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AI vs 시골 할머니

지식은 문제의 틀 안에 있고, 지혜는 틀 밖으로 빠져나간다.

by 한자루


우기가 시작되었다.
며칠째 해가 안 나더니, 결국 사고가 터졌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셔츠를 들었는데, 쉰내가 확 올라왔다.
딱 젖은 걸레 말리다 만 냄새.
다른 옷을 찾았지만 정도만 덜했지 비슷한 상태다. 그냥 입을 수 밖에 없지만 찝찝함이 몰려왔다.

나는 급하게 스마트폰을 열어 AI에게 물었다.

“빨래에서 쉰내가 나. 어떻게 해야 해?”

AI는 아주 또렷하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제습기 사용을 권장합니다. 고속 탈수, 구연산 헹굼도 효과적입니다. 또한 건조기를 함께 사용하면 냄새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제습기? 없다. 건조기? 없다. 구연산? 마트에서 본 적은 있지만 사본 적은 없다.
탈수는 이미 세탁기에서 할 만큼 했다.
환기? 비가 와서 사흘째 창문을 활짝 열어 놓지 못했다.

나는 “지금 당장 냄새 나는 셔츠 한 장”을 어떻게 할지 묻고 있는데, AI는 마치 주택 개조 설계를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떠올랐다.
예전 시골에 살던 할머니라면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뭘 그걸로 고민하냐, 그냥 다리미질 해. 김 올라오면 냄새 날아가.”

나에겐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렇다.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현실에 닿은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런 문제를 할머니가 풀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이 순간, 말 많은 AI와, 욕 많은 할머니가 한 공간에서 생활 문제를 두고 맞붙는다면?



머릿속에 ‘생활판단 능력 실험실’이 설치한다.
장소는 내가 원하는 만큼 습하고, 복잡하며, 답답한 가정집이다.
이름하여, '일상생존능력 비교실험실'

그리고 그곳에 두 존재를 소환한다.

지금부터 세상의 작지만 고약한 문제들을 놓고 두 천재의 맞대결이 시작된다.

한쪽에는 최신형 인공지능, AI 라이프봇 9.2.
화려한 유광 케이스, 부드러운 음성, 항상 정중한 말투.
필요하다면 전 세계 논문을 1초 만에 요약할 수 있는 존재.
하지만 계란 하나 직접 못 깬다는 단점은 있다.

반대편에는 욕쟁이 시골 할머니, 김복순 여사, 만 79세.
할머니 파마 머리, 옷은 고무줄이 장착된 몸빼 바지.
입을 열면 욕이 먼저 튀어나오지만, 그 속엔 이상하게도 따뜻함이 섞여 있는 할머니.

AI는 매뉴얼로 무장했고, 할머니는 깍두기 만들다가 고무장갑을 그대로 낀채 도착했다.


지금부터, 이 둘이 몇가지 일상 문제를 두고 3라운드 대결을 펼친다.

어느 쪽이 더 문제를 '잘 푸는지'가 아니라, 누가 먼저 '현실을 살아내는지'를 가리는 승부다.


라운드 1

상황 : 냉장고 구석에서 발견된 계란. 유통기한이 3일 지났다.
먹자니 찝찝하고, 버리자니 아깝다. 가족의 눈치는 덤이다.

AI의 도전

유통기한 경과 식품은 식중독 가능성이 있으므로 섭취를 권장하지 않습니다.
안전한 확인을 위해 계란을 물에 띄워보거나 냄새 및 점도 확인 후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대체 식품으로 두부나 달걀 대체품을 추천드립니다.


깔끔하고 정석적인 해법이다.
하지만, 계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배는 고프다.


할머니의 도전

“이눔아, 그걸 왜 버려! 물에 넣어봐! 가라앉았지? 그럼 먹는 거여. 냄새 맡아봐. 안 나잖아! 아까운 걸. 왜들 그렇게 겁을 먹고 살아. 나 때는 말이여, 이런 거 다 먹고도 소화만 잘만 했어! 요즘은 다들 배가 불렀당께.”

할머니는 어느새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톡 깐다.
노른자는 똘망했고, AI는 아직도 대체식품을 열거 중이었다.

일단 할머니의 승리다.


라운드 2

상황 : 이웃집 닭이 또다시 담장을 넘어와 텃밭 상추를 뜯어먹고 있다.
전에도 몇 차례 말했지만, 이웃은 모른 척한다. 말 꺼내자니 껄끄럽고, 참자니 쌓인다.

AI의 도전

가축에 의한 농작물 피해는 민법 제218조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합니다.
피해 사진을 확보하시고, 조정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설명은 훌륭하다. 단, 대화가 더 멀어질 가능성도 함께 권장됐다.


할머니의 도전

“야, 감자 몇 알 삶아와. 그리고 바구니에 담아. 옆집 가서 승질 부리지 말고, ‘요즘 닭이 자주 우리 집엘 온다 아이가. 우리 텃밭 상추가 맛나긴 겁나 맛난갑네잉!’ 이러면 알아서 담장도 고치고, 감자도 잘 드실 거여. 싸우지 말고, 밥부터 줘.”


그날 오후부터, 닭은 밭을 망치지 않았고, 이웃 집 된장찌개에 감자가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번 판도 할머니의 승리다.


라운드 3

상황 : 거실에 커다란 말벌이 들어왔다. 천장 근처를 돌며 윙윙거리는데, 가족은 이미 소파 뒤로 피신했다. 누가 먼저 해결할 것인가?

AI의 도전

말벌 퇴치를 위해 흰 천을 흔들어 유인하거나, 비눗물 분무기를 사용하세요. 쏘였을 경우 응급처치를 실시하고, 119에 연락하십시오. 필요하다면 해충박멸 업체의 연락처를 검색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정확한 대응법이다. 단, 아무도 분무기 위치를 모르고, 누구도 천을 흔들 용기가 없다.


할머니의 도전

“이놈이 어디서 감히 남의 집에 들어와삤노! 신문지 어딨노, 신문지! 젓가락도 얼른 갖고 와라잉! 이넘의 것이 안 되겄다, 오늘 혼 좀 내줘야 쓰겄다 아이가!”

젓가락에 신문을 둘둘 말아 손에 쥔 할머니는 바람처럼 말벌을 향해 내달린다.

(※ AI는 젓가락이라는 단어에 혼란 발생)

“야앗– 엣차!”
(말벌, 소리도 못 내고 추락)

“벌레는 말이 많으면 안 돼. 손이 빨라야지.”

사건 해결까지 6초.
응급처치도, 비눗물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할머니의 완승이다.


AI는 정확했고, 조심스러웠으며, 친절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는 항상 “그다음 사람의 행동”을 필요로 했다.

할머니는 욕부터 나왔고, 거칠었으며,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녀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삶의 문제는 지식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입김과 손끝과 눈빛과 땀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실험은 끝났지만, 현실은 여전하다.
나는 여전히 젖은 셔츠를 들고 고민하고, AI는 여전히 다정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삶을 살아내는 감각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

할머니의 말이 거칠었던 이유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면 밥이 식고, 가스렌인지 위에 음식이 타고, 닭이 더 텃밭을 망쳤을테니까.

그리고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위기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 한 사람의 손짓이 여전히 세상을 움직인다.

이제 나는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해야 해?”가 아니라,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지?”라고.

그게 할머니가 알려준 방식이다. 지혜란, 결국 움직이는 쪽에 있다.


외전

며칠 뒤, 동네 할머니들 여섯 분이 복순 여사 집에 모였다.
콩국수를 삶고, 수박을 자르며,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꺼냈다.
AI는 그날도 조용히 주방 한편에 서서 관찰 중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복순 여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의 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예? 애가 급식 다 토하고 지금 보건실에 있다고요?”
복순 여사의 손이 벌컥 떨렸다.
“아니 이눔의 학교가! 전화를 왜 이제 해!” 욕이 튀어나올 듯 말 듯, 국자만 꼭 쥐고 있었다.
그때, AI가 앞으로 성큼 나섰다.
스피커를 통해 통화를 이어받더니, 전화를 건 교사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학생의 상태는 지금 어떤가요? 응급 처치는 이루어졌습니까?”
상대가 우물쭈물하자, AI의 음성이 단단해졌다.
0.3초간의 딜레이, 그리고 뚝! 끊어질 듯한 정적.
그 다음 순간이었다.
“이눔들이 지금 장난하냐? 애를 이 지경 되도록 뭘 한겨, 대체?”
그 자리의 모든 할머니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통쾌했다. 맥락에 꼭 맞고, 감정도 정확했다.
그건 모방이 아니라, ‘우리 편’의 분노였다.
복순 여사는 순간 말없이 AI를 쳐다보다가, 잠시 후 주걱을 내려놓고, 콩국수 그릇을 내밀며 말했다.
“됐어야. 너, 국물부터 말어. 이눔이 사람 구실을 하는구먼.”

지식은 많아졌지만, 우리는 점점 더 머뭇거리게 되었다.
정확한 정보를 알고도 움직이지 못하고, 올바른 해결책을 들었지만 당장 손이 가지 않는다.

어쩌면 삶이란, 언제나 틀려도 일단 움직이는 쪽, 덜 아는 대신 먼저 살아내는 쪽이 이겨왔는지도 모른다.

AI는 답을 알고 있다. 할머니는 삶을 살아내왔다.

지식은 문제의 틀 안에 있고, 지혜는 틀 밖으로 빠져나간다.

삶은 시험지가 아니고, 그래서 문제를 틀리게 푸는 사람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AI는 완벽하게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답을 줄 뿐, 해결 해주진 않는다.

할머니는 틀린 말도 많고, 논리도 없고, 인터넷도 모르지만, 당장 씻고, 먹고, 잠은 자게 해준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AI는 올바르지만 느리고, 할머니는 허술하지만 빠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중, 지금 이 시대에 더 귀한 건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망설이지 않고 먼저 손을 뻗는 사람의 감각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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