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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라진 공간, 잊히지 않는 기억

시간이 지나며 변해버린 기억의 장소들

by 한자루





가끔은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 두었던 특별한 장소가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던 거리, 매일같이 드나들던 작은 카페, 친구들과 웃음꽃을 피우던 벤치까지.

그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저마다의 추억과 감정을 품고 있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반가움이 아닌 낯섦일 때가 많습니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거리는 어느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고, 익숙했던 풍경은 기억 속 모습과 조금씩 어긋나 있습니다.

그제야 깨닫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장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이 함께 사라져 버린 듯한 아릿한 상실감이 밀려옵니다.


어쩌면 그 장소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은 나의 한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웃고 울며 수많은 감정을 새겼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 매일 같은 메뉴를 시키던 작은 가게, 이유 없이 걷고 싶어 자주 찾았던 그 길. 그 모든 순간들이 그 공간 속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장소가 변해버렸다는 것은, 단순히 건물이 바뀌고 거리가 새 단장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렀던 나의 지난날도 이제는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졌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곳에서 한때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막상 마주한 것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뿐입니다.

그때의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함께했던 사람들의 흔적은 어디로 갔을까요?

이제는 없는 공간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때때로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익숙했던 장소가 사라지고, 그곳에서 쌓았던 기억들이 희미해질 때, 마치 나의 일부가 함께 사라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사라진 것은 공간뿐일까요?

그때의 공간은 변했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과 추억들은 여전히 내 안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첫사랑의 설렘, 친구들과 밤새 나누던 이야기, 혼자서 걸으며 위로받았던 순간들.

그 모든 감정들은 여전히 나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쉽니다.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여전히 내 안에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변해버린 공간 앞에서, 사라진 것들만을 헤아리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그 공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그리움만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때의 감정과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우리는 그 공간을 떠나왔어도, 그 시절의 우리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가 과거의 공간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그곳이 그리워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공간을 통해 우리는 그때의 나 자신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문득 깨닫습니다.

장소는 변했어도, 그곳에서의 기억과 감정은 여전히 우리 안에 온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사라진 공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과거를 붙잡으려 애쓰기보다는,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돌아보라는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 공간에 담긴 감정과 추억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나누었던 대화, 그 시절의 감정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의미로 우리 안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그러니 사라진 공간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곳이 제게 준 것들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며, 새로운 공간에서 또 다른 기억을 만들어 가기로 합니다.

어쩌면, 그리운 공간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 모든 것들이 여전히 내 안에 있음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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