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1)

by Outis

왁자지껄한 점심시간. 학교에 찾아온 한 40대 후반의 여자가 교무실 문을 열었다. 이런 상황이 영 어색한 듯 문가에 서서 쭈뼛거리던 그녀는 지나가는 한 남자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한데 혹시 강혜정 선생님 자리가...”


“아, 저쪽입니다. 마침 계시네요. 강 선생님!”


부름을 들은 혜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를 맞으러 갔다.


“어서 오세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쪽으로 오시죠.”


두 사람은 혜정의 자리로 향했다.


“여기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여자는 혜정이 준비한 의자에 앉았다. 혜정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좀처럼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여자의 용모를 자연스럽게 훑어보았다.

여자는 얼굴 윤곽과 이목구비가 미인이라 불리기에 충분했지만, 어두운 눈빛과 잔주름,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로 인해 그 미모가 한껏 죽어 있었다. 얼굴에 칠한 분은 붕 떠있었고, 뒤로 느슨하게 묶은 푸석한 갈색 머리카락은 아랫부분에 에센스가 뭉쳐 있었다. 입고 온 옷도 유행이 한참 지난 연갈색 블라우스와 주름진 검은 마 바지였다. 구두는 끝이 뭉툭한 디자인으로 신기 편해 보이는데도, 여자는 불편한지 자꾸 발을 꼼지락 거렸다.

전체적으로 나름 신경은 썼지만 평소 소홀했던 관리를 숨기진 못한 모습이었다.


“저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여자는 잘게 떨리는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혜정은 얼른 고개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아, 별일은 아니에요. 그저 솔이 어머니가 어떤 분이신지 한 번 뵙고 싶기도 했고, 부탁드릴 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모셨어요. 이렇게 뵈니까 참 미인이셔요.”


“아, 아니에요. 제가 무슨...”


“솔이는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았나 봐요?”


아들이 자기를 안 닮았다는 우회적 표현을 듣고 여자는 처음에는 환하게 웃다가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살짝 내리깐 그녀의 눈에 그늘이 졌다.


“네. 걔는 지 아빠를 닮았어요.”


여자는 여전히 입을 가린 채 대답을 했다. 그녀의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가려진 얼굴에서 혜정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좀 더 그 속이 보고 싶었다.


“어떤가요?”


“네?”


“제가 아직 미혼이라 궁금해서요. 아이가 본인을 닮은 게 더 이쁜가요, 아니면 배우자를 닮은 게 더 이쁜가요?”


여자의 손이 스르륵 내려갔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다가, 어색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둘 다... 좋지 않을까요?”


혜정은 여자의 얼굴 한가운데, 코 언저리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여자가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혹시 솔이 학교생활에 대해 궁금하신 점 있으세요? 걱정되는 점 같은 거요.”


“글쎄요, 워낙 알아서 잘하는 애라 딱히...”


대답해 놓고 너무 애한테 관심이 없어 보이진 않을까 걱정이 된 여자는 아들에 대한 고민거리로 뭐가 적당할지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애가 사교성이 부족하다고들 하셔서요. 친구를 많이 못 사귀는 게 걱정이에요.”


옳거니. 혜정이 눈을 반짝였다.


“솔이,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는데요?”


여자가 깜짝 놀라며 혜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 걔가 친구가 있다고요?”


“그럼요. 솔이가 말 안 하나 봐요.”


“... 아무래도 남자애라...”


흐려지는 말꼬리를 따라 여자의 고개가 아래로 숙여졌다. 혜정은 여자의 변명에 일부러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죠. 게다가 사춘기라 더 그러겠죠.”


“네. 암튼 잘 됐네요.”


“... 어머니, 사실 오늘 이렇게 모신 건,”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낼 차례다. 혜정은 입가에서 미소를 거두고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그와 관련해서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예요.”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니요, 아닙니다.”


방긋방긋 웃는 혜정과 달리 여자는 표정이 복잡했다. 어쩌다 보니 상대가 유도하는 대로 따라오고 말았다. 과연 이래도 되나? 혼자 결정했다고 나중에 남편한테 한소리 듣지 않을까? 여자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허락한다 했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꿀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제 끝나가는구나. 저게 신호인가? 여자는 살며시 핸드백에 손을 넣었다.


“아니에요. 애들 가르치시는 것도 힘드실 텐데 이렇게 저희 애 신경도 써주시고, 제가 다 감사하죠...


여자가 하얀 봉투를 꺼내어 재빨리 혜정의 손에 쥐여주었다. 생각도 못했던 기습에 혜정은 화들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여자의 손을 밀어냈다.


“어머, 이러시지 마세요.”


“아이 선생님, 별거 아니에요.”


아직 젊은 선생이라 순수한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여자는 목소리를 낮추어 덧붙였다.


“걱정 마세요. 요새도 다들 이런 거 한대요.”


“아니요. 그만하셨으면 합니다.”


질색한 혜정은 그만 정색을 하고 말았다. 민망해진 여자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봉투를 쥔 그녀의 손이 다시 핸드백 안으로 들어갔다.

속이 상한 여자의 모습을 보고 혜정은 아차 했다.


“죄송해요. 좋은 마음으로 그러신 거 알지만, 정말 안 돼요. 바라지도 않고요. 저는 다만 솔이를 생각해서...”


말이 길어질수록 분위기는 점점 더 어색해져만 갔다. 결국 혜정도 입을 다물었고,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여자가 벌떡 일어나며 인사를 했다. 혜정은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그녀를 따라가려고 몸을 일으켰다가, 그게 그녀를 더 난감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어 도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저 멀리 교무실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게 보였다.


“후우...”


혜정의 깊은 한숨소리를 듣고 맞은편에 앉은 수학 담당 한 선생이 말을 걸었다.


“저분이 최솔 어머니야?”


“네.”


“뭔가 심상치 않네?”


혜정은 자기보다 10년도 더 오래 교편을 잡아 온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선생님 보시기에도 그래요?”


“어. 그건 그렇고, 최솔이가 올해 강 선생 관심 학생인가 봐?”


혜정은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한 선생이 혀를 끌끌 찼다.


“강 선생이 무슨 ‘히메나 선생님’이라도 돼? 적당히 대충 해. 할 일만 하라고. 안 그러면 지쳐서 오래 못해.”


“히메나 선생님, 진짜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천사들의 합창” 어렸을 때 재밌게 봤는데.”


“말 돌리지 말고. 진심으로 강 선생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혜정은 아까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을 떠올렸다.


- 저는 다만 솔이를 생각해서...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학생을 위하네 뭐네 하는 거 다 거짓말이에요. 다 저 좋자고 하는 짓인 걸요. 애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오직 제 이기심을 위해 밀어붙이고, 졸업해서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그걸로 끝이니까요.”


“그럼 그것도 그만둬.”


무 자르듯이 명쾌한 한 선생의 한 마디에 혜정은 그저 쓸쓸히 웃었다. 이번에는 한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에휴. 그나저나 이번에 강 선생이 하려는 일, 난 반대야. 최솔이 성적 떨어지는 거 원치 않거든.”


혜정은 눈을 깜빡이며 한 선생을 바라보았다. 다른 반 담임인 한 선생이 자기 반 학생에게, 그것도 눈에 잘 안 띄는 조용한 아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게 혜정은 신기했다.


“어머, 그러고 보니 선생님 아까부터 솔이를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한 선생은 되려 네가 더 신기하다는 투로 말했다.


“당연하지. 이번 중간고사 성적 안 봤어? 수학 공동 1등, 그 두 명이 다 강 선생 반 애들이잖아.”


“아 맞다! 그럼 지금부터는 그 애들이 한 선생님 관심 학생들이 되는 건가요?”


혜정이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그 모습에 안도한 한 선생은 다소 과장된 어투로 말했다.


“고럼! 기말고사까진 그 둘이 내 사랑하는 아들들이지.”


“아, 선생님 정말~”


혜정은 한 선생이 언급한 두 학생을 떠올렸다.

마치 효율성을 따지며 시험공부를 한 것처럼 비중이 높은 과목에서 유난히 점수가 높은, 그중 수학에서 특히 두각을 드러낸 최솔.

그리고 입학 전부터 선생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았던, 전교 1등이자 혜정이 맡은 반의 반장.


‘박정우.’





<한 달 전>


싸울만하다 생각한 건지 아니면 자존심 때문인지, 김다윗의 경고에 잠시 움찔했던 노대수가 으르렁거렸다.


“뭐야 너, 한 번 해보자는 거야?”


이에 김다윗은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맞받아쳤다.


“그건 너한테 달렸지. 여기서 조용히 물러나든지, 아니면 네 말대로 한 번 해보든지. 어느 쪽이든 난 환영이야.”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차가운 눈빛으로 노대수를 노려보았다.


“다만 이 이상 내 친구한테 시비 걸면 넌 죽은 목숨이니까, 그렇게 알아.”


청춘 드라마였다면 꽤 멋있었겠다만, 현실에선 좀 오글거리지 않나.

뭣보다 친구라 부를 만큼 친하지도 않은데. 나로서는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다.


어쩌다 사건의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인이 된 나와 아랑은 김다윗과 노대수를 번갈아 보았다. 살기등등한 김다윗의 시선을 받으며 노대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씩씩거리고만 있었다. 저 김다윗이랑 맞짱 뜨는 것도 보통 용기로는 안 되겠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꼴이 정말 우스워질 거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상황.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그때였다.


“무슨 일 있어?”


반장인 박정우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능청을 부리며 다가왔다.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우리를 쓱 둘러보며 말했다.


“마침 선생님께 가려던 참인데, 내가 뭐 전해드릴 일 있을까?”


“이 씨..! 너 두고 봐!”


노대수는 김다윗의 손을 뿌리치고 나에게 소리치며 자리를 떴다. 그가 교실문을 박차고 나가자마자 그동안 눌려 있었던 아이들의 수다가 폭발했다.


“괜찮아?”


김다윗이 내게 물었다. 아까의 서슬 퍼런 살기는 온데간데없이, 그는 평소의 순둥이로 돌아와 있었다.


“... 덕분에.”


대체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계산이 맞지 않는다. 친구라 부를 만큼, 이런 귀찮은 일에 나서줄 만큼 얘가 나랑 친했었나? 그저 장조림 몇 번 나눠준 것 밖엔 없는데. 고작 이유로?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에이, 무슨.”


아랑의 인사에 김다윗은 부끄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나도 뒤늦게 인사를 했다.


“나도. 고마워.”


“... 뭘.”


김다윗이 씩 웃었다. 아까 그 어벙한 미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미소다. 내가 놓친 뭔가가 있나, 아니면 그냥 착각인가.

그때 박정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이름이 최솔, 맞지?”


“어? 어.”


“같은 반인데 이제야 말을 나누네. 발표 잘 들었어. 그리고 아까 대수한테 했던 말도.”


“어... 어.”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을 다 하고, 대단하더라.”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숫자를 들먹인 건 왠지 수학에 약할 거 같은 노대수를 당황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을 뿐, 사실 내용은 별 거 없었다. 게다가 일부러 억지를 부린 부분도 있었다. 다행히 노대수는 눈치채지 못한 거 같았지만. 별로 칭찬받을 짓은 못되었다.


“특히 6줄에서 겹치지 않게 페어(pair)를 만들 수 있다는 거,”


가슴이 뜨끔하다. 그래, 저 부분이다. 그저 더 어려워 보이게 하려고 추가한, 실제론 아무 의미 없는 소리다. 과연 얘가 알고서 지적하는 걸까?

박정우가 말하다 말고 갑자기 몸을 숙이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거기서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던데?”


“... 어?”


그는 다시 허리를 펴고, 방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 부분이 좀 아쉬웠어. 우리 일 년 내내 이대로 앉을 게 아니잖아? 비록 설득력은 있었지만.”


나는 멍하니 박정우를 바라보았다. 분명 아까 귓속말로 날 비꼬았던 거 같은데? 그래 놓고 저렇게 모른 척 웃고 있다니.


‘뭐야 이 자식?’


“슬슬 수업 시작하겠네. 다음에 또 보자.”


딩동댕동- 박정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이 울렸다.


돌아서며 내게 손을 흔드는 김다윗, 아직 비어 있는 노대수의 자리, 그리고 전과 많이 달라 보이는 박정우의 뒷모습.

고작 10분 안에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전 24화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