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퇴근길, 꽉 막힌 도로 위를 달리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오늘도 똑같이 출근했고, 똑같이 일했고, 똑같이 지쳐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
당연히 "아니"라는 답이 나와야 했다. 하지만 그런 답이 생각처럼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럼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지? 하기 싫은 일은 넘쳐났지만 하고 싶은 일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 원하는 삶이란게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동안 그 질문을 곱씹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만 들어도 피곤하다.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부동산을 사야 한다, 사업을 해야 한다, 결국 돈이 돈을 벌게 만들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귓가를 맴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퇴근 후 가족들과 수다를 떨기에도 벅차고, 주말이면 내내 퍼져서 움직이는 것 조차 버겁니다.
이 상태에서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그래도 한 번쯤은 꿈꿔 본다.
내 통장 잔고가 더 이상 생활비와 카드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두둑하다면?
아마도 처음엔 여행을 가겠지.
유럽의 골목길을 걸으며 커피를 마시고, 한적한 해변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볼 거다.
그리고는 "그래,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지!" 하며 다짐할 거다.
처음 마시는 비싼 와인에 황홀해 할 거고, 처음 타보는 비즈니스 클래스는 감격스러울 거다.
그런데 그다음은? 또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처음의 짜릿함은 점점 무뎌지고, 더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되지 않을까?
이건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행복"에 익숙해지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복감은 주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관련이 있다.
도파민은 새로운 보상을 받을 때 뇌에서 분비되며, 강한 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는, 도파민 시스템은 새로움에 반응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도파민 분비가 줄어들고,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강도의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감정에도 적용된다는 증거다.
이 현상은 유전적으로 인간의 생존 전략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만약 우리가 한 번의 성취나 쾌락으로 영원히 만족한다면, 더 나은 환경을 찾으려는 본능이 사라지고,
결국 생존과 번식 경쟁에서 밀려났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지속적인 욕망과 적응"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발전해왔다.
유사한 즐거움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새로운 것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니 돈이 많아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진짜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돈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연 소득 7만 5천 달러(약 1억 원) 이후부터는 행복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이 큰 문제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건 돈이 없어서가 맞지만, 그렇다고 돈이 많아지면 인생이 자동으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거다.
경제적 자유를 얻으면 우리는 "이제 돈 걱정은 끝났으니,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아진 뒤에도 불안해하고, 또 다른 목표를 찾아 헤맨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면 끝날 줄 알았던 욕망이, 새로운 형태로 우리를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현재의 자유를 포기한다.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힘들어도 참으면서 돈을 모은다.
"조금만 더 벌면, 조금만 더 모으면 더 자유로워질 거야."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정말 자유를 살 수 있을까?
10년, 20년 동안 피 터지게 일한 끝에 은퇴했다고 치자. 그때 우리는 자유를 누리는 법을 알고 있을까?
매일 새벽에 눈을 떠서 출근하고, 일을 하다가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삶이 20년 넘게 반복되었다면, 경제적 자유가 찾아온 순간 우리는 정말로 자유를 즐길 수 있을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는 ‘레드(모건 프리먼 역)’라는 죄수가 나온다.
감옥생활 40년 만에 가석방 된 레드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가게에서 사장에게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묻는다.
사장은 짜증스럽게 “매번 나한테 묻지 말고 가고 싶을 때 오줌 누러 가”라고 말한다.
레드는 “40년 동안 허락받고 오줌 누러 갔다. 허락 안 받으면 한 방울도 쌀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직면한 현실이었다. 나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고 칼에 베인 것처럼 서늘한 독백을 한다.
그렇게 습관에 젖어버리면 자유를 맞이하고도 그 자유를 누릴 수 없다.
경제적 자유를 성취하는 것보다 성취 후에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의식을 가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오면, 기뻐할 수 있을까? 아니면 허무의 짙은 그늘에 잠식될까?
결국,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은 두 가지 길을 걷는다.
첫 번째, 경제적 자유 이후에도 새로운 배움과 목표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
두 번째, 돈은 있지만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
평생 돈을 벌기 위해 달려왔기에, 돈이 문제가 아니게 된 순간 삶의 의미도 함께 사라진다.
시간은 넘쳐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공허해진다.
나 역시 경제적 자유를 성취하고 난 후에 어떤 부류의 길을 가게 될지 확신할 수 없다.
사실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 조차 불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통장 잔고가 넉넉해지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할 거라는 기대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질문도 함께 던지게 된다.
"돈이 많아지면 정말로 행복할까?"
"돈을 넘어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어쩌면 경제적 자유를 고민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돈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 아닐까?
목적지를 모른채 돈이라는 경제적 자유에 휘둘려 무작정 앞만보고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경제적 자유를 꿈꾸면서도, 그 이후의 삶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돈이 많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