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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과거와의 화해

선택과 실수, 그리고 치유의 여정

by 한자루




과거는 늘 조용한 그림자처럼, 우리의 마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문득 스쳐가는 바람처럼 우리를 멈추게 만들죠.

우리가 내렸던 선택들, 그 안에서 흘린 눈물과 숨죽였던 순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고, 외면하려 해도 곁을 떠나지 않는 기억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과거입니다.

그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 고요히 스며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 기억 앞에서 멈춰섭니다. 바쁜 하루 속, 문득 찾아온 침묵의 순간에, 그때의 나와 마주치게 되는 거죠.

‘왜 그랬을까’ 하는 아쉬움과 ‘그때는 몰랐지’라는 후회가 뒤섞이며, 우리는 잠시 과거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기억과 마주 앉아야 합니다.

도망치지 않고, 그 시절의 나를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무겁고 아픈 이야기일지라도, 그때의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 그것이 진정한 화해의 시작입니다.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이해하고 품는 것. 그리하여 더 이상 그 기억이 나를 흔들지 않도록, 내 안에서 조용히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그때의 나는 어땠을까요. 지금의 나보다 부족했고, 서툴렀으며, 너무도 작고 여렸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의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맞서기엔 부족했지만, 도망치지 않았고, 끝까지 버텨냈습니다.

그 작고 어설픈 용기가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종종 그 시절의 실수들로 인해 스스로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됩니다.

그 실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의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넘어졌기에 일어나는 법을 배웠고, 울었기에 누군가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화해는 용서에서 시작됩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

그때의 나를 미워하기보다, "너는 정말 힘들었지"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야 합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그 마음을, 이제는 인정하고 안아줄 시간입니다.

그 미완성의 나를 껴안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


상처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는, 우리가 살아왔다는 증거이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다는 흔적입니다.

아팠기에 더 깊어졌고, 흔들렸기에 더 유연해졌습니다.

그 모든 감정의 파도가 지나간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화해는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됩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조용하고 단단한 마음.

과거가 나를 붙잡지 못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화해는 끝이 아닌 시작이며, 상처 위에 피어나는 가장 따뜻한 꽃입니다.


과거와의 화해는 자신을 다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여정입니다.

그 아팠던 날들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마저도 지금의 나를 만든 고운 조각으로 품어주는 것.

그때의 내가 울던 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웃을 수 있는 오늘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그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싶습니다.

"그때 정말 애썼어, 그리고 지금도 잘하고 있어."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모든 시간이 너를 만들었고, 그래서 너는 충분히 소중해."

과거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룬 서사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우리는 마침내 진짜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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