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부추긴 사소한 멈춤
퇴근 후, 집으로 올라가던 중이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5초 멈췄다.
삐걱, 기계음.
순간 나는 호흡을 멈췄고, 비상 버튼을 누를까 말까 망설였다.
5초가 이렇게 긴 시간인지 몰랐다.
“여기서 갇히면 어떻게 될까?" 뉴스에서 봤던 엘레베이터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내 핸드폰, 셀룰러 신호 없잖아?”
순간 나는 가족들과 구조대에게 감동적인 작별사를 준비하는 내 모습을 목격했다.
눈앞에 가족들이 떠올랐다.
“여보, 고마웠어. 냉동실에 숨겨둔 비상간식은 이제 마음껏 먹어도 돼.”
“아들아, 아빠가 널 너무 사랑했단다. 다만 너 숙제 안 한 거, 아빠는 이미 다 알고 있었어.”
“그리고 구조대원님… 이름도 모르지만, 당신은 제 인생에 가장 늦게 등장한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
나는 약간 울먹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 등을 벽에 기대고 슬로우모션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현실은 7초 만에 다시 ‘삑’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멀쩡히 움직였고, 내가 한 일이라곤 혼자 드라마 한 편 찍은 것뿐이었다.
그날 밤, 엘리베이터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곳은 이상할 만큼 감정 없는 공간이었다.
목적지만 누르고, 아무 말 없이 서 있으면, 알아서 올라가고 내려가는 곳.
그런데 이 공간에 '목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움직이지 않고, 나가지도 못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엘리베이터에서 24시간 살아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변할까?
그 질문이 시작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하등 쓸모없는 상상 같았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하나의 실험실을 조용히 가동하고 있었다.
실험명 : 밀폐된 기능 공간에서의 인간 감정 변화 관찰
장소 : 30층 아파트의 중앙 엘리베이터 (면적 약 2m², 거울 한 면, 냄새의 흔적 다수 존재)
준비물 : 물 2L, 단백질바 5개, 쿠션 1개, 노트북 1대, 휴대용 배터리 2개, 비상용 종이봉투 (의외로 중요함)
피험자: 나 (50대 초반, 안정적이나 불안정한 인간)
처음 30분은 안락했다. 공간의 침묵이 내 뇌를 안정시킨다.
엘리베이터 조명은 밝고 일정하다. 적당히 따뜻한 LED 불빛 아래, 쿠션을 깔고 앉으니 마치 호텔 캡슐룸처럼 느껴진다.
컴퓨터에 다운 받아 두었던 영화를 켜고, 단백질바를 우아하게 뜯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곳은 현대문명이 낳은 최고의 은신처 아닐까?”
하지만 40분쯤 지나자 나는 엘리베이터 안의 먼지 패턴을 관찰하고 있었다.
기계 틈에 낀 머리카락, 바닥의 긁힘, 손때가 탄 버튼의 순서.
내 시선은 사소함 속으로 잠수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본래 ‘이동’을 위한 공간이다.
지금은 정지해 있다. 문은 닫혔고, 위도 아래도 없다.
이 공간은 기능을 상실했고, 나도 목적을 잃었다.
층 표시등이 꺼져 있는 것이 이토록 불안한 일인 줄 몰랐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버튼을 몇 번 눌렀다가 취소했다. 누르자마자 반응이 없는 그 침묵이 불쾌했다.
나는 정지된 기계에 갇힌 것이 아니라, ‘목적 없음’이라는 개념에 갇혀 있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 공간은 그 관계의 매개다.
카페는 대화를, 도서관은 침묵을, 버스는 목적을 공유한다.
엘리베이터는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나의 얼굴과 자꾸 마주치게 됐다.
정면 거울은 나를 반사하는 동시에 나를 질문했다.
“넌 지금 왜 거기 있니?”
“표정이 왜 그래?”
“눈썹은 원래 그렇게 비대칭이었니?”
거울을 피해 앉으려 했으나 실패. 그제야 나는 이 엘리베이터가 실은 네모난 감정 부스터라는 걸 알게 됐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식은땀이 났다.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이거 혹시 공황장애인가? 아냐, 그냥 에어컨이 없는 탓이야…”
나 혼자 숨을 크게 쉬기 시작했다. 4초 들이마시고, 7초 참았다가, 8초 내쉬기.
(유튜브에서 본 명상호흡법이었다. 효과는 없다.)
순간 “지금 문 열리면 이 상태로 누굴 마주쳐야 하나?”라는 공포가 몰려왔다.
거울에 비친 나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한 채, 단백질바 봉지를 쥐고 있었다.
그 표정은 진지했지만, 절망적으로 진지했다.
나는 피곤한 철학자가 아닌, 무표정한 짐승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사실, 눈을 마주칠 누구도 없었다.
이쯤 되니, 버튼에게 말을 걸까 고민했다.
“야, 5층아. 넌 어쩌다 거기 눌려 있니?”
핸드폰은 두 번 충전되었고, 물은 절반 남았다.
시간은 끈적하게 흘렀고, 내 뇌는 서서히 비이성의 습지로 들어가고 있었다.
먼저, 소리에 민감해졌다.
엘리베이터 외벽 너머로 들리는 발소리, 문이 열리는 ‘띵’ 소리, 아주 멀리서 들리는 TV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나와 전혀 관계없다는 사실이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었고, 나는 정지 상태의 탭이었다.
그리고 냄새.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던 금속 냄새가, 12시간 후엔 조금 늦은 우울증처럼 나를 감쌌다.
그건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정확히 말해 “나는 왜 존재하는가?” 같은 냄새였다.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간 생각.
“혹시... 내가 지금 투명 인간이 된 건 아닐까?”
그래서 몇 번 손을 흔들어봤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응, 아직 살아있네"를 확인했다.
공간은 더 이상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었다.
이건 감정이 눌어붙은 밀실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나를 조용히, 하지만 집요하게 가열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 아마도.
지금이 새벽일까, 저녁일까, 점심이었는데 내가 깜빡했을까. 시계를 보면 ‘03:14’라는 숫자가 박혀 있다.
하지만 내 뇌는 그 숫자에 아무 감정을 갖지 않는다.
그건 그냥… 벽의 먼지 무늬 같은 정보일 뿐이다.
나는 같은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눌렀다 떼고, 다시 누르고, 또 떼고.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도 가져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층 표시등은 변하지 않는다. 그 무반응이, 이제는 오히려 익숙하다.
나는 점점, ‘기계가 되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문득 벽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인가? 아니, 나일 리 없다. 저건 너무 고요하다. 나는 그렇게까지 고요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환각이 시작됐다.
나는 분명 혼자였지만, 누군가 곁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아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빠, 집에 가야지.”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천천히 버튼을 가리켰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빠, 아직도 10층이야.”
그런데 그 장면은 현실보다 훨씬 생생했다. 너무 선명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건 상상에 감동해서가 아니라, 이제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졌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였다.
나는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자, 이제 앉자. 너무 오래 서 있었잖아.”
그리고 정말 앉았다.
내 안에 두 개의 내가 생겼다. 하나는 말하고, 하나는 듣는다.
그 두 존재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 같기도, 낯설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조용한 와중에, 어디선가 ‘딩’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환청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벽을 쳤다. 하지만, 여전히 조용했다. 문은 닫힌 채였고, 시간도 닫혀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그대로인데, 나는 분명 변하고 있었다.
아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인간으로서의 뼈대가 희미해지는 중이었다.
나는 지금 몇 시간째인가.
몸은 붙박이장처럼 굳었고, 생각은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터진 채 질주하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안이 더 시끄러웠다.
이제는 환각도 정돈되지 않았다.
아들이 다시 나타났다. 엘리베이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본다.
“아빠, 이제 그만 가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눈을 깜빡이자, 아들은 사라졌다.
곧이어 아내가 들어왔다. 그녀는 평소처럼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이제 됐어? 뭐 하나라도 얻은 거 있어?”
나는 그 말에 순간 서운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곧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그래, 잔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아내는 등을 돌리고 문 쪽을 향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녀는 열린 듯이 걸어 나갔다.
나는 급히 뒤를 쫓으려 했지만, 몸이 벽에 들러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시 아들이 나타났다.
“아빠, 나 먼저 갈게.” 그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입을 열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울컥하는 무언가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가지 마, 아빠는 아직 준비 안 됐어."
그때 누군가 엘리베이터 밖에서 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이 안에 누구 있어요?”
“괜찮으세요?”
목소리는 분명 여러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전부 같은 톤으로 들렸다.
낯선 얼굴들이 나를 향해 말하는데, 마치 한 사람의 반복된 꿈속 대사처럼 뭉개져 있었다.
모두가 나를 아는 것처럼 말했지만, 아무도 나를 꺼내주지 않았다.
나는 거울 앞에서 나를 밀어붙였다.
“이건 실험이야. 네가 원한 거잖아. 넌 잘 버티고 있어. 1시간만 더.”
하지만 거울 속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내 복제물이 아니라, 감정을 잃은 단순한 ‘잔상처럼 보였다.
호흡이 가빠졌다. 심장이 턱밑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손이 차고, 이마는 젖어 있었다.
모든 버튼이 갑자기 같은 색으로 보였고, 나는 급하게 벽을 짚었다.
무너지는 순간, 딱 그 순간.
‘띵...’
소리도, 기계도, 외부도 다 잊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천천히, 부드럽게 열렸다.
그토록 원했던 구출이 그토록 아무 감정도 없이 찾아왔다.
눈부신 복도, 잔잔한 소음, 누군가의 발소리, 익숙한 세상의 냄새.
나는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한참을 서 있었다.
세상은 멀쩡했다.
하지만 나는 잠깐, 사람이 아닌 채로 그 세상 앞에 서 있었다.
실험은 끝났다. 나는 가상 실험을 하기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이불은 부드럽고, 매트리스는 평평하며, 천장은 아주 얌전하다.
몸은 분명히 편한데, 머릿속은 아직 엘리베이터 안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눈을 감으면 거울 속 내 표정이 떠오르고, 귀를 기울이면 없는 ‘띵’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밖은 평온하고, 모두는 평범하게 일상으로 돌아가 있지만, 나는 조금 어긋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말하자면, 현실로 복귀한 인간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아직 조금은 ‘보관 중인 물건’의 기분이 남아 있는 상태.
눈을 감으면, 엘리베이터 안의 불빛이 아직 눈꺼풀 안에서 희미하게 흔들린다.
귀에는 없는 ‘띵’ 소리가 울리는 것 같고, 거울 속 그 표정이 아직도 어딘가에 매달려 있다.
세상은 변한 게 없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달라졌다.
가상의 엘리베이터에서 속 24시간은, 단지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보낸 시간’이 아니었다.
그건 기능도 관계도 사라진 상태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경험한 실험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단백질바가 밥보다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았고, 가족의 얼굴이 환각으로 등장할 정도로 본질적인 존재임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이란 건 배경이 아니라, 정체성을 구성하는 정서적 환경이라는 걸 절절하게 배웠다.
그건 ‘관계 없음’, ‘움직임 없음’, ‘기능 없음’ 속에서 나 자신이 어떤 식으로 무너지고 재구성되는지를 관찰한 실험이었다.
우리는 공간을 ‘장소’로 인식하지만, 사실 그것은 감정의 프레임이다.
움직이지 않는 공간은 인간도 멈추게 만든다. 목적 없는 장소는 인간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감정은 고요하게, 하지만 아주 뚜렷하게 우리의 정체성을 흔든다.
덧붙임 : 아무튼 실험 결과는 이렇다.
1. 엘리베이터를 24시간 타고 나면, “1층” 버튼이 인생의 목표처럼 느껴진다.
2. 거울을 오래 보면 철학자가 되거나, 자기혐오자가 되거나, 둘 다 된다.
3.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다.
4. 거울 속 자신을 너무 오래 보면, 그 사람과 싸우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진다.
다음에 엘리베이터를 탈 땐, 그냥 목적지를 누르지 말고 내가 왜 그 층을 가는지도 잠깐 생각해보자.
모든 버튼은 위아래로 연결돼 있지만, 삶의 방향은 늘 내 안에서만 결정된다.
그리고 너무 복잡하다면 일단 가장 가까운 층부터 내려보자.
인생도 결국, ‘지금 내가 몇 층에 있는지 아는 것’에서 시작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