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몇 번까지 반복할 가치가 있는가?
할머니의 장례식장을 향해 가는 항공기에서 제공되는 영화를 한편 보았다.
'About Time'이라는 제목의 시간여행을 하는 영화였다.
늘 그렇지만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의 영화는 소재만으로도 흥미를 자극하기 마련이다.
삶에 후회되는 순간을 되돌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한 것 같다.
기회가 무한하다면, 선택은 여전히 진심일 수 있을까?
실패 없는 삶은, 과연 온전한 삶일까?라는 질문에서 나는 가만히 상상력을 동원해보았다.
문득 이런 상상을 했다.
삶에도 '재시작' 버튼이 있다면,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몇 번까지 반복할 수 있을까?
한두 번?
짝사랑했던 이에게 하지 못했던 고백도 해보고, 아들과의 공놀이를 받아줬다면, 꽤 괜찮은 버전의 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그걸 다 고치고 나면, 나는 정말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후회 없는 인생이란, 그냥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판타지 아닐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실험을 시작했다.
장비는 단순하다. 기억, 상상력, 그리고 약간의 자괴감.
목표는 명확하다.
과거의 순간들을 다시 살아보고, “진짜 삶”이란 무엇인지 실험해보는 것.
실험명: 실수 만회 기반 시간 되감기 시뮬레이션
피실험자 : 나 (50대, 중년, 슬리퍼는 여전히 뒤축 밟고 신음)
실험 방법: 주요 후회 장면 재진입 후 행동 수정 시도 그리고 감정 변화 측정
기준: 후회 감소율, 감정 정화도, 삶의 태도 변화 여부
시간: 1992년 5월의 어느 화요일, 오후 4시 15분
장소: 문과대 도서관 앞, 서쪽 계단 아래
햇빛은 느릿하게 흘렀고, 벚나무 그림자가 돌계단 위에 조각처럼 박혀 있었다.
바람은 살짝 따뜻했고, 누군가는 그걸 “초여름”이라 불렀겠지만 내 기억 속에선 항상 ‘그녀가 내려오던 계절’이었다.
그녀는 늘 같은 시간에 도서관을 나왔다.
국문과, 단발머리, 손엔 시집 한 권.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마음으로, 다른 결과를 위해 서 있었다.
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그리고 이 순간만큼은 세 번의 선택이 허락되어 있다.
첫번째 도전 (무난하게)
계단 위로 그녀가 걸어 내려온다.
하얀 블라우스, 회색 치마, 손목에 낡은 시계. 햇살이 어깨에 걸려 반짝였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읽을만한 책 한 권만 추천해줄 수 있나요?”
그녀는 조금 놀란 듯 나를 바라보더니, 미소도 없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죄송해요, 약속 있어서요.”
딱딱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딱 그만큼의 거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걸어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시계를 다시 눌렀다.
한순간, 세상이 부드럽게 되감기 시작했다.
두번째 시도 (감성 밀어붙이기)
바람결이 다시 피부 위로 돌아왔다. 잎사귀 그림자가 다시 돌계단에 내려앉는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 내 심장은 여전히 똑같이 뛴다.
이번엔 그녀가 계단 끝에 다다를 즈음에 말을 건다.
이번엔, 솔직하고 정직하게.
“사실… 제가 여기 자주 오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신 때문이에요.”
그녀는 멈춘다.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입꼬리가 살짝 흔들린다.
잠시의 정적.
“…고마워요. 근데 그냥 친구로 지내요.”
그 말은 분명 부드러웠고, 더 상처가 되었다.
나는 땅바닥에 비친 둘의 그림자를 본다. 나 혼자 너무 앞으로 나가 있었다.
세번째 시도 (짐심의 도박)
세 번째 시간. 세 번째 햇살. 세 번째 숨.
이번엔 그녀보다 한 발 앞서 계단에 서 있었다. 그녀가 가까워질 때, 나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 순간을, 지금 세 번째 겪고 있어요.”
그녀는 멈춘다.
나는 계속 말했다.
내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고, 더는 누군가를 얻기 위한 말도 아니었다.
“당신 앞에 서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어요. 그 말을 하지 못했던 과거를 바꾸려고 지금 여기에, 다시 와 있어요.”
그녀는 내 말에 웃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단지 조용히 말했다.
“그럼요, 진심이네요. 하지만… 왜 그 세 번 모두, 당신 얘기만 했죠?”
그 말은 문장이 아니라 칼날 같았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시집을 껴안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이번에도,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과거의 자신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대신, 같은 상처를 다시 꿰매게 하는 일이다.
모든 선택은 그 순간의 맥락 안에 있고, 모든 감정은 그 시대의 공기 속에서만 유효하다.
나는 과거를 세 번 고쳐봤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았고, 진짜 변한 건 나였다.
후회 해소율: 20%
이해력 증가율: 90%
시간은 반복될 수 있어도, 감정은 반복되지 않는다.
진심은 타이밍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타인의 마음을 이해했느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실험 2. 엄마의 미역국을 거절한 날
시간 : 2003년 3월 15일, 오전 7시 38분
장소 : 우리 집 부엌, 4인용 식탁, 노란 조명 아래
상황 : 자격증 시험을 앞둔 날. 긴장과 예민으로 가득 찬 아침.
엄마는 내가 시험보는 날인 것을 잊은게 분명하다.
식탁 위엔 김이 피어오르는 미역국이 놓여져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걸 먹지 않았다. 기억 속 엄마는 항상 새벽에 일어났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깨어, 쌀을 씻고 국을 끓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나는 예민했고, 짜증났고, 그 짜증은 “지금 안 먹어”라는 말이 되어 식탁 위에 툭 떨어졌다.
엄마는 조용히 국을 덮고, 아무 말 없이 거실로 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날로 다시 돌아간다.
세 번의 기회가 있다. 이번엔 다르게 해보려 한다.
첫 번째 시도 (억지로 웃으며)
식탁 위에 김이 피어오른다. 냄비 속 미역이 투명하게 흔들리고, 엄마는 예전처럼 “국 식는다”는 말만 남긴 채, 부엌에 등을 돌린다.
나는 말한다. 어색하게.
“응… 잘 먹을게.”
숟가락을 들고 미역국을 떠먹는다. 맛은 있다. 하지만 엄마는 고개만 끄덕인다.
그날 하루는 그대로 흘렀고,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나는 다시 시계를 눌렀다.
두 번째 시도 (감정을 숨기지 않기)
같은 아침. 엄마가 주방에서 돌아선다.
이번엔 나는 말없이 국을 밀지 않고, 손으로 식탁을 쓸며 말했다.
“나 좀 긴장돼. 그래서 입맛이 없어.”
엄마는 멈춘다. 처음으로 나를 제대로 본다.
“…그래도 한 숟갈만 먹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역을 건져 먹는다.
국물은 따뜻했고, 목에 천천히 내려갔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한번 쓸어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장면은 그 자체로 완벽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 더 시계를 눌렀다.
혹시… 완전히 다른 결과가 있을까 싶어서.
세 번째 시도 (고백)
국이 다시 식지 않게 김을 피운다. 나는 식탁에 앉아, 국을 뜨기도 전에 엄마를 부른다.
“엄마.”
엄마는 고무장갑을 벗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말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나, 오늘 무서워. 그리고… 고마워. 이 국 끓여줘서. 항상.”
엄마는 말이 없다. 눈만 살짝 젖었다.
나는 국을 다 먹었다.
그건 그 어떤 미역국보다 따뜻했고, 그보다 더 이상한 건 내 안의 후회가 조금 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똑같은 국을 끓였고, 나는 똑같이 긴장했으며, 말은 바뀌었지만 엄마는 한 번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국을 안 먹은 걸 후회한 게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내 기분으로 해석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회 완화율: 63%
감정 이해력 증가율: 95%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더 좋은 사랑을 받는 건 아니다.
단지 그때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이제야 알 수 있을 뿐이다.
실험 3. 아들과의 공놀이 제안 거절
시간: 2013년 5월 12일, 일요일 오후 4시 05분
장소: 아파트 거실, 텔레비전 앞
상황: 나는 소파에 기대 뉴스 채널을 흘려보던 중이었고, 아들은 축구공을 껴안은 채 말했다.
“아빠, 나랑 밖에 나가서 공놀이 할래요?”
나는 피곤했고, 그날 아침에 늦잠을 잤고, 왠지 모르게 머리가 무거웠다.
그래서 그 한마디만 말했다.
“지금은 좀 피곤하다. 나중에 하자.”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이후 그 말은 한 번도 다시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날로 돌아간다. 세 번의 기회가 있다.
아들과의 “지금”을 붙잡기 위해.
첫 번째 시도 (억지로 몸을 일으키기)
아들은 똑같은 해맑은 표정, 하이톤의 똑같은 말투로 묻는다.
“아빠, 나랑 밖에 나가서 공놀이 할래요?”
나는 눈을 감았다가,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그래… 가자. 한 10분만.”
놀이터는 햇살이 강했고, 나는 조금씩 숨이 찼다.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돌아봤다.
“아빠 패스~!”
공이 나에게 날아왔다. 나는 그것을 느리게 받아차며 웃었다.
짧고 따뜻한 15분.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은 더 놀고 싶어 했고 나는 “다음 주에 또 하자”고 말했다.
역시 그 다음 주는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 (먼저 제안하기)
이번엔 아들이 말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말한다.
“우리 축구하러 갈까?”
아들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잔디밭 위를 함께 뛰었다.
햇빛에 눈이 부셨고, 땀이 등에 고였다. 나는 숨을 고르며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 이제 좀 쉴까?”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도 이제 형들이랑 놀게.”
그 말에 이상하게 마음이 철렁했다.
언제부턴가 나 말고도 아이는 놀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세 번째 시도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서)
이번엔 되감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앞으로 가본다.
2030년,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고 공은 더 이상 나를 향해 날아오지 않는다.
그는 혼자서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나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아빠, 나랑 공놀이 할래요?” 그 말을, 이젠 다시는 듣지 못한다.
나는 문득, 마지막으로 되감기 버튼을 눌러본다.
한 번만. 정말 마지막으로.
이번엔 그날 그 시간, 다섯 살이던 아들이 공을 들고 내 앞에 서 있는 순간이다.
아들의 손은 작고, 이마엔 땀이 맺혀 있었다.
아들이 묻는다.
“아빠, 나랑 공놀이 해줄래요?”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들을 안아 올린다.
그리고 말했다.
“이번엔 아빠가 먼저 패스할게.”
공이 천천히 공중을 날아간다. 아들은 깔깔 웃으며 그걸 향해 달려간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느리게 지나갔다.
나는 알았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지만, 지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아들은 똑같이 웃었고, 나는 똑같이 후회했다.
단 한 번의 "지금"을 외면한 대가는 생각보다 오래 가는 것 같다.
아이들은 잘 잊지만, 부모는 절대 잊지 않는다.
후회 감소율: 65%
가슴 저림률: 100%
아이에게는 몇십분이였던 시간이, 부모에겐 평생의 기억이 된다.
기회는 ‘다음에’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는 순간을 놓치면, 두 번 다시 같은 공은 날아오지 않는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본다.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이번엔 다르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 용기를 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달라져 있지 않을까?"
상상의 버튼 하나로 인생을 리셋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기회가 많아질수록, 선택은 가벼워진다.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은 무겁지 않다.
결정을 내릴 때 느껴야 할 책임감도, 단 한 번뿐인 순간에 대한 절박함도, 반복 가능성 앞에선 흐려진다.
우리가 ‘한 번뿐인 삶’이라는 전제를 잊는 순간, 진심은 망설임이 되고, 용기는 나중으로 미뤄진다.
하지만 완벽한 순간은 반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연히 맞닥뜨린 찰나의 기회와, 그때 내민 용기의 손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아무리 되돌아도, 아무리 다시 살아도, 그 순간의 떨림과 결단은 처음 한 번뿐이다.
리셋은 축복일 수 있지만, 동시에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지나간 어제를 지우는 일에 능숙해질수록,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는 감각은 무뎌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수많은 후회와 상상의 버튼들 앞에서 다시 묻는다.
"이 단 한 번뿐인 오늘을, 나는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반복될 수 없는 하루 속에서, 중요한 건 거창한 성취나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내 감정, 내 선택, 내 태도에 정직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기회는 많아질 수 있지만, 진짜 삶은 언제나 지금뿐이다.
오늘을 리셋할 수 없다면,
우리는 오늘 안에서 가장 단단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