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두 번째

by Outis

퍽.


약 한 달. 터진 내장과 부러진 갈비뼈가 낫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런데 또 배를 맞다니.


‘이런, 젠...’


자동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걸 참고 생각했다. 그래, 학교에 오면 이렇게 될 거라고 짐작하지 않았던가. 셋 중 제일 위험한 하나는 제거했지만, 나머지 둘이 분명 화풀이를 해올 거라고.


퇴원하고 학교에 나온 지 3일째. 어째 조용하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복도에서 마주친 그 두 놈이 내 멱살을 잡고 화장실로 끌고 왔다.

볼일을 보고 있던 아이들은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지금 여기엔 나와 이 둘뿐이다. 전부 다 멍청한 내 탓인걸. 후회해 봤자 동아줄 따위 내려올 리 없다.


“이 씹새가! 왜 눈에 띄고 지랄이야?”


둘 중 덩치가 더 큰 놈이 씩씩거리며 또 때릴 자세를 취했다. 다른 하나는 한 발짝 떨어져 낄낄대며 보고 있다.


힘으로나 머릿수로나 상대가 안 되는 싸움. 내가 이길 확률은 0에 가깝다.

애초에 이기는 게 내 목표도 아니다.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은 또 불미스러운 사건을 만들지 않는 것. 내 자존심 따윈 고려할 가치도 없다.


“읍.. 흐으, 흐으...”


나는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고꾸라져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막 아문 상처에 맞아서 정말로 아프기도 했지만, 실제 아픈 것보다 더 과장된 행동이었다.


내가 또 잘못될까 놀랐는지, 날 때린 놈이 순간 주춤했다. 다행히 아주 답 없는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었다.

때마침 종이 쳤고, 뒤에서 보고 있던 놈이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그러자 앞의 덩치가 으름장을 놓았다.


“너 앞으로 조심해. 나대면 죽인다.”


“그래. 대수 걔랑 우린 차원이 달라. 교장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고.”


뒤에 있던 놈이 슬그머니 다가와 발로 내 얼굴을 툭툭 차며 말했다.


“살아서 졸업하고 싶으면, ‘얌전히 있어’.”


둘은 킥킥거리며 화장실을 나갔다. 문이 열리자 밖에서 염탐하고 있던 애들이 화들짝 놀라 흩어졌다. 그중 몇 명은 다시 돌아와 빼꼼히 고개만 들이밀고 나를 구경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토할 거 같았다. 배의 통증보다, 화장실 구린내보다 저것들이, 저것들이 훨씬 역겨웠다. 하지만 토하면 옷도 더러워질 거고 청소도 해야 하니, 일이 복잡하다. 참아야 한다.

뭣보다.. 토사물 냄새가 싫다.


나는 한참을 가만히 누워 속을 달랜 후, 천천히 일어났다.

세면대 거울에 여기저기 흐트러지고 터진, 형편없는 내 몰골이 비쳤다. 어차피 이미 수업엔 늦었으니, 이 꼴로 열심히 달려가본들 의미가 없다.


“하아... 얼굴은 좀 건들지 말지. 뭐라고 변명하냐고.”


쏴아. 하얀 세면대에 비릿한 곡선을 그리며 붉은 피가 하수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입술과 뺨은 벌써 부어 있었다. 집에 가기 전까진 부기가 빠져야 할 텐데. 제발 멍 같은 건 들지 않기를.

비누로 티셔츠에 묻은 피를 빨고,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고,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었다.


교실에 도착했을 땐 종 친지 20여 분이 지난 뒤였다. 드르륵. 평범하게 수업 중이던 교실의 모든 이목이 내가 선 뒷문으로 향했다. 담임 선생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솔아, 너...”


“계단에서 넘어졌어요. 저 보건실에 좀 가도 될까요?”


뻔한 거짓말. 어른들에겐 불편한 진실보다 더 반가울 거다.


“... 그래.”


“감사합니다.”


탁. 나는 그대로 교실 문을 닫았다.

사람이 가득한 교실과 텅 빈 복도. 부자연스러운 비균질성.


보건실에서도 거짓말은 계속됐다.


“계단에서 넘어져서 굴렀어요.”


“어머, 이리 와.”


따가운 소독이 끝나고, 차가운 얼음주머니가 쥐어졌다.


“선생님, 저 좀 누워있다가 가도 될까요? 배가 아파서...”


“그래, 그러렴. 저기 빈 침대에 누워 있어.”


“감사합니다.”


나는 얼음주머니를 얼굴에 대고 새하얀 보건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순간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뭐, ‘좋은 일을 한 건데 결과가 왜 이렇냐’고 따지기라도 하려는 건가. ‘좋은 일’을 할 생각 따위 없었던 주제에.

그저 나 자신의 필요에 충실했을 뿐인 주제에.

역겹다.


‘토할 거 같아.’


하얀 보건실 천장이 암흑에 잠기고, 가슴 깊숙이서부터 답답함이 차오른다. 미지근한 무언가가 귀 쪽으로 흘러내린다.


제발, 이대로 깨지 않았으면. 여기서 모든 게 멈추었으면...


하지만 그런 자비 따윈 없는 거다.


“들었어? 쟤 말야...”


“쟤 걔한테 당했대.”


역겨워.


“내가 듣기로는 셋한테 당했다던데?”


“대~박~”


저들이 입으로 싸는 똥이 내 귀에 발리는 거 같다.

닥쳐달라고 해서 닥쳐줄 세상이 아니란 걸 알기에, 나는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차라리 잘됐다. 안 그래도 어중간하게 걸쳐 있는 관계를 어떻게 쳐낼까 고민했는데, 알아서 떨어져 주니 편하다.

외따로이 떨어진 섬처럼, 나는 벽을 치고 또 쳤다. 이제 내가 다가가지 않는 한 누구랑도 이어지지 않을 거다.


그런 일은 없을 거다.





<4년 후>


짝!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닿았네?”


손바닥이 화끈거리며 고자질을 해댔다. 아, 그렇구나. 또 쟤한테 맞은 거구나.


“평생이니 영원이니, 생각보다 짧다?”


물론 내가 늘어놓은 게 궤변이란 거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나올 줄이야. 전혀 예상도 못했다.


“좋아, 너로 정했어.”


아랑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 어?”


“내 글에 영감을 줄 사람, 너로 정했다고.”


도통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간다.

아까부터, 손바닥을 맞은 그때부터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돌아가는 느낌이다.

아랑이 빙그레 웃으며 덧붙였다.


“내가 다음에 쓸 이야기, 그건 네 이야기란 거야. 약속할게. 그러니까 나한테서 도망치지 마, 알았지?”


뭔가 기시감이 든다. 웅웅 울리는 지하도의 공기. 목울대의 떨림이 되살아 났다.


“자, 약속!”


그녀가 붉어진 손을 들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도 머뭇머뭇 손을 들어 그녀의 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었다.


“도장, 그리고 복사.”


따끈한 기운이 도는 두 손바닥이 스쳤다.

나는 아직도 얼얼함이 가시지 않은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나 도서관에 반납할 책 있어. 같이 가.”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부탁하는 것도 아닌, 아주 당당한 요구.

약속했으니 따라가야 하나.


“... 알았어.”


아랑이 책을 반납하고 있는 사이, 나는 처음 보는 도서관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로비 한구석에 제법 큰 어항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어항으로 가서 물고기들을 구경했다. 흐늘흐늘 흔들리는 지느러미와 꼬리, 아름다운 유선형 몸, 알록달록한 색깔. 살아 있는 물고기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엄마, 물고기! 물고기!”


“물고기 보러 갈래!”


꼬마 둘이 어항을 발견하고는 이쪽으로 뛰어왔다. 갑자기 주변 이목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다 큰 고등학생이 어린애들이랑 같이 물고기를 구경하다니,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나는 모른 척 옆으로 물러나 딴청을 피웠다. 좀 아쉽긴 하지만, 흥분해서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조금 뒤 책 반납을 마친 아랑이 돌아왔다.


“온 김에 책 안 빌려 갈래?”


“책... 난 별로.”


“아, 책 싫어해?”


“싫다기 보단, 잘 못 읽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아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책 읽는데 잘 읽고 못 읽고가 어딨어?”


“빨리 읽지를 못해서.”


“뭐야, 무슨 시합 나가? 자기 속도로 읽으면 되지~”


이번엔 내가 갸웃했다. 어려서부터 형이 책 서너 권쯤은 앉은자리에서 뚝딱 읽어내던 모습을 보고 자라온 탓에, 당연히 다독과 속독이 독서를 잘하는 필수 조건인 줄로만 알았는데.

학교에서도 그렇다. 최대한 빨리 지문을 읽고 이해하여 주요 내용을 정확히 캐치하는 걸 테스트하지 않는가.


“글쎄. 그래도 너무 느린 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지금껏 호기심에 형이 가지고 있는 책을 몇 번 뒤적여 보긴 했지만, 끝까지 읽은 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었다. 대부분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한 페이지 읽는데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도중에 포기했다. 역시 나는 책 읽는 것에 소질이 없구나 싶었고, 달리 할 공부도 많은데 굳이 시간을 들여서 책 한 권을 통째로 읽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사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어. 어차피 필요한 건 교과서나 문제집지문으로 나오는데 뭐.”


“무슨, 필요로만 책을 읽어? 재미로도 읽는 거지.”


“재미?”


“지금까지 재밌게 본 책 없어?”


나는 곰곰이 형 방에 있는 책들을 떠올려 보았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신곡”, “피네간의 경야”, “일리아스” 등.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특히 “장미의 이름”은 “네가 그걸 다 읽으면 만원 주지”하는 형의 도발에 넘어가 도전했다가, 끝내 몇 페이지 못 읽고 포기했었다.


“별로. 만화책 빼고는.”


“풉! 너도 그런 거 읽어?”


아랑이 의외라는 듯이 웃었다. 왠지 내심 반가운 눈치였다.


“만화책도 좋지만, 다른 건? 진짜로 좋아하는 책 전혀 없어?”


... 아, 딱 하나 있긴 하네. “상실의 시대”.”


“어! ‘무라카미 하루키’! 그 사람 책 재밌지.”


“그런가. 내가 읽은 건 그거 하나뿐이라서.”


“다른 것도 읽어 봐. 현실과 환상을 담담한 문체로 엮어 놓은 게 정말 일품이야.”


“그렇구나...”


응. 근데 그거 읽을 정도면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문제가 있다고 한 적은 없는데.”


“히히. 그럼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오늘 하나 빌려 가는 거 어때?”


아랑이 고갯짓으로 도서관 안쪽을 가리켰다. 잠깐 마음이 동했지만, 발을 뗄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에. 이번 주는 바쁘니까. 곧 시험 기간이기도 하고.”


“아, 그러네...”


순간 아랑의 표정이 멍해졌다. 괜히 중간고사 얘길 꺼냈나? 나는 다른 화제를 생각해 보았다.

문득, 아까 내 이야기를 써주겠다던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넌 책 좋아하나 봐. 아까 얘기하는 거 보니까 글도 쓰나 본데.”


“응? 응. 이야기 좋아해. 보는 것도, 쓰는 것도.”


슬슬 나가서 바깥공기를 좀 쐬었으면. 마침 아랑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이제 갈까?”


“그래, 그만 가자.”


오전부터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더니, 드디어 구름이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는데 아랑이 난처한 얼굴로 제법 굵은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너 우산 없어?”


“어. 아침에 고민하다가 비 안 올 거 같아서 안 가져왔는데... 할 수 없지 뭐.”


“... 같이 쓸래?”


“어? 어어...”


“싫으면 말고.”


내가 혼자서 가버리자 아랑이 바로 타다닥 뛰어왔다.


“야! 그래도 한 번은 더 물어봐야지!”


아랑은 우산 속으로 뛰어들면서 눈을 흘겼다. 나는 말없이 씩 웃고는 그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넌 어디로 가?”


“버스 타러. 너도?”


“응. 같은 버스는 아니겠지?”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서로 다른 버스를 기다렸다.

아랑이 탈 버스가 먼저 도착했다.


“나 갈게. 잘 가.”


“너네 집,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워?”


“어?”


그저 입고 온 티셔츠 색이 너무 옅어서, 그래서.

막 버스에 오르려 준비하는 그녀의 손에 무작정 우산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뒤로 좀 멀리 물러섰다.


“잘 가.”


아랑은 나와 우산을 번갈아 보며 망설였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그녀를 재촉했다.


“안 타요?”


“아, 죄송해요. 탈게요.”


아랑이 움찔하며 얼른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창문 속 그녀의 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좌석에 앉은 그녀가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이 움직이고,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버스 뒤꽁무니를 보며, 나는 아까 그 입모양을 떠올렸다. ‘고마워’는 아니었고, 아마도 ‘내일 돌려줄게’였던 거 같다.


정류장에 혼자 남아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일 밤 11시까지 영어 대본 이메일로 보내기, 그리고...


- 약속!


화끈하게 맞고, 스치고, 우산을 건네줬다.

이제는 비어 있는 그 손을, 나는 꽉 주먹 쥐었다.


... 어쩌자고 그런 약속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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