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길고양이 없는 도시

도시가 조용해지고 우리가 잃은건?

by 한자루




어둑해지는 저녁 산책길마다 마주치던 고양이가 있었다.
골목 어귀, 쓰레기봉투 옆, 길거리 카페 구석.
늘 거기 그렇게 있었다.

보면 슬쩍 피했고, 지나치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서로 무심한 척 하면서 알고 지냈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사라졌다. 며칠, 아니 보름 넘게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한 감정이 찾아왔다.
익숙했던 도시가 낯설어졌고,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이 귀에 먼저 들렸다.

그 녀석 어디로 갔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머릿속은 또 하나의 실험실이 만들어 진다.
머릿속 가상 실험실.
자, 일단 도시를 축소해 투명한 플라스틱 돔 안에 넣고, 고양이만 살짝 지워본다.



첫째날 : 겉보기엔 완벽한 도시

고양이가 사라졌지만, 처음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쓰레기봉투는 멀쩡하고, 골목은 조용하다.
"요즘 동네 깔끔하네." 사람들은 그 정도로 반응한다.

밤마다 들리던 괴상한 울음소리도 없고, 쓰레기를 뒤지던 소란도 없다.
오히려 도시가 정리된 듯 보인다.

하지만 이상하다.

지나가던 바람 소리가 유난히 낯설고, 적막한 골목은 괜히 소름 돋는다.

너무 정리된 도시에는 사람이 설 자리가 없다.
무언가 사라졌는데, 아직 뭐라고 이름을 붙이지 못한 애매함이 피어난다.


7일째 : 도시, 비명을 참다

고양이가 사라지자, 쥐가 늘어난다. 밤이면 봉투가 터지고, 쓰레기가 흩어진다.
민원이 올라가고, 방역이 시작된다. 청소 인력이 늘고, 소독약이 뿌려지고 포스터도 붙는다.

"쥐는 도시의 적! 쓰레기는 밤 10시 이후 배출 금지!"
"도시 환경의 승리를 위해 - 고양이보다 시스템!"


거리 정리는 더 철저해진다.

눈에 보이는 건 점점 깨끗해지는데,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점점 불편해진다.

정리는 되었지만, 정적이 깊다. 정적은 곧 피로가 된다.
지나가던 사람이 말한다.
"요즘 동네 왜 이렇게 긴장되지?"

하지만 누구도 처음 조각이 ‘고양이의 부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10일째 : 너무 조용한 재난

출근길은 평소처럼 정돈돼 있다.
차는 줄 맞춰 흐르고, 거리는 왠지 깨끗하게 단장된 것 같다.

사람들은 감탄한다.
“요즘 우리 동네 왠지 조용하고 깨끗한 것 같지 않아?”

밤이 되면 거리는 더 조용해진다.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라,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는 분위기다.

길거리 카페 벤치 한쪽, 언제나 고양이가 차지하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다.
예전엔 다들 그 자리를 살짝 피해 앉았다.
지금은 고양이가 없는데 아무도 그곳에 앉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자리가 아직 누군가의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
“저기 매일 앉아있던 그 고양이는 어디 갔지?”
“언제부턴가 안 보이네?”
아무도 묻지 않고, 그래서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고양이는 사라졌고, 그 이후의 정적은 이상할 정도로 질서정연하다.


14일째 관찰자 노트 : 창틀 위의 고양이들

길고양이가 사라진 후, 도시의 유일한 고양이는 창틀 위에 앉아 있는 집고양이들뿐이다.

물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생각을 들을 수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밖은 원래 위험하지."
"길에서 우는 건 멋이 아니야. 그건 생존이지."
"조용하면 좋은 거 아냐?"

창밖은 조용하다.
하지만 그 평화는 생명이 만든 게 아니라, 제거된 흔적에서 온 고요다.

고양이조차 창밖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된다.


30일째 : 도시의 표정은 어디로 갔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동네 왜 이렇게 심심하지?”
“뭔가 사라진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어.”

아무도 고양이를 말하진 않는다.
그냥,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라고만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빠진 조각은 고양이였다.

쓰레기봉투 옆에서 졸던 그림자. 골목 한가운데 앉아 있던 실루엣.
노란 눈동자, 울음, 싸움, 점프, 그리고 가끔 마주치던 시선.

그건 때론 불편했고, 귀찮았고, 짜증도 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이 도시의 리듬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사라진 건 도시의 표정이었다.



없어지면 좋을 줄 알았던 그것이 실은 우리 삶의 일부였다는 걸, 우리는 늘 사라진 후에야 안다.

고양이는 도시를 더럽힌 것이 아니라,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든 흔적이었다.


길고양이가 없는 도시는 깔끔하다.
정리되고, 조용하고, 보기 좋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생명이 떠난 자리에 생긴 공백이고, 그 정돈됨은 삶의 흔적이 지워진 흔적이다.

우리가 고양이를 불편해했던 건 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더럽지 않다. 도시는 원래 깔끔하지 않다.
도시는 생명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길고양이는 도시의 ‘잡음’이 아니라, 그 도시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였다.

우리는 고양이가 사라지면 도시가 나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고양이 없는 도시에서 사라진 건 소음이 아니라, 관계였다.
우리가 느낀 낯선 정적은 ‘정리’의 결과가 아니라 연결의 단절에서 온 것이었다.

살아 있는 도시란, 무언가를 견디고, 받아들이고, 함께 뒤엉키는 공간이다.

정말 무서운 건 고양이의 발자국이 아니라, 그 발자국조차 허용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도시의 감각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건 조용한 거리도, 깨끗한 골목도 아니다.

그건 어쩌면 도시 안의 생명과 공존할 수 있는 감각일 것이다.


부록: 도시생활 생존 Q&A

Q. 고양이 한 마리 없어졌다고 도시가 바뀐다고요?
A. 시스템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이제는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것’과도 관계 맺을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예전엔 적어도 길고양이와 시선 정도는 주고받았죠.
그 최소한의 관계가 우리를 이 도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주곤 했죠.

Q. 결국 고양이가 필요하단 얘기인가요?
A. 아니요. 하지만 고양이 없이 살아보면 알게 됩니다.
그게 있었을 때, 우리가 조금 더 인간이었다는 걸.

Q. 요즘 도시에 왜 이렇게 생기가 없죠?
A. 생기는 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걸 표현할 상대가 사라졌을 뿐입니다.
고양이는 도시의 감정 실험 장치였습니다.
그 장치가 사라진 뒤, 우리는 반응하지 않게 됐습니다.

Q. 그냥 고양이잖아요. 그게 그렇게 중요했나요?
A. 그렇지 않지만, 그래서 더 결정적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사라졌을 때야말로, 도시 전체가 진짜 아무것도 아니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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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