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투자의 함정
몇 년 전, "영끌"과 "빚투"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졌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한다"는 의미의 영끌과, "빚을 내서 투자한다"는 뜻의 빚투.
이 단어들이 얼마나 강렬한가?
사람들은 더 이상 종잣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일단 대출부터 받고 투자를 시작했다.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불리는 것이 시대정신처럼 여겨졌다.
처음엔 다들 성공하는 것 같았다.
"주식으로 1억 벌었다!" "코인으로 100배 수익!" "작년에 집 샀는데 3억 올랐음!"
이런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평범한 월급쟁이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고 자랑했고, 또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자산가가 되었다며 SNS에 고급 외제차와 펜트하우스 사진을 올렸다.
부자는 선택받은 사람들만 되는 게 아니었다.
조금만 용기 내서 빚을 내고, 조금만 더 과감하게 투자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꿈같은 이야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금리가 오르고, 시장이 흔들리면서 '경제적 자유'를 외치던 많은 사람들은 그 자유를 빚더미 속에 파묻혔다. 코인의 가격이 반 토막 나고, 주식 시장이 폭락하고, 부동산은 거래가 끊겼다. "집값은 절대 안 떨어진다"던 전문가들의 말은 허공에 사라졌고, "이건 혁신이다"라고 외치던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사람들은 이제 외제차 대신 중고차를 알아보고, 오피스텔 대신 반지하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투자와 투기는 한 끗 차이다.
투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산을 늘리는 과정이고, 투기는 단기적인 이익을 노리는 도박에 가깝다. 하지만 상승장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오르는 자산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천재 투자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내가 이 흐름을 읽었어! 나는 감이 있어! 이번에는 다를 거야!’
하지만 투자 시장에서는 ‘이번에는 다르다’는 말이 가장 위험한 말이다.
가상자산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혁신적인 금융 시스템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혁신과 투자는 별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좋은 투자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기술 혁신과 거품은 함께 움직였다.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을 떠올려보자.
인터넷의 미래는 지금도 밝지만, 그 시절 투자자들에게는 밝지 않았다.
당시 수많은 스타트업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버블이 꺼지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가상자산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 기술이 미래를 바꿀 가능성은 있지만, 모든 코인이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부동산도 예외가 아니다.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시장에는 언제나 사이클이 있다. 과거 일본의 부동산 버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보면, 집값은 영원히 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이번에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치 카지노에서 "이번에는 딸 것 같아!"라고 외치는 도박사들처럼 말이다.
투자자들은 종종 자신도 모르게 몇 가지 심리적 함정에 빠지곤 한다.
그중 하나가 초심자의 행운이다. 처음으로 투자한 종목이 우연히 큰 수익을 안겨주면, 투자자는 이를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하기 쉽다.
"내가 선택한 주식(혹은 코인)만 올랐어! 나에겐 투자 감각이 있나 봐!"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을 키운다. 하지만 이런 초기 성공은 단순한 운일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흐름과 리스크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찾아온 행운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운이 실력이라고 믿는 순간, 더 큰 돈을 투자하게 되고, 결국 예상치 못한 하락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투자자들은 하우스머니 효과에 쉽게 휘둘린다. 하우스머니 효과란 쉽게 번 돈을 쉽게 잃어도 괜찮다고 여기는 심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가상자산 투자로 500만 원을 벌었다면, 사람들은 이를 "공짜로 생긴 돈"이라고 인식하고 더 과감한 재투자를 감행한다.
"어차피 내 원금은 아니니까, 조금 더 공격적으로 투자해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짜 돈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벌었던 돈이라도 잃게 되면 결국 자신의 자산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순간의 이익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는 투자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더 큰 손실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마지막으로, 도박 심리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손실을 경험한 후, 이를 만회하려는 강한 충동이 생긴다.
"한 번만 더 베팅하면 이번엔 만회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더욱 위험한 투자에 손을 대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카지노에서 도박사들이 패를 잃은 뒤 다시 베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손실을 본 후 냉정하게 판단하기보다, 손해를 되찾기 위해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더 큰 실패를 불러온다.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잃은 돈을 되찾으려는 마음’이다. 무리한 레버리지(대출)를 사용하거나, 충분한 분석 없이 단기적인 상승만 기대하며 투자하는 것은 결국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초심자의 행운, 하우스머니 효과, 도박 심리 등은 투자자들이 빠지기 쉬운 대표적인 함정들이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수익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능력이다.
자신의 판단이 객관적인지, 감정에 휘둘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냉정한 판단과 신중한 전략이 없다면, 투자자는 쉽게 도박사가 될 수 있다.
이제 돌아볼 때다.
우리는 정말 ‘투자’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한탕’을 노리고 있는가? 빠른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한탕을 노리는 순간, 우리는 투자자가 아니라 도박사가 된다.
그리고 도박판에서는 결국 카지노만이 이긴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한 시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성공한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
한때 엄청난 수익을 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빚더미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경제적 자유는 한 번의 대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꾸준한 공부, 냉정한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 욕망을 절제하는 능력에서 온다.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더 큰 돈을 번다"는 말은 반만 맞다.
더 정확한 말은 이렇다.
"진정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무작정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히 분석하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는 투자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도박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