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단상
시간은 언제나 말없이 우리 곁을 스쳐 갑니다.
마치 들꽃 사이로 흐르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결로 우리 삶을 관통합니다.
그 흐름은 조용하지만, 등 뒤에 남긴 그림자는 하루하루 조금씩 길어지고, 우리는 그늘진 자리에 나이 듦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죠.
젊음은 영원할 것처럼 환하게 빛나지만, 어느 날 거울 속 낯선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을 종종 두려워합니다.
생기 있던 웃음 대신 주름이 스미고, 가볍던 발걸음엔 어느새 고요한 무게가 얹히죠.
하지만 나이 듦은 조용히 지워지는 과정이 아니라, 차곡차곡 삶을 쌓아올리는 일입니다.
잃어버린 것들 사이로 어느 날 문득, 말보다 눈빛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속도보다 여백에 머무는 법을 배우고, 소유보다 비움이 주는 평화를 알게 되죠.
나이 든다는 것은 말 없는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시간, 스스로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는 연습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은 때로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지나간 날들은 유난히 눈부시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 젊은 날의 자유, 가능성으로 반짝이던 시간들, 그리고 더는 곁에 없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기에 아프고, 손끝으로도 붙잡을 수 없기에 허망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상실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넓어지고, 더 따뜻해집니다.
상실은 결핍이 아니라,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적시는 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이해하게 됩니다.
삶이 늘 반짝이지만은 않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갈 이유는 존재한다는 것도요.
실패는 스쳐가는 바람이 아니라, 내 안을 정리하고 다시 세우는 바람의 결이 됩니다.
상처는 찢긴 자리가 아니라, 빛이 스며드는 창이 되기도 합니다.
삶의 깊이는 화려한 날이 아니라, 견뎌낸 계절들이 겹겹이 쌓여 이룬 무늬입니다.
젊을 땐 죽음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은 그 거리를 조금씩 좁혀 놓습니다.
죽음은 이제 끝이라기보다, 삶의 마지막 문장이자, 하루하루를 진지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마침표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 진심으로 서게 됩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더 깊이 사랑하고, 더 조심히 미워하고, 더 감사히 오늘을 살아갑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공포가 아니라, 삶을 가장 정직하게 바라보게 하는 거울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결국 모든 것을 떠나보내게 합니다.
젊음, 성공, 사랑, 명예…
그 모든 것들은 점점 더 연한 빛으로 바래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과 기억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시간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더 짙게 각인시키는 방식으로 우리를 완성해 갑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들지만, 그 내려놓음은 욕심과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살아 있음에 대한 마지막 감사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나이 듦은 잃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내가 나로 완성되어 가는 여정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모든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내는 가장 고요한 완성일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많이 사랑하며, 더 깊이 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서 비로소 우리는, 가장 온전한 나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