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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돈의 신 28화

30.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다.

나는 정말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가?

by 한자루




어떤 날엔 돈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다음 날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은행 계좌의 잔고는 변하지 않았는데, 내 감정은 하루 사이에 뒤집힌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는다. 나는 정말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더 많이’라는 말은 항상 정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돈, 더 넓은 집, 더 좋은 직업. 이 모든 것은 향상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탐욕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조금만 더’는 도달하는 순간 조금 더 더로 변한다.
욕망은 늘 기준을 바꾸고, 기준은 결국 부족감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질문을 반대로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말 더 많은 돈이 필요할까?”가 아니라,
“나는 지금 이 돈으로 어떤 삶을 설계할 수 있을까?"라고.

어쩌면 돈이 더 필요한 게 아니라 지금 있는 돈으로 내 삶을 다시 설계할 창의성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돈은 여전히 중요하다. 부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떤 시점부터 더 이상 ‘필요’가 아니라 ‘비교’와 ‘불안’이 우리를 몰아가고 있을 수 있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싶다면 그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내 삶을 더 넓히기 위한 순수한 바람인지, 아니면 남의 삶을 따라잡기 위한 조급한 불안인지.

삶을 바꾸는 건 언제나 돈이 아니라 태도다.
그리고 태도는 돈이 많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많지 않을 때 단련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 더 많은 돈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조금 더’가 반드시 내 삶을 더 좋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걸.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가끔 반복한다.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가, 아니면 지금 이 돈으로 더 나은 삶을 시작할 수 있는가?




나는 부에 대한 호기심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고, 투기와 돈의 중독을 경계했고, 시간과 의미, 자유에 대해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곤 했다.
“나는 왜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게 수없이 되묻고, 경계하고, 회의했지만 한편, 한 편의 문장을 닫을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늘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다.”


그렇다. 욕망은 이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그 정체는 더 깊고 미묘해진다.

나는 이제 안다.
부자가 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돈은 삶의 도구일 뿐이고, 어떤 삶은 돈 없이도 충분히 충만할 수 있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은 걸까?


어쩌면 이제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은 이전과 같은 욕망의 언어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 그건 삶을 설계하려는 의지, 그리고 더 나은 자율성을 꿈꾸는 방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남에게 보이기 위한 부를 원하지 않는다.
비싼 차, 명품, 호화로운 삶의 디스플레이에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구조,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능력,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을 원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자산’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부를 원하고 있다.


예전에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 ‘신분 상승’처럼 들렸다.
세상이 나를 인정해 주는 방식, 위에 오르는 증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는 이제 내가 추구하는 삶을 구현할 수 있는 구조의 언어가 되었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스스로의 시간을 잃지 않고 살고 싶은 것.
그게 내 안의 진짜 욕망이다.


이 고백은 진실하지만, 여전히 모순과 충돌로 가득하다.

나는 자율성을 원하지만, 그 자율성도 결국 자본의 테두리 안에 놓여 있다.

나는 의미를 추구하고 싶지만, 그 의미는 어느 순간 생계와 생산성 사이에서 찢긴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이 말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건 현실을 껴안은 채 자기만의 균형을 찾으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이전에는 부를 원하는 나를 조금 부끄러워했다.
조금 더 철학적이고, 조금 더 초연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욕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아주 정직한 감정이라는 걸.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그 욕망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욕망이 나를 삼키게 두지 않을 뿐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말 안에는 삶의 모든 결정을 스스로의 언어로 정의 내리고 싶은 소망이 담겨 있다.

그건 돈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지만, 더 깊게 보면 자유를 지향하는 영혼의 움직임이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내 삶답게’ 살고 싶다는 뜻이다.


처음 '부(富)'라는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사실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나는 흔히 말하는 투자의 귀재도 아니고, 성공적인 투자로 이른 은퇴를 이룬 파이어족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부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부담스럽고 주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30편의 글을 완주할 수 있었던 건 내 안에 있는 공포와 탐욕이라는 감정의 진폭을
조금은 제어해보고 싶다는 내밀한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고, 여전히 투자하고 있으며, 여전히 경제공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진 지점이 있습니다.
예전보다 탐욕과 공포를 더 잘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고, 부를 단지 돈의 수치가 아닌 마음의 수치로 바라보려 애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30편의 에세이는, 투자의 기법이나 부를 이루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못합니다.

그런 방법을 알았다면 나는 벌써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내가 꿈꾸는 일들을 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 압니다.
진정한 경제적 자유란, 나의 불안과 기대, 욕망과 실망, 환상과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잔잔한 마음 위에서 자란다는 것을요.


그렇게 무작정 시작한 30편의 글은, 어쩌면 그 마음을 찾아가는 작은 항해의 기록이었습니다.

함께 글을 읽어주시며 부에 대한 고민의 여정을 함께 해 주신 작가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남깁니다.

함께 해 주신 작가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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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