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산 237번지의 눈물

아직 집으로 불리지 못한 삶이 있다는 표시

by 한자루




1988년 6월의 서울은 전 세계를 맞이할 준비로 들떠 있었지만, 우리 교실의 공기는 선풍기 날개에 엉겨 붙은 시커먼 먼지처럼 눅눅하고 무거웠다.

천장에서 비명을 지르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는 시원한 바람을 만드는 대신, 사춘기 소년들의 시큼한 땀 냄새를 교실 구석구석으로 골고루 배달하는 반죽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끈적한 종례 시간, 우리들의 시선은 자꾸만 한 곳으로 향했다.

오늘도 석두 아니 청룡의 자리는 덩그러니 비어 있었다.

벌써 5일째, 출석부의 그 칸은 차가운 ‘X’ 표시로 채워지며 무단결석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그 빈자리는 단순히 한 명의 학생이 빠진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가지런한 치열에서 갑자기 쏙 빠져버린 앞니처럼, 혀끝이 자꾸만 가서 닿게 되는 기묘하고도 허전한 구멍과 같았다.


김도현 선생님은 평소보다 조금 더 깊은 주름을 이마에 새긴 채 그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시선 끝에는 걱정과 무거운 책임감이 엉켜 있었던 것 같다.

"럭키보이, 네가 석두 짝꿍이니까 오늘 종례 끝나고 선생님이랑 같이 석두네 집에 좀 가보자. 이 녀석, 이러다 정말 학교랑 영영 작별하겠어."

어제 도서실 발열 사건 이후, 한수정 선생님의 눈은커녕 담임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보기도 힘들었던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네..." 하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차라리 석두네 집이 아니라 안드로메다로 가고 싶습니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그때였다.

복도 창문을 스쳐 지나가던 교무주임 최익현 선생님의 안경이 6월의 햇살을 받아 서늘하게 번뜩였다.

그는 마치 거대한 기계의 어긋난 부품을 찾아낸 엔지니어처럼 걸음을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학기 초 우리들의 별명이 적혔던 칠판 한구석이었다.

이제는 지워지고 없는 별명들의 흔적 ‘청룡’, ‘럭키보이’, '맥가이버"...라는 글자들이 교무주임 선생님 눈에는 여전히 보이는 것 같았다.

교무주임 최익현 선생님은 우리 담임 선생님의 교육 방식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엄격한 규율과 통제만이 아이들을 거친 사회로부터 보호할 유일한 갑옷이라고 믿어온 그에게, 별명을 부르고 마음을 묻는 담임 선생님의 방식은 너무나 위태롭고 검증되지 않은 실험이었다.

최 선생님은 이미 자신이 세운 질서의 논리를 촘촘히 엮어 보고서를 완성했고, 이제 그 낚싯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길 참이었다.

"김도현 선생님! 종례 마치는 대로 바로 교장실로 올라오세요. 이사장님이 선생님을 찾으시네요."

교무주임 선생님은 마치 전시 상황의 전령처럼 짧고 굵은 메시지만 남긴 채 서둘러 교실 밖으로 퇴장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사립학교에서 이사장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는 단순히 학교 운영자라는 사전적 의미를 수만 광년쯤 초월해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성의 성주이자,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부터 교사들의 월급봉투까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양복 입은 신의 다른 이름이었다.

공립학교가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이었다면, 사립학교는 이사장이라는 일인 독재자가 다스리는 작은 왕국이었다.

그 성역 안에서 이사장의 걸음걸이 하나, 헛기침 한 번은 곧 학교의 법이었고 질서였다.

담임 선생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졌고, 아이들을 향한 걱정과 거대한 권력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의 어깨 위로 뜨겁고도 서늘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담임 선생님과 교무주임 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대결은 단순히 나쁜 선생착한 선생의 이분법적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안정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는 완고한 경험과, ‘존엄이 없으면 성장은 의미가 없다.’는 서툰 열망의 충돌이었다.

한 명은 아이들에게 단단한 껍질을 입히려 했고, 다른 한 명은 그 껍질 속에서 숨 쉬는 소년의 심장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이사장실로 향하는 담임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어른들의 세계가 얼마나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여 있는지 깨달았다.


"한 선생님, 미안하지만... 나 대신 서진이랑 같이 석두네 집에 좀 다녀와 줄 수 있겠어요? 내가 가봐야 하는데 이사장님 호출로 못 갈 것 같아요. 또 내일로 미루기도 그렇고..."

그 순간, 내 심장은 어제보다 더 크고 불규칙한 박자로 날뛰기 시작했다.

운명은 가혹했고, 동시에 지나치게 유머러스했다.

어제 "선생님, 저... 저 지금 되게 위험하니까, 제발, 제 이마에서 손을 떼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외치며 도망쳤던 소년에게, 신은 '그녀와 단둘이 걷는 하굣길'이라는 지독하게 달콤한 형벌을 내린 것이다.

한수정 선생님은 갑작스러운 가정 방문 요청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선생님. 걱정 마세요. 제가 서진이랑 잘 다녀오겠습니다."


이사장실의 묵직한 문이 닫혔을 때, 그곳에는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과 교무주임 선생님이 이사장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앉아 있었다.

교감 선생님은 빌런이 아니었다.

그는 새벽같이 출근해 학교 담장을 돌고, 아이들이 탈선하지 않도록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에게 있어 김민호 선생님의 참 교육은 달콤하지만 위험한 독약이었다.

질서가 무너진 교실에서 아이들이 마주할 것은 자유가 아니라 혼란과 낙오라는 것을, 그는 가난과 혼돈의 시대를 지나오며 뼈저리게 배웠기 때문이다.

“김 선생. 자네가 칠판에 적어둔 그 별명들... 나도 그게 따뜻한 의도라는 건 아네.”

교감 선생님은 안경을 닦으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엔 경멸이 아니라 진심 어린 우려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 규칙은 가장 약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네. 석두 같은 아이들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다치는 건 자네가 아끼는 그 착한 아이들이야. 자네의 그 별명 불러주기가 아이들에게 규칙보다 감정이 먼저라는 오해를 심어주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그리고 일부 학부모님들로부터 나라에서 정해준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교육한다는 탄원도 들어왔네.”

이사장님 역시 찻잔을 내려놓으며 거들었다. 그의 논리는 차가웠지만 명확했다.

"안정은 복지보다 상위의 개념이네, 김 선생. 이 학교라는 거대한 기함이 풍랑에 흔들리지 않아야 자네가 말하는 그 잘난 개인도 발붙일 땅이 있는 법이야. 자네는 지금 나침반도 없이 아이들을 사나운 바다로 등 떠밀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 우리 학교는 선대 이사장님의 인간 개조라는 광대한 희망의 기틀 위에 세워졌네. 자네는 아이들의 개성을 운운하지만, 교육이란 제멋대로 자란 원석을 깎고 다듬어 국가라는 집을 지탱할 규격화된 대들보를 만드는 과정이야. 규격에 맞지 않는 나무는 대들보가 아니라 땔감일 뿐이네.”

이사장은 돋보기를 고쳐 쓰며 김 선생님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 선생, 원석의 그 울퉁불퉁한 개성을 다 살려주면 그게 보기 좋은 조각품은 될지 몰라도, 거대한 집을 지탱하는 기둥은 못 되는 법이야. 기둥이 되려면 모난 구석을 사정없이 쳐내고 규격에 맞춰야 하네. 자네가 아이들에게 이름 대신 별명을 불러주고, 교육 과정에도 없는 이상한 수업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건... 그건 자비가 아니라 불량품을 방치하는 직무 유기야. 깎이지 않은 원석은 결국 이 사회라는 거대한 건축물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으니까.”

이사장은 찻잔 속의 찻잎을 빤히 바라보다가, 차갑게 식은 시선을 김 선생에게 던졌습니다.

“특히 자네 반의 마석두, 그 학생은 이미 금이 간 쓸모없는 돌멩이야. 5일째 무단결석이라지? 이 정도면 학칙에 따라 정학 처분은 물론이고 강제 전학까지 검토해야 할 중대한 결함이네. 당구장이나 기웃거리며 시장통에서 시간을 버리는 그 아이 하나 때문에, 나머지 59명의 멀쩡한 대들보들이 오염되어야 하나? 썩은 부위를 도려내지 않는 건 인내가 아니라 방관일 뿐이네. 김 선생의 그 값싼 동정심이 마석두라는 불량품을 우리 학교라는 기함에 끝까지 매달아 두려는 건가? 그 학생이 교실의 학습 분위기를 얼마나 좀먹고 있는지,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옆에 서 있던 교장 선생님은 이사장의 말이 떨어지기 이사장에게 고개를 깊게 숙이며 동조했다.

그에게 이 논리는 80년대를 관통해 온 유일한 생존 법칙이었다.

“자네의 그 참 교육은 따뜻할지 모르나 무책임해. 우리는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라는 차가운 벽에 부딪혔을 때 깨지지 않도록, 지금 여기서 가장 단단하고 매끄러운 벽돌로 만들어 내보내야 하네. 그게 선대 이사장님이 세우신 이 학교의 존재 이유고, 내가 지켜야 할 질서야.”


김민호 선생님은 그 인간 개조라는 단어 앞에서 한참을 침묵했다.

그 침묵은 굴복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의식 같았다.

선생님은 이사장실 창밖으로 보이는,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엔 방금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규격화된 교복을 입고 줄을 맞춰 걸어가고 있었다.

“이사장님, 그리고 교장 선생님 이하 선배 선생님들께서 세워오신 이 견고한 질서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는 걸 잘 압니다. 저 역시 그 질서의 혜택을 받고 자란 세대니까요.”

김도현 선생님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아이들과 함께 했던 토론 수업과 독서 수업이 떠오르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사님, 규칙이 약자를 보호하는 울타리라면, 그 울타리 안에 갇힌 아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다면 그 울타리는 감옥과 무엇이 다를까요? 제가 하고 싶은 건 반란이 아닙니다.

질서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라면, 그 울타리 안에 갇힌 아이들이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별명을 붙여준 건, 이사장님이 말씀하신 규격화된 대들보가 되기 전에, 스스로가 살아있는 나무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녀석들에게 문제아무단결석생이라는 차가운 일련번호를 매길 때, 제가 불러준 청룡이라는 이름이 그 아이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날 이사장실에서 부딪힌 건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랑이었다.

이사장은 아이들에게 단단한 껍질을 입혀서 세상에 깨지지 않게 내보내고 싶어 했고, 김 선생님은 아이들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 하나를 심어주고 싶어 했다.

한 명은 생존을 위해 같아지길 바랐고, 다른 한 명은 성장을 위해 달라지길 바랐던 것이다.

이사장실 문이 열리고 담임 선생님이 나왔을 때, 복도 끝에서 안경을 번뜩이며 서 있던 학생주임의 시선은 여전히 완고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김 선생님의 방식이 위험한 오답이라 믿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김 선생님의 와이셔츠 소매가 아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누구보다 뜨겁게 젖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교무주임 선생님은 여전히 김 선생님의 방식이 위태롭다고 믿었고, 김 선생님은 여전히 그 위태로움 속에 성장이 있다고 믿었다.

1988년의 6월은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정의가 부딪히며 내는 팽팽한 마찰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가치관의 전쟁터 한복판을 벗어나, 열네 살의 나는 한수정 선생님과 함께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이사장실의 서늘한 논쟁보다 더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는, ‘산 237번지’를 향해서 말이다.


한수정 선생님과 나는 그 긴박한 이사장실의 논쟁이 시작될 무렵 교문을 나서고 있었다.

학교라는 거대한 성벽을 벗어나자, 6월의 햇살은 아스팔트 위에서 아지랑이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교복 바지 주머니에 땀 찬 손을 찌러 넣은 채, 나는 교생 선생님의 보폭에 맞춰 억지로 천천히 걸었다.

옆에서 걷던 선생님의 발소리는 규칙적이고 평온했지만 나의 발소리는 마치 시한폭탄의 초침 소리처럼 내 온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시선을 발끝에 둔 채, 길가에 놓인 작은 돌멩이를 툭 찼다.

그리고는 짐짓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래 봤자 잔뜩 긴장한 열네 살의 얼굴이었겠지만) 고개를 들었다.

한수정 교생 선생님은 학교를 나오자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서진아, 어제 많이 아파 보이던데 몸 좀 좋아졌니? 너 갑자기 뛰쳐나가서 많이 아픈가 걱정했잖아."

"아... 네. 걱정 마세요. 그게... 도서실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지적 과부하가 좀 걸렸었나 봐요. 제가 원래 머리 쓰는 일을 하면 몸이 먼저 반응하거든요. 찬바람 좀 쐬니까 금방 괜찮아지더라고요."

나는 지적 과부하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어려운 단어를 쓰며 뻔뻔하게 둘러댔다.

어제 나의 열은 선생님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학구열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풋사과처럼 시큼하고도 어설픈 허세였다.

한수정 선생님은 잠시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풋-"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나를 비웃는 깔깔거림이 아니라, 어른인 척 애쓰는 남학생의 귀여운 거짓말을 간파했을 때 나오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지적 과부하? 어머, 서진이 너 정말 열심히 공부했구나? 선생님이 몰라봐서 미안해."

선생님은 장난기 어린 눈으로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머릿속은 방금 내가 주장한 과부하가 다시 걸린 듯 하얗게 변해버렸고, 나는 빨개진 귀를 감추려 괜히 걸음 속도를 높였다.

석두네 집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천천히, 아주 영원히 걷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올림픽 주 경기장은 ‘잠실동 10번지’였고, 압구정의 번듯한 아파트들은 압구정동 440번지라는 명예로운 숫자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석두가 사는 동네는 신사동 산 237번지였다. 그 숫자 앞에 ‘’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주소는, 화려한 오륜기 조명이 결코 비추지 않는 가려진 좌표였다.

주소는 원래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땅을 감시하기 위한 번호였다.

국가는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엔 번호를 붙였고, 집을 지어서는 안 되는 비탈진 숲과 버려진 땅에는 굳이 ‘’이라는 낙인을 찍어 관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보다 삶이 먼저였던 시절이었다.

돈도 집도 없던 사람들은 행정상으로는 ‘임야’라 불리는 그 가파른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나라는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서류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사람은 살고 있지만, 이 땅은 여전히 산이다.”

하지만 산 237번지라는 주소는 집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집으로 불리지 못한 삶이 있다는 표시였다는 것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어제 도서관 자료실에서 느꼈던 몽글몽글한 낭만은 산동네 초입의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오르며 서서히 땀방울로 흩어졌다.

그리고 오후의 산 237번지는 고요했다.

어른들은 모두 삶의 최전선인 일터로 흩어졌고, 골목에는 코흘리개 아이들만이 삼삼오오 모여 꼬질꼬질한 손으로 흙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낯선 차림의 우리를 보자마자 놀이를 멈췄다.

그 아이들의 눈빛은 호기심보다는 경계에 가까웠다.

그것은 낯선 이의 등장이 곧 빚쟁이철거반의 방문이었을지도 모르는, 이 척박한 땅에서 자라나며 본능적으로 배운 방어기제였을 것이다.

"누구세요?"

그때, 골목대장 기질이 다분해 보이는 한 꼬마 여자아이가 흙 묻은 손을 허리에 얹으며 당당하게 앞을 막아섰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그 당돌한 눈빛은, 마치 이 가난한 영토를 지키는 작은 수호신 같았다.

한수정 선생님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얘들아. 안녕? 나는 석두 오빠 선생님인데... 너희들 혹시 마석두 오빠 아니? 집이 어디일까? 석두 오빠가 계속 학교에 오지 않아서 걱정돼서 말이야."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이 동네에서 꽤나 강력한 통행증이었나 보다.

아이의 눈에 서려 있던 날 선 경계심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더니,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파른 계단 끝에 매달린 낡은 판잣집을 가리켰다.

"저기 꼭대기요. 빨간 고무 다라이가 놓여 있는 집이요."


우리는 아이가 가르쳐준 대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계단을 올랐다.

낡은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호통이나 거친 숨소리가 아닌, 자지러지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였다.

한수정 선생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자, 그녀는 낡은 판잣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갔다.

방 안의 광경은 처참했다.

6월의 열기에 갇힌 좁은 방 한가운데, 세 명의 아이가 냄비 하나를 두고 뒤엉켜 울고 있었다.

덜 익은 라면 한 개를 가지고 서로 더 먹겠다며 다투다 냄비가 엎질러진 모양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라면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100원, 200원이라는 동전 몇 개로 허기를 잠재울 수 있는 가장 값싸고 유일한 한 끼였다.

석두네 방바닥에 엎질러진 것은 당시 가장 흔하고 저렴했던, 그 특유의 주황색 봉투에 담긴 삼양라면이었다. 소고기 맛이나 매운맛 같은 화려한 수식어도 없이, 그저 라면이라는 이름 하나로 수많은 가난한 속을 달래주던 80년대의 생존 키트였다.

석두는 아마 가스비를 아끼려 했거나, 혹은 배고픔에 지친 동생들의 성화를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냄비에서 쏟아진 면발은 채 풀리지도 않은 채 꼬불꼬불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던걸 보면 말이다.

계란 한 알, 파 한 조각 들어있지 않은 그 순수한 주황색 국물은 1988년의 풍요가 얼마나 편파적이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오직 짭짤한 MSG 가루와 물로만 만들어진 그 투명한 국물은 차가운 방바닥의 먼지와 섞여 기괴한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 마! 내가 먼저 먹을 거야!"

아이들은 엎질러진 냄비 주위에 달라붙어, 아직 온기가 남은 면발을 손으로 집어 들려다 서로를 밀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석두는 그 아수라장 한가운데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평소 학교 복도를 주름잡던 그 당당한 청룡의 기세는, 쏟아진 라면 국물과 함께 바닥으로 스며든 지 오래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내가 집에서 투정을 부리며 남겼던 그 김밥 꼬투리가, 누군가에겐 이토록 처절한 전쟁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하얀 소매에 주황색 라면 국물이 튀었지만,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하나둘 떼어놓았습니다.

"얘들아, 그만... 선생님이 다시 만들어줄게. 응? 석두야, 일단 이것부터 같이 치우자."

선생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좁은 방 안을 메웠다.

1988년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강남의 밤을 수놓을 때, 산 237번지에서는 쏟아진 라면 한 봉지의 비극이 한 소년의 자존심을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그날의 엎질러진 라면은 1988년이라는 축제의 뒷면에 적힌 가장 슬픈 각주였다.

우리는 금메달의 개수를 세며 환호했지만, 어느 골목에서는 덜 익은 라면 가닥을 두고 아이들이 인생의 쓴맛을 먼저 배우고 있었다.

석두가 그토록 거칠게 세상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던 건, 어쩌면 이 좁은 방 안에서 동생들에게 라면 한 봉지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을 가리기 위한 처절한 연극이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날, 짭짤한 라면 냄새가 밴 공기 속에서 처음으로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의 두려움을 배웠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저 쏟아진 라면 국물처럼 아픈 누군가의 현실을 묵묵히 같이 치워주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방바닥에는 불어 터진 면발과 시커먼 국물이 번져 있었고, 아이들은 그 엉망이 된 바닥을 보며 절망적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던 석두가 우리를 발견했다.

"너... 정서진... 네가 여길 어떻게..."

학교의 폭군, 무적의 '청룡' 마석두는 없었다.

땟국물 묻은 셔츠를 입고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려던 그는, 수정 선생님의 눈부신 하얀 블라우스와 내 말끔한 교복을 보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소년으로 변해버렸다.

나는 수정 선생님의 옆에서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석두야... 담임 선생님이 가보라고 하셨어. 네가 하도 학교에 안 오니까 걱정된다고. 아... 여기, 한수정 선생님이셔. 우리 학교 교생 선생님... 담임 선생님이랑 함께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기셔서..."

석두는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바닥에 엎질러진 라면 면발만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우리가 알던 청룡 마석두의 자존심은 6월의 얼음처럼 위태롭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내가 수정 선생님을 소개하자, 석두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격렬하게 흔들렸다.

녀석의 손은 바닥에 엎질러진 라면 면발을 치워야 할지, 아니면 울고 있는 동생의 입을 막아야 할지 몰라 허공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춘기 소년이 세상에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가장 연약한 속살을 통째로 해부당하는 순간이었다.

"가... 가라고! 누가 오라고 했어!"

석두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녀석의 목소리는 변성기의 거친 파열음과 억눌린 울음이 섞여 기괴하게 들렸다.

"너, 정서진! 네가 뭔데 여기까지 와서 잘난 척이야! 선생님? 교생?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 학교 안 가! 아니, 못 가! 그러니까 당장 나가라고!"

석두는 옆에 있던 낡은 양은 냄비를 발로 걷어찼다.

댕그랑거리는 냄비소리가 좁은 방 안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수정 선생님은 놀라 뒷걸음질 쳤지만, 이내 입술을 꾹 깨물며 석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한수정 선생님의 눈빛은 평소의 우아함 대신, 한 소년의 절규를 온몸으로 받아내려는 단단한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석두야, 선생님은 널 혼내러 온 게 아니야. 그냥..."

"그냥 뭐요! 불쌍해서요? 라면도 못 끓여 먹는 꼴이 한심해서?"

석두가 선생님의 말을 가로챘다.

녀석의 눈에서 마침내 툭, 하고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우리 아버지... 잘못한 거 없어요. 그냥, 그냥 돈이 없어서... 많이 배우지 못해서, 말을 잘하지 못한 것뿐이라고요. 시멘트 몇 포대 없어진 게 왜 우리 아버지 탓인데요? 아버지가 말이 없고 가난해서, 그 사람들이 만만하니까 잡아두는 거잖아요! 내가 없으면 애들은 누가 봐요? 내가 학교 가면 얘들은 어떡하라고요!"

석두는 이제 아이처럼 흐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녀석이 휘두르던 그 무서운 주먹은 이제 자신의 무릎을 때리며 자책하고 있었다.


석두 아버지는 동네에서 일용직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공사판에서 하루 품삯을 받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문제가 생겼다. 약간의 자재가 사라졌던 것이다.

철근 몇 개, 혹은 시멘트 몇 포대. 아무도 정확히 무엇이 없어졌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고,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가장 설명하기 쉬운 사람이 석두 아버지였다. 말이 없고, 학력도 없고, 주소도 번듯하지 않고, 변명할 줄도 몰랐다.

그는 “나는 안 했다.”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 말은 너무 짧았고, 너무 순진했다.

파출소에서는 일이 더 단순해졌다.

조사를 받는 내내 그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안 했습니다.” 그 말은 서류 위에서 점점 얇아졌다. 대신 다른 말들이 두꺼워졌다.

'정황상', '그럴 가능성', '전과는 없지만', '주변 진술에 따르면'...

석두의 아버지가 돈이 있었다면, 그는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왔을 것이다.

변호사의 세련된 한마디가 있었다면, 그는 피의자가 아니라 잠시 착오를 바로잡으러 온 시민으로 대접받으며 확인만 하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석두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며칠째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범죄자이어서도, 이미 법의 심판을 받아서도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건 단지 힘없는 자들을 대하는 절차 때문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겐 전화 한 통으로 증명될 결백이, 형편없는 누군가에겐 며칠 밤을 차가운 유치장 바닥에서 버텨야 겨우 고개를 내미는 허락이 된다는 사실.

절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배웠지만, 사실 그 절차를 견뎌낼 시간의 무게는 공평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몇 시간이면 끝날 일이, 누군가에겐 온 가족이 덜 익은 라면을 두고 싸워야 하는 며칠의 비극이 되는 것.

법전에는 적혀 있지 않은 그 잔인한 속도 차이를 만드는 것이, 법의 정의가 아니라 지갑의 두께라는 사실을 석두는 열네 살의 나이에 뼈저리게 배워버린 것이었다.


행정은 그들의 집을 ‘’이라 부르며 지우려 했고, 법은 그들의 결백을 ‘절차’라는 이름으로 미뤄두었다.

석두가 학교에 오지 못한 5일은 단순한 무단결석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기계가 석두네 가족의 시간을 강제로 멈춰 세워놓은 ‘사회적 정지’ 상태였다.

나는 쏟아진 라면 국물을 닦아내는 수정 선생님의 손길을 보며 생각했다.

담임 선생님의 별명 부르기는 어쩌면, 이렇게 차가운 절차에 짓눌려 숫자로 변해가는 아이들에게 “너는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인공호흡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석두의 아버지는 결국 풀려났다. 없어졌다던 자재는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 일은 해프닝으로 정리되었다.

하지만 석두의 집 안에서는 벌어진 것은 아무것도 해프닝이 아니었다.

그 며칠 동안 석두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없었고, 집을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아이의 결석은 게으름도, 반항도 아니었다. 법보다 먼저 찾아온 현실에 대한 대응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석두 아버지는 영장 없이 48시간 내에 풀려나야 했음에도 무려 닷새나 파출소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이유랄 것도 없었다.

없어진 자재는 이미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지만, 경찰들은 '절차상 확인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그를 방치했다.

사실 그 닷새는 수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항의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를 기다리는 가족의 고통은 서류상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갇혀 있던 시간은 법의 엄격함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대하는 공권력의 나태함이 만든 무료한 유폐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공기는 차가웠고 수정 선생님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 어깨를 토닥거리고 수고했다는 말만 남긴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선생님의 온기가 머물렀던 어깨 위로 6월의 밤바람이 스며들자, 나는 비로소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성인이 된 지금, 나는 1988년의 그 뜨거웠던 여름보다 더 시리고 아팠던 그해 10월의 비 내리는 대낮을 기억한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는 깨진 유리 조각을 자신의 목에 댄 채 세상을 향해 절규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지강헌.

영등포 교도소에서 공주 교도소로 이송되던 중 탈주한 12명의 미결수 중 한 명이었던 그는,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온 나라를 공포와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창밖을 향해 터져 나온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설계도에 갇힌 자가 내뱉는 마지막 비명이었습니다.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 유전무죄 무전유죄!"


누군가는 권총을 들고 세상에 대항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고, 누군가는 그저 “내가 안 했습니다.” 혹은 “죄송합니다.”라는 낮은 읊조림만으로 그 거대한 불평등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었다.

1988년의 서울은 올림픽의 환희로 가득 차 있었지만, 브라운관 너머의 절규와 신사동 산동네 구석방의 흐느낌은 시간을 뚫고 나와 하나의 공명으로 내 가슴에 박혔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비릿한 공기를 타고 날아온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6월의 석두가 흘렸던 눈물은 10월의 지강헌이 흘린 피와 섞여, 내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박혀버렸다.

그리고 우리가 떠난 석두에 집에 밤늦게 김도현 선생님이 찾아왔다고 한다.

선생님은 석두 아버지의 거친 손에 자신의 한 달 치 봉급이 든 봉투를 쥐어주고는, 아무 말 없이 어두운 골목을 내려왔다고 한다.

그것은 가난이 죄가 되는 세상에서, 한 어른이 아이의 무너진 자존심을 대신해 지불한 가장 고결한 속죄였다. 그날 밤 선생님이 남기고 간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날카로운 불평등도 결코 훼손할 수 없는 인간의 품격이었다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다음 날 아침, 교실의 소음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전날 본 유머 일번지의 유행어를 흉내 냈고, 누군가는 숙제를 베끼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뒷문이 드르렁 소리를 내며 열리고 청룡 마석두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교실의 공기는 마치 얼음물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었다.

석두의 모습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늘 비딱하게 걸치던 교복 상의는 단정하게 단추가 채워져 있었고, 거칠게 뻗쳐 있던 머리카락은 찬물로 꾹꾹 눌러 빗은 흔적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녀석이 다시 누군가의 멱살을 잡거나 가방을 던질까 봐 숨을 죽였다.

하지만 석두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녀석은 짝꿍인 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아주 잠깐 눈을 맞추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우리가 공유한 그 무거운 밤에 대한,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수신호였다.


조회 시간이 되어 담임 김도현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교탁에 서서 평소처럼 출석부를 훑어보시다, 석두의 자리에 멈춰 섰다.

교실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선생님은 안경을 고쳐 쓰며 부드럽게 웃으셨다.

"석두, 왔구나."

선생님은 석두의 어깨를 툭, 하고 한 번 두드려주었다.

그 손길에는 닷새간 파출소 유치장에서 자식들을 걱정했을 석두의 아버지와, 그 빈집을 지켰던 열여섯 소년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온기가 담겨 있었다.

"자, 오늘은 수업 시작 전에 한 가지만 말하겠다. 세상에는 교과서보다 먼저 배워야 할 숙제들이 있단다. 석두는 이번에 그 어려운 숙제를 아주 훌륭하게 끝내고 온 거다. 다들 석두가 다시 온 걸 환영해 주자."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석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책상 모서리만 만지작거렸지만, 녀석의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비지스(Bee Gees)의 감미로운 'Holiday'라는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