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세 번째

by Outis

4년 전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다.


결국 우린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피해 학생들을 보호하지도, 가해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도 못했죠.”


“가해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이중상 선생은 허공에 적힌 기사를 읽는 것처럼 덤덤히 말했다.


“당시 학교는 가능한 일을 크게 만들지 않는데 중점을 두었어요.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세 명 중 두 명은 증거 불충분으로 아무 징계도 받지 않았죠. 결과적으로 나머지 한 명에게 모든 화살이 돌아가게 되었고, 그 아인 퇴학당했습니다.”


“그 애는 어쩌다가...”


“가장 만만했던 거죠.”


솔직 담백한 대답에 혜정은 입을 다물었다. 이 선생은 자조하면서, 방금 그 한 마디가 축약하고 있는 내용을 풀어나갔다.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그 둘은 아버지들이 좀 높은 자리에 계셨다나 봐요. 어머니들은 학부모 대표를 맡고 계셨고, 일이 불거지자마자 손을 쓰셨던 모양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그렇지 못했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셨고, 어머니는 생계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분이셨습니다. 한 학생이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고, 사고가 있던 날 다친 학생과 그 세 명이 같이 찍힌 사진까지 나왔으니 모른 척 넘길 수도 없는데, 누군가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하니 가장 쉬운 애를 고른 겁니다.”


“비겁하군요.”


끓어 넘치는 분노가 혜정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녀는 곧바로 후회하며 이 선생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걱정과 달리, 이중상 선생은 껄껄 소리 내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비겁하고 졸렬했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추잡한 어른들의 사정을 13살짜리 애한테 들이밀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우릴 믿으라고 헛소리를 해댔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날을 회상했다. 선생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질타와 경멸 어린 눈빛을 각오했었는데, 의외로 아이는 차분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일은 생각보다 편히 흘러갔지만, 그만큼 마음은 불편했다. 차라리 애가 울며 원망했더라면, 그럼 속이 좀 덜 괴로웠을까.


이 선생은 당시 스스로에게조차 감추었던 솔직한 감정이 무엇이었나 하고 되짚어 보았다. 아이의 담담한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나, 그래서 지키지 못할 걸 알면서 일단 약속을 내뱉은 게 아니었나.

굳건한 의지의 부재 속에서 가벼운 긍정으로 포장된 언약은 끝내 형체 없는 웅얼거림이 되어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기 보단, 하지 않았다는 게 더 맞겠군요.”


겨우 아이 둘이었는데. 한 명은 더 심해진 괴롭힘과 학교의 무관심에 질려 전학을 가버렸고, 다른 한 명은 철저한 외면 속에서 모든 걸 혼자 견뎌나갔다.


이 선생이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혜정은 입안에 맴도는 궁금증을 꺼낼까 말까 망설였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결말을 알 수 없는 한 사람.


“... 퇴학당한 아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구르릉. 잔뜩 비를 품은 구름이 나지막이 울었다. 아직 이른 저녁시간인데도 밖은 마치 밤처럼 어두웠다. 무거운 그림자가 주름진 이 선생의 얼굴에 드리웠다.


“그 애는... 몇 년 뒤에 자기 아버지를 살해했습니다.”





<일주일 전>


“넌 어디 최 씨야?”


“경주 최 씨인데. 그건 왜?”


“오, 나랑 같네! 그럼 파는? 설마 파도 같을까?”


“... 정무공파.”


“아, 파는 다르구나. 난 충렬공파인데.”


아랑은 아쉽다는 듯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래도 동성동본이니까 우린 먼 친척이다, 그치?”


저 말을 듣자마자 바로 머릿속에서 반대 의견이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친척이어야 하지 않나. 이 좁은 한반도에 살면서 단일민족이라는 걸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니까. 일일이 추적하지 않는 외가까지 감안하면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닐 거다. 그러한 발상이 소속감과 보편적인 인간애를 불러일으킬지는 모르지만, 보편성은 특별함의 반대쪽에 있는 개념인 만큼 결국 ‘남이 아닌’ 남은 다시 ‘남과 다름없는’ 남이 되는 거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이견을 입 밖에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성씨와 본관이 같은 것에 저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게 신기하달까. 왠지 싫지 않았다.


“취미는 뭐야?”


호구 조사 다음에 꼭 나오는 단골 질문. 하지만 대답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취미. 여가시간에 곧잘 하는 일. 아마도 좋아하는 것과 일맥상통할 텐데, 그럼 좋아하는 일, 내가 뭘 좋아하더라?

별 성과 없이 시간만 흐르는 가운데, 나는 스스로에 대한 무지에 당혹감을 느꼈다. 이대로 대화가 어색하게 끊기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못 이겨, 나는 대충 적당한 걸 골랐다.


“음악 감상?”


무슨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모범답안. 너무 바람직하고 흔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다.

아니, 따지고 보면 완전 거짓말은 아니다. 수업시간과 수면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어폰을 꽂고 지내니까. 이젠 귀에 이어폰을 안 꽂고 나가면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인 데다, 실제로 음악도 좋아하니까.

가만, 이렇게 되면 분명 다음 질문은...


“어쩐지, 계속 이어폰을 끼고 있더라니. 음악 뭐 좋아해?”


‘아차.’


내가 듣는 음악은 대부분 형이 구해다 놓은 음악인데, 그게 하필 대부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음악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오타쿠 취급을 받겠지. 형 핑계를 대는 것도 웃기고. 이를 어쩐다?

참, 그중엔 정상적인 뉴에이지 음악이나 클래식 음악도 있지. 그중에서 꼽으라면 단연,


“사카모토 류이치.”


“흐음~”


어째 반응이 애매하다. 나름 잘 알려진 작곡가인데. 일본인인 게 문제였나? 역시 잘못 골랐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쩐다. 지금이라도 다른 클래식 작곡가 이름을 댈까?

내색은 못하고 속으로만 고민하고 있는데, 아랑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난주 점심시간에 들어본 거 같아. 뭐였지?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나는 눈을 껌뻑였다. 사르르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반가움에 입이 벌어졌다.


“어, 맞아!”


“되게 좋았는데. 뭔가 몽환적이고.”


다행히 넘어갔다’ 정도가 아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엄청 흔들어 놓은 탄산음료의 뚜껑을 열었을 때 하얀 거품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헬륨 가스로 심장이 빵빵하게 부푼 것 같은 기분.





‘어째 그렇게 웃고 있더라니. 좋아하는 곡이 나와서였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데면데면했었는데. 몰랐던 공통점이 하나 둘 쌓이면서 거리가 확 좁혀지는 느낌이 든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아, 응. 근데 보고 그리는 거 말고는 잘 못해.”


“대왕 고래는 안 보고도 쓱쓱 잘 그리잖아.”


“그야 많이 그려봤으니까. 그것도 측면 한 각도에서 밖에 못 그려.”


“원래 그렇지 않아? 보지도 않은 걸 그리는 건 누구한테나 어려울걸? 천재가 아닌 이상.”


“그럴까. 아무튼 그림에는 재능이 없어.”


아무리 보고 그린 거라지만 그 정도로 잘 그리면서 재능이 없단 소릴 잘도 한다. 어떨 때 보면 재수 없다 싶을 정도로 자신만만하면서, 이럴 땐 또 자기를 엄청 낮추네.

뭐랄까, 스스로 대해 객관적이지 못한 타입인 거 같다. 지금껏 적절한 피드백을 많이 못 받아 봤나?


“내가 보기엔 평균 이상인 거 같은데? 그리고 취미에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잖아.”


“그런가? 보통 잘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것같이 말야. 좋아서 하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거든.”


“아까는 취미면 좋아하기만 해도 된다더니, 취미로 끝내지 않을 건가 보네? 작가가 꿈이야?”


“음... 가능하면?”


“흐음~”


나왔다, 저 표정. 어제 차원이니 뭐니 구라칠 때 지었던, 뭔가 꿍꿍이가 있는 표정이다.


“왜... 그래?”


그가 씩 웃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셔 고양이’가 저렇게 웃지 않았을까. 나는 경계심에 슬쩍 몸을 뒤로 뺐다.


“그럼 엄~청 두루 많이 배우고 경험해야겠다. 공부 열심히 해야겠는걸?”


공부란 말에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경험은 그렇다 쳐. 근데 공부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글이라는 건 글쓴이의 머리에 든 것이 문자로 나오는 거잖아. 비문학의 경우야 말할 것도 없고, 문학에서도 지식이라는 재료가 풍부해야 표현력이나 구상력이 좋아지는 거 아냐? 작가들은 사실고증을 위해서 공부 열심히 한다던데.”


“......”


솔직히 글을 쓰고 싶다 생각만 했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직은 뜬구름 쫓듯이 막연히만 봐왔달까.

너 좋을 대로 하라는 소릴 들으며 자유분방하게 자랐고, 성적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학교 공부는 대부분 쓸모없다 여겼고, 자연히 멀리해 왔다.

그런데 저 말을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드는 거 같다. 나중에 써먹을지도 모를 재료를 모은다 생각하고 학업에 임해도 되겠다 싶었다.


맞는 말이다. 인정! 저렇게 실실 웃는 건 좀 짜증 나지만. 애가 인성도 괜찮았으면 참 좋았으련만.

그나저나 얘는 나중에 뭘 하려나?


“그러는 넌 어때? 장래희망 있어?”


여유롭던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눈이 허공을 더듬었다. 가능하면 대답을 피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딱히 민감한 질문이라고는 생각 안 했는데. 너무 난처한 걸 물었나?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는 찰나, 그가 웅얼웅얼 대답했다.


“뭐든 상관없어. 멀리 떠날 수만 있으면...”


- 글쎄. 너는 모르지만 난 아마 없을지도.


순간 근거를 알 수 없는, 직감적인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멀리 어디?”


“가능한 멀리. 세상의 끝이 있다면, 거기.”


“그게 어딘데?”


내 집요한 물음에 딴청을 피우고 있던 그의 눈이 다시 나를 향했다.





‘그렇게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고.’


그러게 ‘있다면’이라고 했잖아, ‘있다면’이라고. 그저 떠오른 대로, 추상적으로 표현한 건데 그걸 구체화하라니. 그런 어려운 요구를.


“글쎄. 굳이 말하자면 여길 기준으로 지구 정반대 편..? 어딜까나. 지도가 있어야 되겠는데.”


“어딘지도 모른다는 건, 가고 싶어서 가는 곳이 아닌 거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줄 거 같지 않다.

어쩌다가 이런 곤란한 일을 만들었을까. 본심을 슬쩍 흘려봤자 어차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목에 낸 상처처럼?

그럼 대체 뭐 하러 보인 걸까.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으면, 굳이 왜.


종이 고장 났나. 쉬는 시간은 또 왜 이렇게 길지. 나는 스스로 판 무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장난인양 가볍게 둘러댔다.


“그냥~ 멀리 가보고 싶어서.”


“음..?”


“아, 이제 슬슬 종칠 시간이네. 다음 교시 뭐였지?”


“... 생각해 봤는데.”


“어..?”


“나도 뭔가 받아야 할 거 같아.”


“... 어?”


아직 내가 판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아랑은 생각이 그새 아예 딴 데로 튄 모양이다.


“너 얘기 써준다고 했던 거. 글 쓰는 건 엄청 고되고 시간 걸리는 일이거든? 그런 걸 공짜로 해줄 순 없지.”


“... 그래서?”


“엽서 보내줘.”


“뭐?”


“세상의 끝인지 뭔지, 거기 가면 나한테 엽서 보내라고.”


“......”


“알았지?”


나는 아랑이 내민 새끼손가락에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걸고 말았다.


“그럼, 약속했다?”





<10년 후>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여느 날처럼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우리에게 날아온 비보. 너무 건강하신 아빠가, 한창 젊으시기만 한 아빠가 갑자기, 그것도 산책 중에 쓰러지셨다는 소식은 도무지 현실로 와닿지 않았다. 분명 뭔가 착오가 있는 거라고 되뇌면서도, 병원으로 달리는 택시 안에서 나는 그렇게 울었다.

52세. 너무도 이른 나이에 아빠는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곳곳에 아빠의 손때와 아빠와의 추억이 묻어 있는 이 집에 계속 사는 게 힘드셨는지, 엄마가 처음으로 이사하자는 말을 꺼내셨다. 그 후 석 달만에 내가 태어나서부터 줄곧 살아온, 내게는 유일했던 ‘우리 집’이 팔렸다.


“가져갈 건 박스에 넣고, 버릴 건 여기 봉지에 넣어.”


내가 이렇게나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었나. 잊힌 세월 속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이 날 짤막한 시간여행으로 인도했다.


옷가지 정리가 끝난 후,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안에 든 물건들을 꺼냈다.

팔랑. 오래된 일기장 속에 들어 있던 사진 몇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쪼그려 앉아 떨어진 사진들을 줍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놀이공원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 그 안에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나는 다른 사진들도 하나씩 넘겨 보았다. 다음 사진, 또 다음 사진. 마지막은 급히 찍은 흐릿한 사진이었다.


“......”


어항 속 물고기를 보고 있는 두 아이의 뒷모습과, 그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

사진을 찍은 그때처럼, 손이 떨려왔다.


- 내가 다음에 쓸 이야기, 그건 네 이야기란 거야. 약속할게.


어쩌자고 그런 약속을 했을까.


- 세상의 끝인지 뭔지, 거기 가면 나한테 엽서 보내라고. 알았지? 그럼, 약속했다?


어쩌자고 그런 약속을 시켰을까.


마지막 그 뒷모습으로부터 7년. 엽서는 오지 않았다.


- 저기, 혹시 이거... 저번에 말했던... 내 얘기야?


앞으로도 오지 않을 거다.


창을 통해 스며든 따스한 봄 햇살을 받고 먼지들이 반짝인다.


그 시절 우린 겨우내 헤어졌다가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학교에 모였었다. 마치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너무나 당연하게.


그러나 이제 우린... 봄이 와도 만나지 않는다.


나는 엄지로 인화지의 매끈한 표면을, 유난히 찍기 힘들었던 그 미소를 쓰다듬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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