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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l 05. 2022

직도 이야기

군산시 옥도면, 고군산군도가 속한 행정구역이다. 거리로 따지면 군산이나 부안 그리고 김제가 엇비슷하게 가깝지만 사람 간의 지도에는 정서적 거리가 보이지 않는다. 육지에서 섬을 잇는 뱃길은 일찍부터 군산이었다. 도면 위에 파선으로 이어진 항로는 마치 탯줄처럼 섬과 뭍을 이어놓고 있다. 겨울을 지낼 쌀을 구하려 젓갈 담긴 독을 싣고 심포나 변산으로 다녔다는 말은 옛말이다.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군산으로 나갔고 조금 여유 있으면 전셋집이라도 하나 장만했다. 서류하나 떼려고 해도 면사무소는 군산항이 있는 육지에 있고, 병원과 약국을 찾을 때도 뱃길로 다녔었다. 새만금 방조제가 들어서고 신시도에서 장자도까지 연결도로가 뚫린 지금도 고군산 사람들은 군산을 통해 육지로 나다닌다.      


자동채점 시설이 설치된 직도


인구 26만 6천여 명, 2022년도 한 해 예산이 1조 4천556억 원.

‘시민이 함께하는 자립 도시’를 추구하는 군산시의 재정자립도는 겨우 16.3퍼센트다. 지방세와 세외수입을 포함한 수입 규모가 전체 예산 대비 16.3퍼센트, 전국 평균인 48.7퍼센트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대체로 수도권 도시들 형편이 좋고 지방 중소도시로 갈수록 낮은 추세다. 울산이나 화성처럼 굴지의 기업을 끼고 있는 도시나 여수, 광양같이 대규모 산업단지가 있는 지역은 상대적으로 낫지만 군산이나 목포의 처지는 엇비슷하다. 서해안 항구 도시의 존재감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필요에 따라 키워졌다. 내륙 철도와 신작로가 항구로 연결됐다. 호남선 철도의 출발역은 목포고 벚꽃길로 유명한 전군가도의 끝은 군산이다. 사람도 돈도 그 길을 따라 흘렀다. 일제가 강점했던 용산에 미군 부대가 자리했던 것처럼 군산에도 미공군 기지가 있다. 군산발 제주행 민항기는 미군이 사용하는 활주로를 빌려 쓰고 있다. 아이러니한 역사지만 해방 이후 쇠락하기 시작한 도시는 과거의 아픈 기억조차 스스로 지우지 못했다.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세관 건물이 이전 군산항 자리에 남아 있고, 영화 촬영으로 유명세를 탄 히로스 가옥이며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도 그대로 있다. 몇 세대를 뛰어넘는 세월의 힘은 비극적인 역사의 아픔보다 이국적인 감성을 먼저 자극하나 보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성 여행지로 군산은 분명 남다른 매력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새로운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 재정 여건이 어려운 지방 중소도시들이 중앙정부 지원에 목을 매는 이유다. 더러 지역 주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방사능 폐기물 처리시설이나 군사 시설처럼 소위 혐오시설 유치를 통해 국비를 끌어오려고 한다. 군산시도 이런 선택을 했다.             

 

동경 126° 북위 35°, 직도는 말도에서 18.5킬로미터 떨어진 섬이다. 말도에서도 뱃길로 한 시간을 더 가야 하는 거리다. 고군산군도 47개 무인도 중 하나인 직도는 대한민국 공군이 1980년부터 이미 사격장으로 사용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2005년 8월,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 사격장이 폐쇄되면서 대체지를 물색하던 주한 미군과 국방부의 눈에 띄었다. 주한 미군과 국방부는 자동 채점 시설을 추가 설치해서 미 공군의 사격훈련을 지속하려 했으나, 오히려 적법한 절차 없이 폭격장으로 써왔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제동이 걸렸다. 지역사회 여론이 들끓었고 성난 주민들이 전라북도 도청 앞까지 몰려왔다. 설치 허가권을 가진 군산시는 관련 부처들과 협상을 벌였으나 난항이었다. "폭격 훈련 시설 대책이 없으면 미 공군 전력을 한반도 밖으로 뺄 수밖에 없다."며 제7공군 사령관이 으름장을 놓았다. 막판까지 몰려 얻어낸 합의가 11개 지역 현안 사업에 국비 3천4백억 원 지원이었다. 군산시 한 해 예산 중 사회기반시설에 투입되는 3천7백억 원에 맞먹는 규모다. 시민 1인당 따지면 약 120만 원에 해당하는 지원금을 받는 셈이다.         


덕분에 군산시는 미뤄왔던 숙원사업들을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었다. 시내 한복판 예술의 전당이 최첨단 시설로 새 단장을 하고, 썰렁했던 옛날 군산항 부둣가에 근대역사박물관이 들어섰다. 가로변 전봇대와 전선을 땅에 묻으면서 도심 경관은 훨씬 깔끔해졌다. 국비 지원으로 여유가 생기자 시비 231억 원을 들여 수송동과 나운동을 잇는 백석 고개 교차로 문제도 말끔히 해결했다. 시민들은 겨울철 오르막 빙판길 때문에 생기던 사고와 체증 걱정을 털어냈다. 고군산 일대 투자도 포함됐다. 신시도에서 무녀도, 선유도를 거쳐 장자도에 이르는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개설사업과 바다목장 조성사업을 마무리했고 방축도, 명도, 말도를 연결하는 출렁다리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고군산군도를 포함한 군산시의 새로운 변화가 긍정적인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듯하다. 전북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군산을 방문한 관광객 숫자가 꾸준히 늘어 지난 2018년 사상 처음으로 5백만 명을 넘어섰다.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를 찾는 발걸음도 두 배 이상 늘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향리 사격장 폐쇄 이후, 농섬에서 주민들이 수거한 포탄 잔해


폭탄 세례를 맞고 3미터가 깎여 나갔지만, 직도는 아직 매향리 농섬만큼 심각하지는 않은 듯싶다. 해방 이후 54년간 폭격을 받았던 농섬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할 만큼 처참했었다. 썰물 때면 섬 주변 여기저기 흩어진 포탄과 이따금 불발탄 폭발로 사람이 상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었다. 매향리 마을 사람들은 아직껏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직도 인근 해역은 최근 스쿠버다이빙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서해에서 드물게 물이 맑고 볼거리도 많다고 한다.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는 바위틈 이곳저곳 선명한 포탄의 잔해를 보여주며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위험천만한 일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은 눈요깃거리도 아이들 장난감도 아니다. 그뿐 아니다. 포탄에서 흘러나온 갖가지 화학물질 성분이 사람과 주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결코 이롭다고 장담할 수 없다.

당장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삼십 년 후에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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