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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나갈 뿐입니다.

by 한자루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세요. 시간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시계 초침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달력은 한 장씩 사라져 갑니다.
우리는 그 움직임을 보며 시간은 흐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어쩌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날은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끝나 있고, 몇 달 전의 일이 마치 어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갑니다.
하루가 길고, 기다림은 더욱 길어지며,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늘어지기도 합니다.

같은 시계를 보고 있는데도, 같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도, 시간은 우리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듯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 설레는 마음으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그때의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리운 이를 떠나보낸 날, 혼자 남아 창밖을 바라보던 긴 밤, 그때의 시간은 마치 멈춘 듯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요?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시간을 놓칩니다.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었던 순간들, 조금 더 용기 내어 다가갈 수 있었던 기회들, 소중한 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들.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그 흔한 이유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습니다.
그때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시간을 지나쳐 가 버린 것입니다.


만약 시간이 멈출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까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정지된 시간 속에서는 변화도, 성장도, 감정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쌓아온 따뜻한 기억도, 슬픔을 견디고 한 뼘 더 자라난 나 자신도, 모두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멈출 수 없기에, 우리는 사랑을 더 깊이 느끼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더 간절히 살아가게 됩니다.

시간이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문득 창가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십니다.
따뜻한 향이 코끝을 스치고, 창문 너머 하늘이 어느새 노을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조금 전까지 파랗던 하늘이 이렇게나 달라지다니, 그 변화가 참 신기하고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닫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순간을 살아가며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저, 자신의 시간 속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소중히 바라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뒤돌아보며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시간이란 결국,
우리가 지나온 길 위에 남겨진 사랑과 추억, 그리고 삶의 흔적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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