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 드세요, 제발!

계속 요리를 하는 마음

 

"ㅇㅇ은 사드세요. 제발!" 

요리를 하는 사람, 아니 그렇지 않은 사람이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유튜브 유행어다.

우선 나는 이 말에 무척이나 공감한다.

요리는 시간과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니까.

바쁜 현대인들에겐 사드세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일인 것이다.

오늘 내가 만든 요리도 그랬다.

사흘 내내 장마가 이어지는 바람에 외식이든 배달이든 불편한 상황이 이어졌다.

게다가 오늘은 연휴다. 그 말은 즉, 오늘 점심은 나 혼자 먹는 것이 아닌 동거인과 함께라는 뜻이기도 했다.

 동거인은 평소엔 저녁도 같이 못 먹을 정도로 회사 일이 바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연휴에는 조금도 집에 나가지 않는 알아주는 홈러버인데 비까지 오니 더했다.

원래 음식이라는 게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면 더 신경 쓰이는 법이다.

메뉴를 고민하며 냉장고를 열었는데, 다행히 미리 장을 봐 놓은 덕분에 냉장고에 각종 채소가 풍성했다.

채소전, 너로 정했다! 

 부침가루와 물은 1대 1 비율로 준비한다.

볼에 달걀을 넣고, 마법의 황색 가루를 (다시다를 뜻한다. 요리 유튜브를 보다 들은 단어인데 정말이지 찰떡이다.) 티스푼으로 반 넣어 섞는 것으로 반죽을 완성한다.

조금 묽은 반죽이 부치기는 힘들어도 바삭바삭 맛있는 법이다.

냉장고에 남은 채소들을 도마 위로 총출동시킨다.

당근, 대파, 애호박, 양파, 감자, 청양고추까지.

탕탕, 칼 소리와 쏴아아 내리는 빗소리가 합쳐지면 음악이 따로 필요 없다.

그런데 이대로는 좀 아쉽다. 냉동실을 뒤져보니 새우살이 나와서 그것도 썰어 넣었다.

나는 손이 큰 편인데, 좀처럼 고쳐지질 않는다. 

어릴 때 형제가 있었다면 누구든 공감할 것이다. 먹는 것은 전쟁의 일부라는 것을.

늦게 먹는 사람에겐 닭 다리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그렇게 먹지도 못하면서, 만들어진 버릇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볼에 한가득 만들어진 속 재료를 잘 버무린다. 이제 부치기만 하면 끝이다.

기름은 넉넉하게 부어준다. 전을 먹으면서 기름을 덜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반죽의 양을 훨씬 넘은 채소들이 내 죄책감을 덜어주겠지.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전이 익어간다.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주면 집 안에도 비가 오는 것만 같다.

고소한 냄새가 퍼지면 방안에 콕 박혀만 있던 동거인이 나와, 맛있는 냄새를 향해 기웃거린다.

맛있는 거 앞에서 아직은 초롱초롱해질 나이다. 웃음이 다 나온다.

어릴 때 방 안에 있으면, 엄마가 뭘 먹으라며 그렇게 거실로 불러냈는데.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왕 해줄 거 완벽한 음식을 주고 싶었다.

푹 익은 김치도 꺼내, 김치전 반죽도 휘리릭 만들었다.

덥다.

이쯤 되면 '아. 역시 전은 사 먹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긴 한지만….

 힘을 내서 요리를 완성하기로 한다.

간장과 식초, 고춧가루를 섞어 만든 초간장에 양파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는다.

느끼함을 확 잡아주는 이 초간장만 있다면 전은 몇 장이고 들어간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동안, 집콕을 즐기던 동거인이 어느새 나가서 막걸리 한 병을 사 왔다.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건 원초적인 욕구다.

집에서 가장 큰 접시에 전을 내고, 초간장을 덜어 놓는다.

기름진 접시 옆으로 동거인이 사 온 시원한 막걸리를 따라 놓으면 드디어 완성이다.

달다.

대접에 따른 막걸리부터 한 모금 마시니 더위가 가시는 느낌이 든다.

역시 노동 후에는 막걸리인가.

“이거 진짜 맛있다. 정말 고마워.”

환하게 웃는 동거인의 웃음은 더 달다.

아. 이 맛에 오늘도 만들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