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까지 '나'일 수 있는가
요즘 내 머리는 전원만 켜져 있는 구형 컴퓨터 같다.
화면은 켜져 있는데 저장은 안 되고, 검색도 안 되고, 가끔은 멋대로 재부팅된다.
문제는 껐다 켜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거다.
예전엔 사람 이름만 가끔 까먹었는데, 요즘은 내 비밀번호도 나한테 비밀이다.
얼마 전엔 퇴근하고 집 앞에서 5분 동안 비밀번호를 연상 퀴즈처럼 외쳤다.
“7282? 아니지… 우리 결혼한 해? …아니 그건 아닌데…”
덜컥 문이 열리며 앞에서 아들이 “아빠, 그냥 벨 누르라니까” 하고 짜증을 냈다.
아내는 “벌써 치매가 온거야? 왜 또 까먹었어?” 하고 한숨 쉬더니 방안으로 사라진다.
그날 밤은 웃고 넘겼다. 그런데 며칠 뒤 진짜 제대로 사고를 쳤다.
저녁 먹고 TV 리모컨 찾다가 문득 내 핸드폰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파 쿠션 틈새에 머리 처박고 뒤지고, 베개 밑, 신발장 위, 변기 뚜껑까지 열어봤다.
없었다.
결국 물이나 마시자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 김치통 옆에 내 핸드폰이 마치 반찬처럼 잘 눌러져 있었다.
그것도 김치국물 살짝 밴 상태로.
내 핸드폰은 잘 숙성된 ‘발효기억 저장소’가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실 그 순간 핸드폰 불빛보다 더 소름 돋았다.
‘내가… 왜… 이걸 여기 넣었지…?’ 뒤에서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한 마디 했다.
“이젠 핸드폰도 반찬이냐?”
아들은 쓴웃음 한 번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남은 건 차가운 핸드폰 하나랑, 더 차가워진 내 자존심뿐이었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웃자. 이거라도 안 웃으면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
근데 속으로는 머리를 탁 치고 싶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민망하냐.
이 작은 실수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니.
내가 냉장고에 핸드폰 넣은 것도 웃기지만, 그걸 들켜버린 이 순간을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었다.
근데 생각해보니 더 웃긴 건, 떠올렸다가 식은땀 나는 부끄러운 순간들이 더 많다는 거다.
‘이거보다 더 큰 실수들… 그때 내가 했던 헛소리, 못 돌려준 사과, 돌아서서 괜히 폼 잡았던 후회들…’
차라리 이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버릴 수 있으면 어떨까?
그럼 이렇게 민망하게 밤에 김치통 옆에서 자존심까지 담글 일은 없지 않을까?
결국 결심했다. 하루에 하나씩. 내가 직접 고른 부끄러운 기억을 머릿속에서 도려내 보는 상상 실험.
실패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 체면은 오늘부로 절임식품 코너에 진출했다.
부끄러움을 잃으면 나는 좀 더 자유로워질까? 아니면, 부끄러움까지 잃으면 나는 사람이 아닐까?
그건, 이 황당한 실험이 끝나면 알게 되지 않을까?
피실험자 : 50대 초반, 현관 비밀번호 자주 까먹는 평범한 가장.
가 정 : 하루에 하나씩 기억이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변할까?
방 법 : 아무 기억이나 무작위로 하나 사라진다고 가정한다.
기 록 : 아직 안 까먹은 내가 매일 밤 직접 기록한다.
기록하다 까먹으면 그건 운명으로 한다.
실험장소 : 내 머릿속. (필요시 냉장고 속까지 확대 적용)
특이사항 : 참가자, 관찰자, 기록자 모두 본인
피해자 : 대체로 나, 가끔 가족
책임자 : 없음 (이미 책임질 기억은 잃어버렸음)
첫 번째로 지운 건, 며칠 전 밤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온, 해서는 안될 그 말이다.
저녁 먹고 소파에 기대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아들이 색연필로 뭔가를 그리더니 폴짝 뛰어왔다.
“아빠! 이 그림 어때? 내가 만든 괴물 로봇이야!”
나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슬쩍 고개만 돌렸다.
종이에 그려진 건… 솔직히 봐도 잘 모르겠었다. 그래서 괜히 장난기가 올라왔다.
눈길도 안 떼고 툭 말했다.
“그래? 멋진 스틱맨을 그렸구나~ 자 이제 괴물 로봇을 보여줘.”
아들이 잠깐 멈칫하더니, 눈빛이 흔들렸다.
“이게… 괴물 로봇이야.”
나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근데 괜히 한 마디를 더 했다.
TV는 재밌고, 내 입은 심심했고, 멍청했다.
“아~ 이게 그 유명한 다리 짧은 스틱맨 괴물 로봇이구나~ 다리 조금만 더 길면 더 멋있겠다~”
아들이 입을 꾹 다물더니 고개를 숙였다. 눈이 살짝 반짝이더니 금세 방으로 쏙 들어갔다.
뒤에서 아내 목소리가 번개처럼 날아왔다.
“아이고, 애한테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그게 그렇게 웃겨?”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TV 음량만 더 키웠다. 그리고 그날 밤 과자 봉지를 혼자 다 비웠다.
입은 멈췄지만, 머릿속은 그 말이 멈추질 않았다.
그래서 그 기억을 지웠다.
아들의 눈빛, 내 멍청한 농담, 방으로 사라지던 뒷모습까지.
머릿속에서 통째로 밀어냈다.
그 다음 날 아침,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들에게 말했다.
“야, 오늘도 로봇 그릴 거야? 네가 예전에 그린 그 스틱맨 멋졌잖아.”
아들이 나를 잠시 이상한 눈으로 보더니 대답했다.
“그거 괴물 로봇이었는데... 아빠가 놀렸잖아.”
“내가?”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내 기억엔 없다. 아니, 정말 아무것도 없다.
나는 심지어 그 그림이 멋졌던 것 같다고 덧붙였고, 아들은 조심스럽게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아내는 내게 조용히 물었다.
“왜 갑자기 태도 바뀐 거야? 어제 일 생각났어?”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일? 나 어제 과자 먹은 것밖에 기억 안 나는데?”
기억을 지우면 죄책감도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남긴 감정의 자국. 나는 잊었지만, 아들은 기억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내 말보다 오래 남았다.
비 오는 수요일.
우산을 안 가져가서 편의점에서 투명 비닐우산을 샀다.
흠뻑 젖은 신발을 털며 길을 걷는데, 문득 길가 꽃집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그 투명한 창 너머에서, 어떤 얼굴이 지나갔다.
잠깐, 정말 찰나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익숙했다.
“그녀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녀와 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기억 속에서 열쇠가 풀리듯, 내 가슴 한가운데 묻어둔 게 하나 툭 튀어나왔다.
20대 초반, 그 사람의 눈웃음, 겨울 코트에 남은 향수 냄새, ‘잘 지내’라는 마지막 말과, 그 이후의 침묵
나는 그 기억이 주는 묘한 무게가 익숙했었다. 익숙해서, 잊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건 오래된 흉터 같은 거였다.
그날 밤, 나는 실험의 두 번째 대상으로 그 첫사랑의 기억을 선택했다.
기억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 사람의 얼굴도, 목소리도, 떠난 날도. 마치 존재한 적 없다는 듯.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내게 물었다.
“오늘 우리 결혼 기념일인 거 알지?”
“응. 알지.” 하고 나는 웃었다.
그리고 퇴근길에 꽃을 사러 나갔다.
하지만 꽃집 안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가슴이 하나도 뛰질 않았다.
그건 이상했다. 기념일이니까 당연히 좋은 날인데, 왜 이렇게 심심하지?
왜 이게 그냥 평범한 날 같지?
저녁에 케이크를 자를 때, 아내가 물었다.
“뭔가 마음이 딴 데 있는 것 같아.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생각 없었어.”
그건 사실이었다. 진짜, 아무 생각, 아무 감정이 없었다.
첫사랑을 지웠다. 상처도, 후회도, 결핍도 사라졌다.
그리고 함께 사라진 게 하나 더 있었다.
사랑이 주는 떨림.
처음 깨진 기억이 없으니, 다시 깨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두려움이 없자, 애틋함도 줄어들었다.
상처는 꼭 지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음 사랑을 더 진하게 만드는 증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지운 나는,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공허해졌다.
실험 3 - 내가 고른 세 번째 기억: 공개 망신의 기억
그날도 회의실은 형광등 불빛이 어색하게 밝았다.
슬슬 점심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한 11시 57분.
나는 대충 준비한 자료를 띄우며 말했다.
“그래서… 지난 분기 매출은 9조 8천억입니다.”
정적.
바로 옆자리의 한 대리가 조용히 내 노트북을 힐끔 보고 입을 막았다.
정면의 이사님은 안경 너머로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리고 말했다.
“정부장, 우리 회사 연매출이 그 정도면 삼성 옆자리쯤에 있지 않았을까요?”
회의실에 앉은 다섯 명이 거의 동시에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웃음은 ‘아재의 정겨움’ 같은 게 아니었다.
“쟤 진심인가?”라는 민망한 경계의 웃음.
나는 고개를 숙이고, 뒷목을 긁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단위가 좀… 흥분했네요.”
이사님은 조용히 말했다.
“집중력부터 챙겨요.”
그 말이 툭 던져지고 난 뒤, 나는 그 회의실에서 무려 15분 동안 거의 숨만 쉬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만하면 식은 땀이 날 것 같은 그 기억을 지웠다.
그 숫자 실수도, 이사님의 말도, 모두.
며칠 뒤, 같은 회의실.
나는 전보다 더 당당한 톤으로 자료를 넘겼다.
“지난 분기 매출은… 970억… 아니, 9,700억… 아니죠, 그쵸? 하하!”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번에도 수치가 틀렸다. 근데 나는 하나도 안 부끄러웠다.
그게 문제였다.
그날 이후, 내 발표는 점점 산만해졌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습관도 사라졌다.
내가 틀렸을 때 누군가 움찔하는 눈빛, 그걸 감지하던 센서가 없어졌다.
망신을 지우자, 부끄러움이 사라졌다. 그건 편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자,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감각도 같이 사라졌다.
망신은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작아짐’ 덕분에 덜 무례하고, 덜 부주의했던 거다.
우리가 민망함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게 자기 크기를 가늠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신은 상처가 아니라, ‘사람 되기’의 흔적이다.
그 상은 대학교 3학년 여름, 어느 NGO 단체 사진 공모전에서 받은 ‘최우수상’이었다.
상금은 100만 원이었고, 내 이름이 찍힌 상장은 코팅해서 아직도 서랍 어딘가에 있다.
심지어 지금 다니는 회사 이력서에도 살짝 적었다.
관련된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대충 겸손한 척하면서도, 항상 이렇게 덧붙였다.
“아 뭐 그냥… 그땐 좀 잘찍었죠, 지금은 손 놓은 지 오래예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속으론 언제나 ‘그때 나는 괜찮았다’는 걸 꺼내 씹었다.
진심으로 무너질 때도, 그 기억이 나를 잠시 일으켜주곤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걸 지우면, 나는 어떻게 될까?
상을 받았던 기억이 사라졌다.
그 날의 수상 소감도, 시상식 진행자의 이야기도, 코팅된 상장의 질감까지도 싹.
며칠 뒤, 누군가 회식 자리에서 물었다.
“정부장님 사진 잘찍는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그냥 취미 정도에요.”
“오, 그러면 뭐 수상 같은 것도?”
“없어요. 그냥 평범했어요.”
말이 툭 나왔다. 진심이었다.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나는 ‘잘난 척’을 하지 않게 되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예전 같으면 “제가 원래 이런 건 좀 해봐서…” 하고 웃으며 시작했겠지만, 이젠 그냥 “해보겠습니다” 한 마디로 시작했다.
어깨가 가벼웠다. 그건 해방이기도 했다.
그 기억은 나의 자랑이었고, 그 자랑은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완성된 버전의 나’였다.
그걸 지우니 허세는 사라졌고, 그 빈자리에 조금 더 정직한 내가 남았다.
그런데 묘했다.
자랑이 없으니 자기를 부풀릴 거리도 없고, 그렇게 나를 감싸주던 포장지 하나가 사라진 느낌.
나는 조금 가벼워졌고, 조금 더 투명해졌고, 조금 더 솔직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솔직함은 조금 외로웠다.
이건 사실 실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다섯 번째 기억을 고르던 밤, 내 머릿속에 가장 또렷하게 떠오른 장면은 아들이 처음 나를 ‘아빠’라고 불렀던 순간이었다.
토요일 저녁, 막 잠에서 깬 아이가 엉엉 울다 내 품에 안겨 입을 벌려 조용히 말했다.
“아… 빠…”
그게 세상에서 제일 기이하고 기쁜 말이었다.
나는 웃으며 울었고, 그날부터 내 이름은 사라졌다.
그 후로 나는 ‘아빠’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오늘 밤, 그 기억을 지우기로 했다.
눈을 떴을 때, 뭔가 놓친 기분이 들었다.
거실로 나가니 아들이 마루에서 장난감을 흩어놓고 놀고 있었다.
“아빠!”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잠시 멈췄다.
아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서 아무 감정도 올라오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지금그 말이 왜 특별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아들은 달려와 내 다리를 감았고, 나는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몸은 반응했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익숙한데, 낯선 부드러움.
그날 밤, 나는 혼자 거울 앞에 앉아 이름 없는 내 얼굴을 오래 들여다봤다.
나는 그냥, 한 남자였다. 아무 역할도, 설명도 없이.
사랑받았던 기억을 지우자 정체성도 같이 희미해졌다.
그 기억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해주는 타이틀이자,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뿌리였다.
이름보다 먼저 불린 단어 - ‘아빠’.
나는 그 말 덕분에 삶을 견디고, 웃고, 존재해왔다.
그걸 놓자, 나는 누구의 아빠도 아니고 누군가의 위로도 아닌 그냥 사라지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가 진짜로 지워선 안 될 건 상처도, 망신도, 허세도 아니고 누군가의 사랑 안에서 존재했던 기억이라는 걸.
실험은 끝났다.
상처, 부끄러움, 허세, 사랑 .
그 하나하나를 지우면서 나는 조금씩 ‘가벼운 사람’이 되었다.
기억은 짐이라고 생각했다. 후회와 실패, 민망함과 눈물… 때로는 꺼내기도 싫은 일들.
그런데 이상했다.
하나씩 지울수록 몸은 가벼워졌지만, 나는 점점 ‘덜 나’ 같아졌다.
상처를 지우자 따뜻함도 무뎌졌고, 부끄러움을 없애자 신중함이 사라졌다.
자랑을 잊자 당당함이 흐려졌고, 사랑을 놓자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었다.
결국, 기억은 짐이 아니라 뼈대였다.
우리는 기억으로 무너지고, 기억으로 다시 일어나며, 기억으로 사람다워진다.
실험이 끝난 지금, 나는 하나의 진실 앞에 멈춰 섰다.
‘나’라는 존재는 단순히 살아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기억을 품고 버티며 사랑을 증명해온 흔적들의 합이라는 걸.
사람은 결국, 붙잡고 사는 기억으로 설명된다.
그게 죄책감이든, 자랑이든, 사랑이든. 그게 사라지면 나는 뭘로 남을까.
어쩌면 우리가 버리지 못해 붙잡고 사는 건 상처가 아니라, 한 장면 한 장면으로 이어붙인 ‘나'라는 영화가 아닐까?
기억은 마음의 짐이다.
근데 짐이 없으면 집도 없다.
어깨는 무겁지만, 그 무게 덕에 나는 오늘도 내가 된다.
내가 붙잡고 사는 게 기억인지, 기억이 나를 붙잡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오늘도 나는 문득 하나를 떠올렸다가, 살포시 내려놓는다.
놓고 나면 또다시 붙잡고 싶어진다. 그게 내가 살아있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