”


“아니요, 무슨 말씀을. 괜찮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인사가 오간 후,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아끼며 본론으로 들어갈 적절한 타이밍을 재었다. 만남을 제의한 사람이 말을 꺼내는 게 맞나, 아니면 이 장소가 편한 사람이 물꼬를 트는 게 맞나. 결국 이중상 선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요. 지금 솔이 담임을 맡고 계시다고요?”


“네.”


“어떻게... 그 애는 여전합니까?”


이 선생의 물음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혜정의 눈썹이 꿈틀 했다.


“여전하다, 하시면..?”


“이미 다 끝난 사건에 관심을 보이시는 건, 애한테 마음 쓰이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혜정의 커다란 눈이 이 선생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네, 맞습니다. 4년 전 일 자체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알고 계신 당시의 솔이에 대해 듣고 싶어요.”


“그래요...”


이 선생은 혜정의 눈을 자연스레 피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혜정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제 눈에는 솔이가 좀 위태로워 보여요. 이전에 비슷했던 아이를 알고 있어서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금방 안에서 깨져버릴 거 같은...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차라리 제 오지랖으로 끝나는 편이 나으니까요.”


마지막에 혜정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깊은 회한이 담긴 진심. 그에 회답해야겠다는 인간적 양심이 이 선생의 무거운 입을 열게 했다.


“기우도 오지랖도 아닐 겁니다. 4년 전 제가 본 그 애는 괴물이었으니까요.”


그는 씁쓸히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심한 일을 겪고도 어른들에게 기대려조차 하지 않았어요. 가능한 부모님을 자기 일에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더군요. 담임인 제게도 딱 하나, 다른 피해자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거 빼곤 바라는 것도 없었죠...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도 진심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결국 전학을 가버린 그 애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은 거 보면.”


이 선생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4년 전 병원에 찾아간 그날과 비슷한, 썩은 장처럼 꾸물거리는 하늘이었다.


“... 어쩌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건지도 몰라요. 아마 어른들이 못 미더웠겠죠. 결과적으론 그 애 생각이 맞은 게 되어버렸으니, 저로서는 할 말이 없지만요.”


가능한 일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저 좋을 대로, 편한 대로 이용한 어른들. 자신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그는 이 사실을 곱씹으며 몰래 자책해 왔다.


“괜찮으시다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 이 치부를 열어 보일 날이 올 줄 알았다. 아니, 어쩌면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에서 곪아 가는 썩은 살을 째어낼, 오늘 같은 날을.

이 선생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가 길어질 텐데... 아무래도 비가 많이 올 거 같군요. 우산은 가져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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