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EN VILLAGE Apr 26. 2022

동물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2)



https://brunch.co.kr/@ourplanet/22




 극단적 인간우월주의의 탄생


 그럼 극단적 인간우월주의는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극단적 인간우월주의는 동물과의 소통을 포기할 때부터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다. 동물들과의 소통이 분명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맞지만, 그건 인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뜻이지 아예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다. 동물과 인간은 서로 간의 유사한 지점을 통해 언어를 초월한 소통이 가능하다. 그 유사한 것이란 바로, ‘자기인식’을 할 줄 아는 존재인 것과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존재라는 것.


 그동안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던 자기인식이 동물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은 1970년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167호 ‘침팬지:자의식’에 발표된 침팬지 거울 실험을 통해서다.



 침팬지 거울 실험은 미국 뉴올리언스 툴레인 대학에서 심리학을 연구하던 20대 교수인 고든 갤럽이 고안해냈는데, 그는 유아의 발달단계를 알기 위해 하는 거울 실험을 동물에게도 적용하여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 첫 실험 대상은 침팬지 암컷과 수컷 각각 두 마리이다. (거울 실험 : 거울 속의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 실제 자신과 같음을 인지할 수 있는가 확인하는 실험)


 거울을 가져다주자 침팬지들은 위아래로 뛰거나 소리를 지르고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보였다. 거울 속의 자신을 다른 침팬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실험이 셋째 날에 이르자 이런 행동은 줄어들었고, 닷새째에는 아예 사라졌다. 그 대신 거울로 이빨에 낀 먹이 찌꺼기를 찾아보고 코딱지를 제거하는 모습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떤 때에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다듬고 잘 보이지 않는 항문과 생식기를 관찰하기도 했다. 침팬지들은 거울 속의 이미지가 누구인지 아는 듯했다.


 갤럽 교수는 침팬지가 자기인식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2차 실험을 준비한다. 그는 침팬지들을 마취시킨 뒤 눈썹과 귀 위쪽 부위에 빨간 물감을 칠했다. 마취에서 깬 침팬지는 거울을 본 후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침팬지는 거울 속의 자신을 기억했다. 그리고 빨갛게 표시된 눈썹과 귀를 이리저리 만지고 긁어댔다. 침팬지가 본 건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을 거울의 눈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침팬지에게도 자의식(자신을 타자화해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갤럽 교수의 논문이 나온 이후, 많은 동물들에 대해 거울 실험이 진행되었고 2000년에는 돌고래, 2006년에는 코끼리, 2008년에는 유럽 까치가 자기인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동물들이 자기 인식을 한다는 것은 자의식 역시 동물에게도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자의식이 있다는 것은 동물이 주위 상황에 수동적으로만 대처하는 존재(데카르트 말에 의하면 ‘감정과 의식, 마음이 없는 단순한 자동기계’)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무언가 해낼 수 있는 고등 생명체임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물들이 슬픔이나 고통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도 이제는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감정을 느낄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개체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개체의 고통이나 슬픔을 나의 고통과 슬픔처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25일 코끼리가 숨진 가족을 애도하는 영상이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의해 공개되었는데, 영상 속 코끼리는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가족 옆에 가만히 서 있다. 그리고 코로 숨진 가족의 몸을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하루 동안 떠나지 않고 머무는데, 이는 코끼리도 사람처럼 슬픈 감정을 느끼며 가족의 죽음을 인지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동물학자 마리아나 알트리히터 프레스콧대 교수는 한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코끼리는 동물 중에서도 죽음과 관련한 행동이 가장 많이 발견된다’라고 전했다. 야생 코끼리는 죽은 개체에 반응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심지어는 가족이 아니어도 그런 행동을 보인다고도 말했다.


 물론 모든 동물이 자기 인식이 가능하고 감정을 느낀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아직까지는 연구가 진행된 일부 소수 동물들에게서만 그러한 특징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인간에 의해 ‘관측된 것일 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예상 보다 더 많은 동물들이 인간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테다. 그건 인간이 ‘얼마만큼 더 세심하게 관측해낼 수 있냐’에 따라 달려있다. 연구를 통해서든 발견을 통해서든 그도 아니면 ‘시야의 확장’을 통해서든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동물과 인간은 자의식을 가졌다는 공통점 때문에 ‘우리는 같다’라는 연대 의식을 싹 틔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의식을 가진 동물들은 자신이 케이지나 우리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지나치게 줄어들고 먹을 것이 제한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한 동물들은 자신의 자유가 제한된 것임을 깨닫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BBC 다큐멘터리 ‘돌고래와 대화한 여자’에 등장하는 돌고래 피터가 사방이 막힌 물탱크 안에서 우울증을 겪다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례다. 이렇듯 동물과 인간은 자의식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동물과 인간은 자의식을 활용해 없던 고통도 만들어낼 수 있고 잔존하는 심각한 고통을 지울 수도 있다.


 또한 동물과 인간은 감정을 느낀다는 점 때문에 언어를 초월한 소통이 가능하다. 동물이 부상을 당하는 모습을 봤다면, 그 고통이 어떨지 우리는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를 넘어 동물과 소통을 할 수 있다. ‘태종 이방원’의 말이 머리부터 곤두박질칠 때 우리가 눈을 질끈 감는 이유는, 그 고통이 어떨지 미리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이 부러지는 고통,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직접 겪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말과 하나가 된다. 언어적인 소통, 직접적인 대화만이 소통이 아니다. ‘너의 심정이 느껴져’, ‘난 네 고통을 느낄 수 있어’, ‘널 이해하는 존재가 바로 여기 있어’라는 마음의 대화도 소통이다. (이는 역으로 인간이 당한 고통도 어느 정도는 동물이 이해 가능하다,라는 해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소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때, 동물과 나는 완전히 다르다, 라는 구분을 지을 때, 그때서야 숨어있던 극단적 인간우월주의가 탄생하고 만다. 동물은 자의식을 가지지 않았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가하는 억압과 고통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라는 방식으로 생각이 발전될 때, 인간우월주의는 극으로 향하게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간우월주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간우월주의를 바탕으로 동물을 마음대로 재단하려는 극단적 인간우월주의가 잘못된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Reference

<한겨레>, "거울 앞에 선 오랑우탄, 인간우월주의를 깬다", 남종영 기자, 15.10.23

<인사이트>, "동물도 사람처럼 '슬픈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증거", 장형인 기자, 18.01.25

<허핑턴포스트US>, "돌고래는 정말로 자살을 할까?", Arin Greenwood, 14.06.18







Editor & Contents Director : 김 재훈

About Writer : zxv123608@naver.com










작가의 이전글 동물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