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늘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진다면?

기적도 일상이 되면 귀찮아진다

by 한자루



출근길, 뉴스 앱을 스치듯 넘기다 멈췄다.
“서울 강북구. 단일 회차에서 무려 5명의 1등 당첨자를 배출”
댓글에는 한숨과 질투, 농담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저긴 뭐 1등 로또 복권 자판기야?”
“운도 세습이냐?”
“그 동네 공기 수입 좀.”


화면을 보고 픽 웃음이 났다.

그때 5년이 넘은 내 휴대폰 화면이 깜짝이다, 다시 느릿하게 살아났다.

베터리는 18%. 하지만 10분 뒤면 꺼질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요즘은 30%부터가 공포 구간이다.
가끔은 통화 중에 아무 예고 없이 혼자 꺼지는 이 폰은 지금,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만 남긴 채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로또에 당첨된다면 가장 먼저 이 폰부터 바꿔야지.’ 마음속에만 맴돌던 그 생각이, 오늘은 조금 더 간절해진다.

그렇게, 간절한 눈빛이 된 순간, 또 다시 머릿속에 하나의 상상이 피어올랐다.
만약, 매일 정오 하늘에서 고가의 스마트폰이 한 대씩 떨어진다면?
사람들은,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변할까? 그리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시작된다.

매일 정오, 전 세계 어디선가 하늘에서 고가의 스마트폰 1개가 떨어진다.


모델은 최신형, 박스째, 충전기 포함.
위치는 랜덤. 사전 예고는 없다. 하루 단 한번, 단 한 대.


하늘에서 비가 아니라 스마트폰이 떨어진다.


1일차 첫날 정오, 서울 광화문 광장

점심시간 특유의 웅성거림 속, 사람들이 커피를 들고 오가던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는 듯한 짧고 날카로운 ‘쉭’ 소리가 났다.
누군가 고개를 들기도 전에,
‘툭’
무언가가 정확히 광장 중앙, 사람들 발치에 떨어졌다.

움찔하며 뒤로 물러난 몇 명. 누군가는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냈고, 누군가는 조용히 속삭였다.
“방금… 뭐야?”

"드론이 추락한게 아닐까?"

“건물 위에서 누가 실수로 떨어뜨린거 아니야?”

그 상자는 이상했다.

정육면체 상자. 밀봉 포장. 깔끔한 비닐 랩. 광택 있는 표면이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표면엔 아무 로고도 없지만,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거다. 진짜 비싼 그거.’

그리고 누군가 외쳤다.

“야, 이거… A사의 최신 스마트폰이다!”

3초 후, 광장은 난리가 났다.

“진짜야? 하늘에서 떨어진 거라고?”

주변 직장인들이 몰려들고, 지나가던 외국인 관광객이 “Oh my god...”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다.


뉴스 채널은 긴급 속보를 내보냈다.
“광화문 광장, 미확인 고가 물체 낙하… A사 제품 유사 박스 확인 중”
기자는 ‘A사의 고가 스마트폰으로 보이는 물체’라는 말을 반복하며 현장을 헤집었다.
종교인은 곧 성명을 냈다.
“이건 신의 계시입니다. 탐욕을 시험하는 장치입니다. 이 물건을 받은 사람은 회개하십시오.”
한 물리학 교수는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게 진짜라면 궤도 추적 데이터가 있어야 하고요, 재질과 속도를 분석해야… 아, 일단 박스를 열지 마세요.”
IT 유튜버는 ‘실시간 낙하 분석 방송’을 열었다.
“자, 보세요. 이게 어제 스페이스X 위성 궤도고요, 여기에 오늘 낙하 지점 좌표를 대입하면… 흐음. 이건 누가 설계한 거예요.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시면, 위도 경도 표시해드릴게요. 내일은 여기 반경 2km 안에 다시 떨어질 확률 높습니다.”
정치인도 곧장 반응했다.
“국민 여러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습니다. 해외 고가 물품의 무단 낙하는 관세법 위반 소지가 있으며, 해당 제품은 일단 국가 자산으로 간주해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날 저녁, ‘하늘폰’이라는 단어가 검색어 1위를 찍는다.
그리고 그날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정오가 되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2일 차

전날의 영상은 조회수 3억을 돌파했다.

기적은 곧 관심이 되고, 관심은 클릭 수가 된다.

정오가 되자, 이번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떨어졌다.
중계 영상이 올라오자 사람들은 외쳤다.
“대박! 진짜 매일 한 대씩 떨어지는 거야!”
“지구 랜덤인가 봐, 오늘은 남미면 내일은 아시아 쪽에 떨어질 차례지!”

어플 개발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폰 레이더’라는 이름의 앱이 베타 오픈했고, 하늘을 향해 들고 다니는 ‘폰 거치용 헬멧’, ‘하늘 보기 최적화 안경’ 같은 기묘한 액세서리들이 등장했다.

기적은 단 하루 만에 콘텐츠가 되었고, 산업이 되기 시작했다.


7일 차

광장에서 낙하 장면을 흉내 낸 이벤트가 열렸다.
정확히 12시에 누군가 드론으로 짝퉁 박스 투하.
“이게 진짜야!” 하고 달려간 사람들 사이에 혼란 발생.

하지만 박스 속은 쓰레기로 채워져있었다.

이후로 “진짜 하늘폰인지 확인하는 법” 영상이 우후죽순 올라온다.

낙하 하늘폰의 중고 거래가는 미친 듯이 뛴다.

소비는 신비를 먹고 자란다. A사 공식 입장은 여전히 없다.


30일 차

정오. 뉴스 앱 알림
“오늘 하늘폰, 뉴질랜드 북섬에 낙하… 28세 남성 ‘드디어 나도 한 번’”
하지만 실시간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오늘도 아님.”
“부럽다는 감정조차 사라짐.”
“나도 언젠간…은 무슨. 그냥 일이나 하자.”

거리엔 고개를 들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다.

기적은 결국 루틴이 되고, 루틴은 결국 불공정에 대한 짜증이 된다.

누군가는 말했다.

“이젠 하늘 쳐다 보기도 지겨워졌다.”


100일 차
‘하늘폰’은 이제 기적이라기보단 하루 한 번의 이벤트가 됐다.
뉴스앱엔 정오마다 자동 알림이 뜬다.
“오늘의 낙하지점, 모스크바 인근 공원. 18세 여학생이 습득.”

SNS는 여전히 떠들썩하지만, 사람들의 반응도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하늘을 더 자주 올려다보았고, 어느새 ‘하늘을 보는 습관’은 일상이 되어 있었다.

반대로, 하늘을 바라보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탈낙하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캠페인을 벌이며 “그만 고개 들어”라는 문구가 전철 광고에 등장했다.

그리고 여전히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이건 A사 마케팅이야. 아니면 CIA가 사람들 반응 보는 거지.”
그들은 기적을 믿는 대신, 모든 낙하를 연출로 간주했고, 하늘마저도 누군가가 조작한다고 확신했다.

기적은 이제 더는 신비하지 않다.
사람들의 관심은 “나한테 올까?”에서 “왜 나한테는 안 오지?”로 이동했고,

그 다음엔 “어차피 안 올 거”로 마무리되고 있다.


365일 차

총 365개의 스마트폰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22개는 같은 국가에 두 번 이상, 8개는 바다로 떨어져 회수되지 못했고, 3개는 주운 사람이 끝내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1개는 정체불명의 위조품으로 드러났다.

하늘폰은 여전히 매일, 같은 시각, 같은 방식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이상 정오에 하늘을 보지 않는다.

그사이 사회는 조용히 변했다.
하늘폰을 실제로 받은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비공개 커뮤니티가 생겼고, 극단주의자 중 일부는 이 현상을 외계인이 인류를 시험하는 장치라 부르며 종말론을 전파하고 다닌다.

그리고 어느 날, 트위터에 이런 글이 조용히 올라왔다.
“오늘 A폰 어디 떨어졌는지 아는 사람?”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설정은 오로지 내 머릿속에서 발생한 판타지적 실험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매일 겪는 현실이다.

반복되는 기적은 첫날에는 기대를 낳고, 일주일쯤 지나면 탐욕을 부르고, 몇 달이 지나면 박탈감을 쌓고, 1년이 지나면 혐오와 무관심을 낳는다.

결국 하늘폰이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못 받은 게 문제다.
세상은 공정한 룰을 가졌지만, 그 룰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기회 없음’을 반복적으로 상기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비로움을 욕망하면서도 동시에 증오한다.
자신은 언제나 그 바깥에 있다는 기분 때문에.


우리는 매일 누군가가 선택되는 세상에 산다.
그리고 알다시피 우리 대부분은 늘 그 선택에서 빠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기대를 내려놓는다.
누구에게 떨어질지 모를 기회를 기다리기보다, 기회가 없다는 전제를 안고도 그냥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그 살아가는 법이란 건 타인의 행운을 곧장 내 결핍과 연결하지 않는 일이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얻었을 때, 굳이 속으로 비교하거나 조용한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 것.

또, 누구의 기쁨에 반드시 반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조용히 받아들이게 된다.

같이 기뻐하지 않아도, 질투하지 않아도, 그냥 한 걸음 물러서서 조용히 지나가게 둘 수 있는 마음.

그건 냉소가 아니라, 내 감정을 지키는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박탈감이라는 감정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법도 배운다.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오래 머물게 둘 이유도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에게 이유 없는 패배감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를 실패로 여기지 않는 일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날에도, 그냥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의 구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실패로 여기지 않는 일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날에도 그냥 조용히 하루를 보내고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법.
어쩌면 진짜 기회는 그렇게 쌓인 하루들의 안쪽에서 자라나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모든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은, 진짜 한 번쯤은 통화 중에 혼자 꺼지지 않는 새 폰을 갖게 되는 날도 왔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오늘 정오쯤엔 하늘 한 번 슬쩍 봐야겠다. 혹시 모르잖는가? 새 휴대폰이 떨어질지도.
뭐... 아무 일 없으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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