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또각. 리드미컬하게 울리는 구두굽 소리가 비교적 한산한 1층 복도에 울려 퍼졌다.
“문제아, 라.”
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며 되뇌었다. 피식, 자연스레 비웃음이 지어진다. 그래, 문제아. 그날도 이맘때쯤이다.
1998년 3월,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는 어느 날 수업을 빼먹고 옥상에 올라갔었다.
<14년 전>
끼익. 나는 옥상으로 통하는 두툼한 철문을 밀어젖혔다. 울퉁불퉁 뜬 페인트의 거친 감촉이 손에 느껴진다.
문이 열리고, 회색 지평선 위에 파란 하늘이 열렸다. 철컹. 뒤에서 저절로 닫힌 문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지켜주리라 믿으며, 난 망설임 없이 그 하늘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펜스에 몸을 기대고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규칙에 순종하며 교실에 모여 있을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우쭐해할 선생들. 모두를 내 발밑에 두었다는 쾌감이 든다.
나는 교복 재킷 주머니에서 꾸깃한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칙, 칙칙. 화륵. 불붙은 담배가 재로 화하면서 남긴 연기. 나는 그 연기를 한 모금 진하게 빨았다.
“후우...”
죄악감을 닮은 탁한 연기가 푸르름 속으로 흩어지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언제부터 이걸 피우기 시작했더라. 모르겠다. 기억력까지 태워먹었나. ‘언제’가 생각이 안 나자 ‘왜’가 튀어나온다.
“카악! 퉤!”
무심코 딸려 나온 껄끄러운 기억을 가래와 함께 뱉어버렸다.
뭘, 그냥 한 거지. 하다 보니 이젠 때 되면 배고프고 소변 마려운 것처럼 생리적 욕구 비슷한 게 됐고. 딱히 담배 자체는 좋지도 싫지도 않다.
아니, 실은 싫다. 그래서 피우는 거다. 이 해롭고 매캐한 연기로 폐를 채우고 싶다는, 비뚤어진 자기 파괴적 욕구.
“후우~”
오늘도 담배와 함께 생명줄을 태운다. 이러다 보면 끝에는 엄마처럼 되겠지.
‘그 편이 좋아.’
태어나게 해달라고 한 적 없다. 멋대로 명줄을 꼬아서 이런 세상에 던졌잖아. 깔끔하게 마무리도 안 한 이 옥상 가장자리처럼 비루한 회색빛 인생. 그걸 재로 만들겠다는데 뭐가 문젠데.
“그만두는 편이 좋아.”
분명 아무도 없을 등 뒤에서 웬 차분한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놀라서 하마터면 담배를 떨어뜨릴 뻔했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애가 문 옆 바닥에 주저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는 못 들었다. 그렇다는 건 저 아이는 내가 오기 전부터 여기 있었다는 뜻이다. 인기척도 없이 뒤에서 몰래 관찰하다니, 음흉하기는.
그는 말을 걸어 놓고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리깐 눈에 드리운 속눈썹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길고 풍성했다. 피부는 도자기처럼 하얬고, 입술은 예쁜 분홍 장미 색깔이었다. 어깨에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은 끝이 웨이브져서 살짝 말려 있었는데, 화보 찍을 요량으로 일부러 꾸민 것처럼 완벽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뒤를 돌아보게 만들 정도의 미모였다.
‘생긴 건 멀쩡한 게 이런 데서 뭐 하는 거래?’
그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모르고, 끝에 어떤 지경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런 멍청한 도박도 없어.”
“뭐?”
기분이 상한 나는 팍 인상을 쓰면서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그제야 그 애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어딘지 나른해 보이는 갈색 눈동자였다.
“죽고 싶으면 다른 방법을 찾으란 얘기야.”
“뭐라는 거야?”
“아, 아니었어? 그럼 더더욱 담배는 끊는 게 좋아. 분명 나중에 후회할 테니까.”
“허, 뭔 상관? 신경 끄지?”
“하긴 그렇네. 하지만 앞으로 상관있을 누군가는 아직 말을 못 하니까, 내가 대신해 줘도 되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활짝 웃었다. 저걸 보기 전까진 그냥 무시하고 갈까 했는데,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만 같은 저 미소가 발을 붙잡았다.
“... 그게 누군데?”
“네 아이. 죽으려는 건 아니라며. 그럼 몇 년 뒤엔 너도 엄마가 될 텐데, 미리 끊어 둬.”
듣자 듣자 하니까 이게 정말. 어디서 설교질이야, 구역질 나게.
“미친. 뭐래냐? 난 결혼할 생각도 없고, 애를 낳을 생각은 더더욱 없거든.”
미쳤다고 그 짓을 하냐.
엄마는 내가 14살 때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입가심이네, 이게 없으면 일이 안 되네 변명만 늘어놓으며 매일 재떨이가 한가득 차도록 담배를 피워대더니, 명줄도 같이 태워먹은 거다. 몇 달이나 기침을 해대길래 병원 좀 가보라고 내가 그렇게 닦달을 했건만. 살이 빠져서 좋다는 둥,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고 미루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구토를 하면서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간 엄마는 검사 후 4기 폐암에 뇌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 괜찮아. 엄마 금방 나을 거야. 퇴원하면 이번엔 진짜 담배 끊을게. 정말이야.
누렇게 변색된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오열하는 내게 끝까지 거짓말만 치던 엄마.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퉁퉁 부은 엄마의 얼굴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믿고 싶었던 엄마의 거짓말은 끝내 거짓말로 남았고, 몇 달 뒤 엄마는 병원 침대 위에서 싸늘하게 식었다.
난 엄마의 그 꼴을 보고도 담배에 손을 댔다. 그렇게 치를 떨던 담배를 입에 물고, 엄마가 죽은 지 반년 만에 새엄마를 들인 아빠 앞에서 보란 듯이 피워댔다. 그런 내가 뭐, 결혼? 자식? 사랑? 처음 들이킨 담배 연기보다 역겨운 게 그 사랑이란 건데.
“그래? 나랑 같네.”
그는 얼굴에서 미소를 싹 지우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미안, 그냥 하던 대로 해. 내가 아까 한 말 신경 쓰지 말고.”
“......”
나는 태연하게 책을 읽고 있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말라는데 어째 더 신경이 쓰인다. 저 차분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장작불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화가 식어버렸다.
“... 근데 넌 이런 데서 뭐 해?”
“동반 투신자살,”
“... 어?”
“하려는 부분을 읽고 있었어.”
그가 읽고 있던 책을 들어 보였다. 책 이야기였구나. 잠시나마 당황했던 게 부끄럽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책 제목을 읽었다.
“인간... 실격?”
들어본 적도 없건만 왠지 제목 하나만으로도 벌써 공감이 간다. 나 같은 구제불능에 대한 얘기인가?
“뭔 내용이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타인과 능숙하게 섞일 줄 모르는 주인공 ‘오바 요조’가 일생 동안 느꼈던 공포와 좌절, 그리고 그의 파괴적인 현실도피적 삶에 대한 얘기야.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던가, 유언이라는 말도 있어.”
당최 뭔 소린지. 똑똑한 앵무새가 읽어주는 안내문 같은 느낌이다. 결국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죽으려 했다, 그건가?
“한심하네. 남들 눈치나 살피고.”
“한심하다... 맞아, 한심해. 난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지만. 나도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으니까.”
그는 또 그 거슬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같은 인간이라는 동질감의 펜스 안에 머무는 게 죽을 만큼 힘들어도, 그걸 들키면 펜스 밖으로 쫓겨날까 봐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스스로를 광대로 만들면서까지 받아들여지고 싶었던 한 어린아이의 인간에 대한 처절한 구애...”
이해할 수 없으니 나는 그저 내 멋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런 걸 이해할 수 있으니까 저렇게 부서질 거 같은 미소를 짓나 보다 하고.
“... 뛰어내릴 건 아니지?”
“어?”
“그런 사고가 나면 여기, 출입 금지될 거니까.”
“... 너 앞으로도 계속 여기에 올 거야?”
“어.”
“그럼 또 보겠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물었다.
“넌 이름이 뭐야?”
“......”
“걱정 마. 네가 누군지 알아도 고자질 안 할 거니까. 우린 같은 죄를 지은 공범이잖아.”
하찮은 농담.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내 이름 석자를 댔다.
“배수경.”
“수경이구나.”
“너는?”
“난 지미니.”
난 처음에 그 이름이 ‘지민’이라는 줄 알았다.
사실은 ‘지민희’였단 걸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14년 후>
민희가 그렇게 웃은 건 전혀 괜찮지 않기 때문이란 걸 안 것은, 그로부터 한참도 더 뒤의 일이었다.
찰칵. 끼익. 나는 점심시간 동안 잠가두었던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 조심해. 여기는 유령이 나오니까. 13년 전에 죽은 여자아이 유령.
아까 그 남학생이랑 만나서 한 얘기 때문인가. 책꽂이로 눈이 간다. 더 정확히는 거기 꽂혀 있는, 물방울무늬 포장지로 감싼 책으로.
- 까딱 잘못하면 너도 그 애한테 홀려서 여기에 붙박이고 말 걸.
나을 수 없는 저주. 결국 여기로 돌아오고 말았다.
“너도, 그리고 나도. 그렇지?”
<한 달 후>
노대수와의 일이 있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김다윗이 마치 몇 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굴기 시작했다.
“혼자서 뭘 그렇게 듣냐?”
“앗!”
갑자기 나타나 내 아이포드는 물론 이어폰까지 뺏어간 김다윗은 노래를 들어보더니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뭐냐 이거? 뭔 노래야? 전혀 못 알아듣겠어.”
“야 너..! 얼른 내놔!”
“어느 나라 말이야?
사달이 나기 전에 물건을 되찾아 오려는 내 노력은 노략자의 뛰어난 운동신경에 밀려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그때, 이 장면을 목격한 아랑이 눈을 빛내며 뛰어왔다.
“뭐야 뭐야, 뭔데 뭔데?”
“이거 봐. 쟤가 듣는 노랜데, 모르겠지?”
“음... 무슨 한자 같은데?”
“어? 뭐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리를 듣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박정우가 다가왔다.
그날 이후 그와는 종종 인사도 하고 말도 거는 사이가 되었다. 특히 아랑이나 김다윗과 있을 때면 그도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일이 잦았다.
“이거 일본어인데?”
“우와, 읽을 수 있어?”
“조금은?”
박정우의 겸손한 대답에 아랑과 김다윗은 환호했고, 나는 절망했다.
‘안 돼..!’
“어디, “사랑은 스릴, 쇼크, 서스펜스”... “명탐정 코난”?”
“그거 만화 아냐?”
진실의 문을 연 세 사람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아랑과 김다윗이 히죽거리며 날 놀리기 시작했다.
“어머머, 뭐? 사카모토 뭐?”
“푸훕! 님, 오타쿠세요?”
“... 죽인다.”
“꺄악~♡”
“서스펜스구나~!”
“그렇구나. 솔이 그쪽이었구나. 어쩐지~”
바나나를 주운 원숭이처럼 캭캭대며 날뛰는 아랑과 김다윗, 그리고 뼈를 때리는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박정우.
정신이 다 아득해진다.
- 그때 친구는 좀 달라, 솔아.
형 말이 맞았다. 과연 고등학교에는 차원이 다른 미친놈들이 있다.
나는 속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제발 날 좀 내버려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