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월요일을 고소합니다.

월요일이 다가온다.

by 한자루




밥은 깔끔하게 다 익었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다.
딱히 슬픈 것도 아닌데 자꾸 입술이 무거워졌다.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는 ‘찰-칵’이 아니라 “삐… 삑… 내일이 온다…” 하는 공포음 같았다.

SNS는 #월요병 #일탈실패 #출근거부 각종 해시태그로 불타고, 핸드폰 알람은 울리지도 않았는데도 뇌 한편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월요일이 싫다. 월요일을 고소하고 싶다는 유아적인 욕구가 핵폭탄 터지듯 가슴 전체에서 터진다.

그렇다. 나는 월요일을 고소해서 재판정에 세우고 싶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새로운 실험실이 펼쳐진다.


실험명 : 인간 vs. 월요일
형식 : 모의 법정 시뮬레이션
실험 장소 : 정신 안정성 평가실 3번 룸

실험 개시 전 기록
실험체는 주말 이후 정신적 불안정 상태를 보였음.
주요 증상 : 피로, 자아 분열 직전, 동기 저하, ‘살고 싶지 않음’ 중얼거림.
이에 따라 ‘월요일 적응 실패 원인 분석’을 위한 내면 모의 법정이 자동 개정됨.

알 수 없는 기계음이 실험체 0001, 즉 나를 호출했다.
눈을 떠보니, 난 법정 같은 공간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의자엔 심전도 패드가 부착돼 있었고, 머리엔 스트레스 감지기가 달려 있었다.

정신은 깨어 있지만 현실감은 사라진 공간. 그 한복판에서, 재판이 시작된다.


재판장 입장

법정의 중앙, 판사가 입장한다. ‘이성’이라 불리는 고위 인지 판단 생명체.
다크서클은 한 쌍의 구글링 된 진실처럼 매달려 있었고, 슈트는 정장이 아니라 자존심으로 다려져 있었다.

“본 법정은 실험체 0001의 정신 잔존율 저하 사유를 심문하기 위해 개정되었습니다.
사건명! 인간 vs. 월요일, 검사는 감정국장 김 피곤 검사, 변호는 시간 시스템 법률회사 나무죄 변호사가 맡았습니다.
피고는 시간 구조 내 월요일 섹션 대표 이월요.”

나는 피고가 아니었다. 나는 이 재판의 원고, 혹은 피해자. 그냥 지친 인간 중 한 명이다.


검사 진술

검사 김피곤은 등장하자마자 책상을 주먹으로 쾅! 쳤다.
그는 다크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서류 뭉치를 내던졌다.

“판사님, 이건 고문입니다. 일요일 23시 42분, 원고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라면과 넷플릭스를 동시에 섭취했습니다. 토요일에는 ‘청소는 내일의 나에게’라는 메모를 작성했고, 결국 일요일 밤까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월요일 오전 7시, 실험체는 심박수 급등, 눈동자 미초점 상태로 기상하였고, 정신은 출근 중단을 외쳤으며, 육체는 자동으로 샤워기로 이동했습니다. 이건 자발적 회복 실패가 아닌, 월요일이라는 구조의 범죄적 반복성 때문입니다."

검사 김피곤은 재차 책상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월요일은 유죄 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계획범죄입니다! 반복적이고 의도적인 스케줄 폭력, 정신적 자유에 대한 고의적 침해, 주말 회복권 박탈 혐의가 인정됩니다.”

그는 판사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지막 진술을 이어갔다.

“이 구조는 개선의 여지없이 피로를 누적시키며, 실험체의 자율성을 마비시킵니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습니다.

이에 본 검사는 월요일에게 다음과 같은 형을 구형합니다. 기상 시간의 유예, 출근의 선택권, 일요일 저녁의 보호조치 의무화를 권고합니다."

법정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고, 커피 잔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변호인 반박

나무죄 변호사는 반박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고개를 한 번 젖히고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판사님, ‘월요일은 고문’이라는 주장은 감정에 기반한 과장에 불과합니다. 월요일은 다른 요일과 동일한 권한과 기능을 가진 일주일의 일부입니다. 구조적으로 월요일은 그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검사 김피곤을 응시했다.

“검사 측은 주말을 회복의 시간으로 규정하지만, 실상은 회복이 아닌 자멸적 소비의 연속이었습니다. 넷플릭스 과다 시청, 식습관 파괴, 수면 주기 왜곡! 이 모든 건 사용자 스스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시스템은 제안했을 뿐,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무죄는 서류를 한 장 들어 올렸다.

“이 기록에 따르면, 피해자는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였고, 그 스트레스를 다시 시스템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이는 책임 전가입니다. 이 재판의 본질은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지력의 부재, 계획력의 결핍, 그리고 자기 관리 실패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덧붙였다.

“‘월요일이 괴롭다’는 건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괴로움은 ‘요일’이 아니라, 그 요일을 준비하지 않은 인간의 책임입니다.”


검사 측 증인 심문

피고 ‘이월요’는 정장을 입지 않았다. 늘 똑같은 셔츠, 어딘가 무표정한 얼굴.
그는 피곤한 표정의 인간들을 지나 조용히 증인석에 앉았다.

검사 김피곤이 다가갔다.

“피고, 당신은 매주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죠. 잠을 줄이고, 마음을 조이고, 심지어 커피와 알람을 전선에 올려놓게 만듭니다. 당신은 그걸 반복적으로 해왔습니다. 그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월요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전 주어진 순서대로 오는 것뿐입니다. 누가 나를 고소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단지 내가 오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나가면 안도할 뿐이죠. 저는 그냥... 제 역할을 충실히 할 뿐입니다.”

검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왜 당신이 오면 그렇게 다들 무너집니까?”

이월요는 고개를 기울였다.
“무너진 건 이미 주말 동안이었습니다. 나는 그걸 드러내는 역할을 할 뿐이죠.”

변호사 나무죄가 끼어들었다.

“판사님, 피고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가 죄라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조차 기소되어야 합니다.
이월요는 누구의 편도 아니며, 감정도 없습니다. 단지 지정된 위치에 등장하는 존재입니다.”


변호사 측 증인 심문

증인 1 : 커피

검은 슈트, 쓰디쓴 눈빛.

“저는 매주 월요일 오전, 인간의 기력을 억지로 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달, 제 효과가 줄었습니다. 심장이 ‘이젠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마지막 해답이라 믿지만, 솔직히 말해서, 전 그냥 향 좋은 의지의 부스러기일 뿐입니다. 참고로 저는 진통제가 아닙니다.”


증인 2: 스마트 알람

회색 슈트, 금속 프레임 안경,
정확한 시간 간격으로 눈을 깜빡이던 그는 기계적으로 증언을 시작했다.
그러나 목소리에는 오래된 상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저는 정확히 오전 6시 30분, 6시 35분, 6시 42분. 이렇게 세 번 울렸습니다.

첫 번째 알람은 무시당했습니다.
두 번째는 손바닥으로 가격 당했고, 세 번째는 ‘꺼져’라는 욕설과 함께 꺼졌습니다.

원고는 저를 일상의 이정표가 아니라, 공포의 전조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박자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원고는 저를 ‘의지력의 대리인’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람은 시작이 아닙니다. 결심이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울었습니다.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간절하게.

하지만 저를 대하는 태도는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했습니다.

가끔은 설정된 스누즈 간격조차 ‘왜 이렇게 짧아?’라는 분노를 유발합니다. 그 시간은 사용자가 정했는데도 말이죠. 저는 지금 원고에게 묻고 싶습니다. 기상을 실패한 건 정말 저 때문입니까?

아니면, 당신이 깨어나기를 포기했기 때문입니까? 한때 저는 기상 도우미였습니다. 지금은… 관계 파탄의 알림이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증인 3: 현관 앞 전신 거울

증언대 앞에 선 것은 차가운 은색 프레임이 둘러진 얇은 전신 거울.
빛을 반사하며 조용히 진술대에 자리했다.
목소리는 낮고 명확했으며, 감정은 없었다.
그가 말한 첫 문장은 마치 냉수처럼 듣는 이의 정수리를 때렸다.

“저는 매주 월요일 오전, 인간의 얼굴을 제일 먼저 봅니다. 그 얼굴은 씻기 전입니다.

웃기 전이고, 꾸미기 전이고, 버텨보겠다는 다짐도 하기 전입니다.

순수한 피로. 자는 얼굴의 잔상. 주말이 실패했다는 자각.

그 모든 게 저 안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는 한순간 말을 멈추고, 실험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 침묵은 몇 초였지만, 모두의 체감 시간은 길었다.

거울은 다시 말했다.

“저는 그 얼굴을 매주 봅니다.

‘아직도 이런 얼굴인가.’
‘이번 주도 이 얼굴로 살아야 하나.’ 그런 눈빛. 그런 한숨.

저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반사합니다.

하지만 반사된 그 표정은, 그 어떤 말보다 깊은 증언입니다.”


판결

재판장은 고개를 잠시 들고 피고와 원고를 천천히 둘러본 뒤, 다시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피곤했지만, 그 단어 하나하나에는 무게가 있었다.

“이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 ‘월요일’은 본래의 구조적 역할을 수행했을 뿐, 인격화된 감정이나 고의적 가해 의도를 가진 존재는 아니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그러나 본 사건은 단순히 요일 하나를 두고 유죄·무죄를 논할 사안이 아니다.
이 재판은 시간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소진되고 있는가에 대한 구조적 증언이다.

원고 ‘인간’에 대해 이 법정은 다음을 명시한다.

이 인간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다. 의지 부족 때문도 아니다.
지속 가능한 회복 없이 반복되는 기대, ‘이번 주는 다르게 해 보자’는 자기 최면, 그리고 그 실패가 자책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피해자다.

우리는 이 반복의 이름을 일상 또는 삶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반복은 고요한 침식이다. 기력, 창의력, 자아감을 천천히 갉아먹는다.

이 사건은 형벌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구조의 결함이고, 존재 유지의 임계점에 대한 경고다.


본 법정은 다음을 권고한다.

첫째. 인간은 자신에게 ‘회복할 권리’를 의무가 아닌 생존조건으로 설정해야 한다.

둘째. ‘주말’을 보상으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기능 회복을 위한 환경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더 이상 ‘다음 주엔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미래에 모든 부담을 전가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피로를 정확히 인지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법정은 한 줄의 진실을 기록으로 남긴다.

“당신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당신은 지쳤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판사의 마지막 문장이 공중에 머물렀다.
“당신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당신은 지쳤다. 그리고 이 사회는, 그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그 순간, 법정은 적막에 잠겼다. 누구도 손뼉을 치지 않았고, 누구도 박수를 기대하지 않았다.

방청석의 감정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피로’는 눈을 감고, ‘자책감’은 팔짱을 풀었으며, ‘알람’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검사 피곤은 조용히 서류를 정리했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다음 주도… 같은 사건이겠지.”

변호인 나무죄는 말없이 자리를 떴다.
그에겐 이 모든 게 그저 데이터일 뿐이었다. 공감도, 승리도, 그의 영역은 아니었다.

증인들은 돌아가기 시작했다. 커피는 텅 빈 잔을 내려놓고, 욕실 거울은 다시 벽으로 돌아갔다.
스마트 알람은 스스로 화면을 꺼버렸다.


피고 이월요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안도하지도 않았다.

조용히 가방을 들고일어났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의 눈에는 방청석의 감정들이 담담하게 앉아 있었고, 검사와 변호인은 각각의 방식으로 자리를 떴다. 누가 자신을 혐오했는지도, 누가 변호했는지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월요는 한 마디만 남겼다. 단조롭고 무표정한 목소리였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는 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 문 너머에는 다음 피고인 최월요가 서 있었다.
여전히 차가운 공기, 똑같은 회색 하늘, 그리고 시작되지 않은 피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피고는 사라졌지만, 누구도 그의 무죄를 축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무죄일지언정 모두가 두려워하는 ‘현실의 알리바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건 인간 한 명.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나 역시 누가 이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이 재판은 ‘살아낸다’는 감각만 남기고 끝났다.

법원 문을 열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간다.
밖은 월요일 아침 7시 15분.

그리고 세상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다시 일상으로 집어삼켰다.



부록

인간은 마치 뭔가 대단한 걸 해낸 것처럼 한 주를 7일로 나눴고, 그중 하루를 조용히 ‘버티기의 날’로 지정했다.
이름하여 월요일.
들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 날은 마치 주말 동안 쌓인 모든 죄와 미룬 일들에 대해 대가를 묻는 심판자처럼 등장한다.
무기력, 자기혐오, 현실회피를 한꺼번에 배달해 주는 무료 정기배송의 아이콘.
사실 이건 루틴도 아니고 성장도 아니다. 그저 시간이 정기결제한 저주에 가깝다.
우리는 늘 성과를 요구받는다. 쉬면 불안하고, 쉬지 않으면 망가진다.
그 결과 금요일 밤엔 폭주, 토요일은 숙취, 일요일 저녁은 슬픔과 공허, 그리고 ‘대체 뭐 했지’ 같은 모호한 후회가 덮쳐온다.
그리고 그 모든 잔해 위에서 월요일은 같은 말로 속삭인다.
“I will be back!!”

그런데 중요한 건 월요일은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저 출근 순서 1번일 뿐이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는 아주 성실한 요일.
진짜 괴물은 따로 있다.
바로 이 피로한 구조를 “원래 다 그래”라고 말하게 만든 시스템.
불안과 탈진을 일상으로 오인하게 만든 현대사회의 매트릭스급 착각 제조기.
진짜 범인은 우리가 만든 이 지독하게 비효율적인 주간 구조표다.
그러니 그 구조에 질식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월요일과의 싸움이 아니라,
이 구조 자체를 다시 묻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 자, 이제 벽에 걸린 시계를 한번 보시라. 초침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월요일은 천천히, 아주 정직하게 당신 쪽으로 기어 오고 있다.
납량특급? 아니지. 이건 정규편성된 생활 공포물이다. 시즌은 무한, 휴방은 없음.


















keyword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