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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자루 Nov 20. 2024

7. 어머니의 손을 바라보며

시간이 남긴 사랑의 흔적



어머니의 손을 바라본 게 언제였을까. 

어린 시절에는 그 손이 내 세상의 중심이었다. 

추운 겨울날, 내가 웅크리고 손을 내밀면 어머니의 손이 곧바로 내 손을 감싸주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 

그 손을 잡는 순간, 세상의 추위가 다 사라지는 듯했다. 

어머니의 손은 작은 기적 같았다. 그 손은 내가 넘어질까 걱정하며 나를 일으켜 세우고, 어두운 길을 걷는 동안에도 나를 지켜주는 등대 같았다.

어릴 적의 나는 그 손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 믿었다. 늘 부드럽고, 따뜻하며, 든든한 손. 하지만 세월은 나보다도 먼저 어머니의 손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가 거칠어진 손바닥에 놀랐다. 주름이 깊게 패이고, 푸른 혈관이 도드라져 보였다. 그 손은 내가 기억하던 부드럽고 매끄러운 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 변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 그토록 따뜻하고 강하던 손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나보다 먼저 나이를 먹고,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손.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 손이 변한 이유는 바로 나와 우리 가족 때문이었다.

그 손은 내 어린 시절, 매일같이 쌀을 씻고, 김치를 버무리며, 국을 끓이는 손이었다. 내가 입던 옷을 다리고, 내가 아프면 약을 짓던 손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 가방을 열어 학습지를 꺼내던 손이기도 했다. 그 손은 내가 잠든 밤에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그 손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성장하는 동안, 나는 그 손을 더 이상 유심히 바라보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이 여전히 나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나는 내 삶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이 거칠어지고 주름져 갈 때까지, 나는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어머니의 손은 이제 나에게 사랑의 증거다. 

그 손을 보면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가 보인다. 

부드럽고 고운 손이었을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손은 우리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미처 감사할 줄 몰랐다.

어느 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손이 거칠어지고 약해진 건 나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그 손을 내밀었고, 그 손으로 나를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내가 넘어지면 그 손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가 아플 때는 그 손으로 내 이마를 짚었다. 

어머니의 손은 늘 나를 돌보는 데 바빴다. 하지만 정작 어머니는 그 손으로 자신을 돌본 적이 있었을까?

나는 어머니의 손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손이 그렇게 변한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사실이 미안했다. 그 손이 나를 위해 너무 많은 일을 견뎌온 것 같아 미안했다.


어머니의 손을 바라보며, 나는 어머니가 더 이상 전처럼 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 손은 예전처럼 나를 단단히 붙잡고 지켜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손이 내게 건네는 사랑의 무게는 여전히 크고 깊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내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너는 괜찮지? 힘들면 말해라.”

그 손이 이제는 더 이상 힘이 세지도 않고, 움직임도 느려졌지만, 여전히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은 힘으로 나를 지켜주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사랑으로 나를 감싸주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잡아보았다. 거칠어진 손바닥, 깊어진 주름, 그리고 부드럽게 떨리는 손끝.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는 내가 그 손을 돌볼 차례라고. 이제는 내가 어머니를 지켜야 할 차례라고.


어머니의 손을 잡을 때마다, 나는 감사와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어릴 적 그토록 의지했던 손이 이제는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복잡한 감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결코 놓지 않을 것이다. 

그 손은 나를 키워준 손이며, 내 삶의 방향을 잡아준 손이다. 

이제는 내가 그 손을 잡고, 어머니와 함께 걸어갈 것이다.

어머니의 손은 나에게 단순한 신체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사랑을 실천해온 증거다. 

그 손은 내게 말한다. “너를 위해 내가 모든 걸 바쳤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손을 통해 내게 주어진 사랑을 되새기며,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사랑을 배운다.


어머니의 손은 단순한 노동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결과다. 

그 손이 거칠어지고 주름져 갈수록, 나는 어머니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 손은 내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본질을 가르쳐준다.

이제 나는 그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손이 나를 지켜줬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 손을 지켜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는 점점 더 나에게 의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손을 돌보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될 것이다.

어머니의 손은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흔적 속에서 나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그 손을 통해 배운 사랑과 희생의 가치를 나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머니의 손은 내가 성장하며 이해하게 된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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