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너무 빨리 용서받았다.

거짓은 균열을 남기고, 균열은 나를 비춘다.

by 한자루




아들이 도서관에서 피노키오 동화책을 빌려왔다.
표지엔 나무 인형 얼굴에 코가 뻗어 있고, 참새가 앉아 있었다.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난다는 걸 아이들은 동화로 배운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대요.”
아들이 말했다. 나는 대답했다.

“맞아. 아빠도 어릴 땐 그랬지. 그래서 지금도 코가 좀 큰 것 같아.”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요즘 세상에서 그 정도로는 안 통한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습관처럼, 예의처럼, 눈치처럼 말한다.

그래서 상상해 봤다.

“만약, 거짓말을 하면 코가 아니라 얼굴에 금이 간다면?”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의 진심이 얼굴에 새겨진다면?”

피노키오는 들켰지만 용서받았다.
우리는 들키지 않지만, 그만큼 더 많은 걸 무너뜨린다.


실험 개요

실험명 : “거짓은 어디에 남는가” 실험 (말과 진심 사이의 균열 관찰)
실험 배경 및 문제의식 :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인간은 평균 하루 10회 이상의 거짓말을 한다는 통계가 있음.
그러나 대부분의 거짓은 비난받지 않으며, 종종 ‘예의’, ‘배려’,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무시되거나 미화됨. 이에 따라 인간은 ‘말과 진심의 괴리’를 점점 더 감각 없이 넘기게 됨.
실험 목적
1) 무심코 하는 거짓말이 얼굴에 기록될 때, 인간의 반응과 감정 흐름을 관찰한다.
2) ‘착한 거짓말’ 또는 ‘자기 위로성 거짓말’도 균열을 발생시키는지를 검증한다. 3) 거짓이 들통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정직해지는지, 아니면 침묵하게 되는지를 확인한다.
실험 조건
1) 피실험자는 하루 일상 속에서 단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물리적 금(균열)이 자동으로 발생. 2) 균열은 거짓의 크기·진심과의 간극에 비례함. 3) 외모적 손상 외에 신체적 통증은 없으나, 사회적 어색함, 부끄러움, 무력감 등의 정서적 반응이 뒤따를 수 있음.
4) 균열은 그날 밤까지 지속되며, 다음 날 자동 회복됨.

실험 1: “커피 맛있어요” – 아침의 실금

시간 : 월요일 아침 9시 12분.
장소 : 사무실 탕비실 옆, 회의실 테이블.
상황 : 은색 텀블러와 한 대리의 기대, 그리고 정 부장의 아랫입술.


한대리가 은색 텀블러를 들고 나타났다.

“정 부장님, 오늘은 제가 직접 커피를 내려봤어요.”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종이컵을 건넸다. 무언의 요청이 느껴졌다.
맛을 평가해 달라는 게 아니라, 칭찬을 해달라는 눈빛.

나는 컵을 들었다. 향은 나쁘지 않았다. 비록 약간 시큼하고… 묘하게 탄내가 섞여있어지만.

첫 모금.
혀가 움찔했다.
입천장에 신맛이 붙고, 뒷목으로 쓴맛이 내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플라스틱을 태운 듯한 여운이 남았다.

내 얼굴 근육이 반사적으로 경직되려던 찰나,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오… 진짜 괜찮네요. 바리스타 자격증 있으신 거 아니에요?”

그 순간 왼쪽 눈꼬리 아래로, ‘틱’ 머리카락 굵기의 실금 하나.

그리고 한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저도 딱 마시자마자 ‘어… 좀 탄 건가?’ 싶긴 했는데… 이게 또 묘하게 깊은 맛이더라고요.”

‘틱’
이번엔 그의 광대 아래로 얇은 금이 번졌다.

한 대리는 괜히 컵을 들고 한 모금 더 마셨고, 나는 종이컵을 들며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우린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는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서로가 서로의 금을 못 본 척하는 침묵.

착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선 착하든 아니든, 거짓은 남는다. 그걸 웃으며 확인했다는 게… 제일 웃겼다.

상대를 배려한 말, 분위기를 지키려는 말. 하지만 이 세계에선 착하든 못됐든, 거짓은 모두 얼굴에 남는다.

심지어, 본인도 아는 거짓은 더 깊게 남는다.
한 대리도 그걸 알았고, 나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조금 어색하게.


실험 2: “예, 웬만하면 매일 하죠” – 자존심의 균열

장면 : 토요일 저녁 6시 50분.
장소 : 거실 소파, 아파트 단지 뒤편 산책로, 벤치 3번.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팔은 리모컨, 발은 슬리퍼, 뇌는 정지.

그러다 무심코 몸을 일으켜 양말을 줍다가 배가 접혔다.
말 그대로. 정확히 두 주름, 반달 모양.

그 순간, 등 뒤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거… 옷이 작은 게 아니라 배가 나온 거예요.”

그 말은 웃으며 던졌지만 내 등에는 전쟁 선포처럼 꽂혔다.
나는 15초의 침묵 끝에 벌떡 일어났다. 옷장으로 가서 운동복을 꺼냈다.

바지 끈이 묶이지 않아 3번 숨을 들이쉬었고, 팔은 티셔츠 안에서 2초 정도 길을 잃었다.
그래도 입었다.
왜냐면 자존심은 등에 땀나기 전에도 먼저 움직이는 법이니까.

나는 밖으로 나갔다.
산책로 초입,
구겨진 체면을 펴기 위한 워밍업을 시작했다.

땀은 안 났지만, 나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몇 번 문질렀다.
그리고 괜히 어깨를 두어 번 돌리며 운동 중이라는 시그널을 발사했다.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14동 아저씨가 걸어왔다.
늘 조깅복에 스포츠 선글라스를 쓰는, 자신의 폐활량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

그는 날 보며 반가운 듯 말했다.

“요즘도 꾸준히 나오시나 봐요. 진짜 대단하세요.”

내 입은 자동으로 반응했다.

“아유, 뭐… 웬만하면 매일 하죠.”

‘치이익-"
콧잔등에서 시작된 실금 하나가 왼쪽 광대 아래로 길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뺨을 긁었다.
이어폰도 없는 귀에 손가락을 꽂는 시늉도 했다.
내 얼굴의 금을 가리기 위한, 작고 서툰 무기였다.

14동 아저씨는 “멋지세요” 한 마디 남기고 지나갔다.
나는 잠시 우뚝 섰다가 운동하는 척했던 방향과 반대로 방향을 틀어 벤치 3번으로 가서 앉았다.

허벅지는 벌써 묵직했고, 티셔츠는 의외로 얇았으며, 숨은 그다지 차지 않았다.
왜냐하면 운동을 거의 안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내 얼굴에 난 실금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이건 운동이 아니라 ‘운동하는 사람처럼 보이기’였다.

그리고 그런 말엔 몸이 아니라 얼굴이 먼저 반응했다.

"아. 이거 운동이 쉽지 않구먼..."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내 얼굴은 웃지 못했다.


실험 3: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 저녁의 붕괴

장면 : 금요일 저녁 7시 10분.
장소 : 거실과 식탁 사이.
식탁엔 된장국이 있고, 말은 없었다.


그날은 정말 길었다.

회의는 지루했지만 끊이지 않았고, 사소한 요청은 엘리베이터처럼 계속 올라왔다.

머릿속은 멀쩡한 척했지만, 마음은 수시로 내려가 있었다.

점심을 허겁지겁 삼키듯 마치고 다시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았다.
카톡은 127개,
“이거 급한데 가능할까요?”란 말은 다섯 번 들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의 말에 대답은 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퇴근길에서 창밖을 멍하니 보며 앉아 있었고, 가방은 유난히 무거웠고, 양말은 하루 종일 헐떡댄 대가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땐 말도, 생각도, 힘도 전부 말라붙어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부엌에서 국을 데웠다.

식탁 위엔 김이 피어올랐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숟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잠시 후,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도 많이 힘들었어? 얼굴이 좀…”

나는 고개를 들어,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어.”

그 순간 왼쪽 뺨에서부터 귀밑까지 길고 깊은 금이 쩍 하고 그어졌다.
귓가에 진동처럼 울리는 침묵.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밥을 뜨려 했지만, 숟가락이 그릇에 닿을 때 손끝이 잠시 멈췄다.

아내는 금을 봤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저 반찬 하나를 더 올려줬다.
고등어구이였다. 내가 좋아하지만, 요즘엔 좀처럼 손대지 않던 것.

국을 떠먹었다. 된장국의 짠맛이 유난히 진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연하게 피어오르는 김 너머로 서로를 바라봤다.

말없이, 천천히, 조용히...

“가족 앞에서조차 ‘힘들다’고 말하는 건 나약해 보이는 것 같고, ‘괜찮다’고 말하는 건 거짓이라는 걸
오늘 다시 깨달았다.”


내가 거짓말을 한 건, 아내가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내버려 둘 줄 알기 때문이었다.

그건 배려였을 수도 있고, 내 자존심을 위한 침묵이었을 수도 있다.

아내는 내가 “아무 일 없다.”라고 말했을 때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 모른 척해줬다.

그리고 나는 그 배려 앞에, 말보다 더 조용한 금 하나로 대답했다.
어쩌면 내가 진짜 무너졌던 건, '괜찮다는 말.'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그 말을 스스로 믿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장 깊은 금은 남에게 한 거짓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한 거짓말이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아요.”, “아니에요, 전혀요.”, “진짜 좋아요.” 같은 말을 한다.

그 말들엔 배려가 섞이기도 하고, 체면이 깃들기도 하고, 사실은 아무 감정도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 말들이 하나씩 얼굴에 금을 남긴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조용한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말을 줄이게 될 것이고, 웃는 척도 줄어들 것이고, 어쩌면 진심이 묻어나는 단어는 한두 개 남짓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꼭 나쁜 일일까?

우리는, 너무 쉽게 웃고 너무 쉽게 괜찮다고 말하고 너무 자주, 스스로를 속이며 산다.

피곤해도 괜찮다고 하고, 슬퍼도 아무 일 없다고 하고, 다 무너졌는데도 그냥 버틴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말들은 결국 우리 얼굴 어딘가를 조금씩, 조용히, 조금 아프게 갈라놓고 있었다.

어쩌면 신호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참았다고, 이제 좀 말해도 된다고. 이제는 너 자신에게라도 정직해져야 한다고.

그 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어른의 체면, 중년의 외로움, 그리고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빛 없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가만히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조금씩 회복이 시작된다.

정직은 미덕이 아니라, 말할 용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용기에는… 때때로 부서질 각오도 필요하다.


내 얼굴의 보이지 않는 작은 금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깨지는 건, 부주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감춘 채 괜찮은 척하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라는 걸.
keyword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