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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돈의 신 26화

28. 누구의 기준으로 부자인가?

부의 기준

by 한자루




요즘 들어 부자라는 말의 의미가 점점 모호해진다.
분명히 예전보다 조금 더 벌고, 조금 더 모았으며,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나는 부자가 아니라는 기분에 빠지곤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이미 내 연봉의 두 배를 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벌써 몇 채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는 말로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나는 내 자리에서 분명히 최선을 다해왔고, 내 삶에 대한 어느 정도의 만족감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감정들이 조용히 스러져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변화는 대개 숫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비교에서 온다.
내가 실제로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내가 누구와 나를 비교하고 있느냐가 내 부의 감각을 결정짓는다.


과거에는 부의 기준이 조금 더 단순했다.
먹고 사는 데 큰 불편이 없고, 자녀 교육을 감당할 수 있으며,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정도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부의 범주 안에 넣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준이 흐릿해졌고, 대부분은 자기 기준이 아닌 남의 기준으로 자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를 판단하고 있다.


SNS는 그런 흐름을 더 가속화한다.
누구는 제주도 한 달 살이를 하고, 누구는 파리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고, 누구는 ‘작년 연봉에서 올해 얼마나 더 벌었는지’를 숫자로 표시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나의 현실을 더 작고 초라하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멈춰서 생각해보면, 내가 진짜로 추구했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고, 가끔은 내가 원하는 책을 읽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밥을 먹는 그런 하루를 꿈꿨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내 삶을 남의 통장 잔고로 평가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의 사진 한 장, 숫자 하나, 자랑스러운 문장 하나에 내 감정이 이렇게나 쉽게 무너질 이유가 있을까.

부의 감각은 결국 정량이 아니라 정서이고, 내가 내 삶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남보다 얼마나 더 벌고 있느냐보다, 나는 지금 어떤 감정으로 하루를 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부자는 꼭 통장에 많은 돈이 있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돈이 나의 시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만들어주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얼마나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가, 그리고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내 삶의 속도와 형태로 살아갈 수 있는가이다.

그 기준이 외부에 있는 한, 나는 결코 부자일 수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타인의 부는 항상 나의 부족함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수입이 아니라 더 적은 비교인지도 모른다.

내 삶의 기준을 복원하고, 그 안에서 작더라도 단단한 부를 쌓는 일.
그 일이 오히려 나를 진짜 부자로 만드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누구의 기준으로 부자를 상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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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