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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인간우월주의는 동물권 침해를 정당화하며 인간이 동물을 '이용의 대상'으로 여기게 만든다. 근대 이후 서구권에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자연 파괴를 암묵적으로 묵인했듯 말이다. 당시의 자연 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자연환경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지지 않아서이다.
극단적 인간우월주의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인간우월주의 관점에서 동물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재료나 상품’ 혹은 ‘마땅히 인간 휘하에 두어야 할 대상’이다.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극단적 인간우월주의를 체득한 자들 눈에 동물은 감정 표출도, 자기표현도 할 줄 모르고 알고리즘에 기반해 숨만 쉬는 자동 기계일 뿐이다.
생명을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위와 같은 가치관이 더욱 심화된다면 '동물은 인간을 위한 수단’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돼지와 소, 닭, 오리 등은 인간의 식량을 대신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고, 기린과 사자, 돌고래는 인간의 눈요깃거리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며, 쥐와 원숭이는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다.
수단화되어버린 생명은 결코 생명으로 여겨지지 못한다. 인간은 같은 인간조차 수단화 시켜버릴 때가 있는데(보통 욕구와 욕망에 가려져 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동물을 대할 때는 과연 그보다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관점들은 결국 인간과 동물을 분리하는 지름길이 된다. 그리고 ‘인간과 동물은 다르며, 인간은 동물 위에 위치해 있다. 동물은 감정도 고통도 상황 변화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동 기계에 불과하고 인간에게는 그런 동물을 지배할 능력이 있기에 마땅히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권리가 있다. 동물은 우리 인간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고 싶은 대로 수단화해도 된다.’라는 지배주의 인식을 발생시킨다.
극단주의 관점이 위험한 것은, 결국 이런 지배주의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물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배주의는 폭력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폭력에 구태여 이유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이유라 한다면 ‘내가 지배자고 네가 피지배자이기 때문’정도 일 것이다. 그리고 지배-피지배 관계에서의 폭력은 서로가 동등한 관계에서의 상황보다 더 쉽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이는 인간의 오랜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고, 당장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인간이 동물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해도 극단적 인간우월주의자들 앞에서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냐면서 말이다.
그렇게 폭력이 합리화되는 과정 속에서 동물들이 겪어야 할 고통들은 자연스레 묻히고 만다. 무차별적으로 도축당하는 동물들의 고통, 의도적으로 주입된 바이러스에 걸려 죽어가는 동물들의 고통, 좁은 공간에 갇혀 자유를 박탈당하는 동물들의 고통들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분명 우리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장인데, 그 대상이 동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큰 화젯거리가 되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눈뜬장님이 되어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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