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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돈의 신 04화

4. 돈이 만드는 현실의 굴절

부자와 가난한 자의 시선

by 한자루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며,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를 형성하는 프리즘이다.

돈은 우리가 현실을 해석하는 언어이며, 우리 존재의 좌표를 결정짓는 사회적 구조다.

돈이 많으면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꿈의 무대처럼 보인다.

기회는 눈앞에 무수히 펼쳐지고, 삶의 경로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선택의 무게를 실감한다.

예를 들어, 부자가 값비싼 식당에서 저녁 메뉴를 고를 때 느끼는 고민은, 가난한 사람이 한 달 치 생필품을 사야 할 때의 고민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둘 다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이 레스토랑의 스테이크가 과연 기대만큼 맛있을까?’라는 사소한 고민도, 일종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반면, 돈이 부족하면 세계는 투쟁의 공간이 된다. 생존이 우선이며, 내일보다 오늘이 급하다.

기회의 문은 좁아지고, 선택보다는 필수의 문제가 삶을 지배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삶의 여유를 논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같은 커피 값을 두고 ‘이걸로 라면 두 봉지를 사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인간관계의 진정성이나 삶의 의미를 더욱 깊이 탐구하는 경우도 많다.

부족함 속에서 연대가 피어나고, 작은 기쁨이 더 깊이 감각된다.

역사적으로도 공동체의 결속력은 종종 어려운 환경 속에서 더욱 강해졌다.


결국 돈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것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돈이 우리의 의식과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있다.

돈이란 단순한 물질적 축적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는 힘이다.

같은 해변을 바라볼 때도, 부자는 ‘멋진 해변 리조트에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여기서 어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같은 현실도 돈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다.


부는 단순한 재산의 증식이 아니라 가능성의 확장이고, 가난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돈이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은 인간 경험을 구조화하는 강력한 매개체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상실한다.

마치 최신 스마트폰을 샀지만, SNS 중독으로 인해 결국 더 불행해지는 것과 같다.

돈이 많아도 그 돈을 위해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경쟁 속에 갇힌다면, 그것이 진정한 자유일까?


돈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는 돈을 통해 어떤 인간으로 변화하고 있는가이다.

돈이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렌즈를 왜곡시키는가, 혹은 확장시키는가. 마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돈은 우리의 시선을 바꾼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 렌즈를 통해 무엇을 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돈이 우리를 지배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돈을 초월하여 더욱 본질적인 가치를 찾는가.

돈의 철학적 본질은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서 돈이 많았던 로즈가 결국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한 것처럼, 우리는 돈의 유무를 넘어 더 깊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돈은 강력한 도구지만, 그것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인생을 결정하는 최종 답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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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