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욕망이 반려동물처럼
따라다닌다면?

이 감정은 사람을 물지 않아요.

by 한자루




오늘도 평소처럼 퇴근 후 반려건 '잔디'와 산책을 나섰다.
잔디는 항상 그렇듯, 똑같은 골목, 똑같은 전봇대, 똑같은 가게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아주 정직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멍.” (여기서 뭐 먹고 가자.)

나는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 가게 간판엔 ‘치즈핫도그 1+1’이라고 적혀 있었다.
순간 잔디가 내 표정을 훔쳐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들킨 기분이 들어 나는 작게 외쳤다.

“야! 너 또 배고파? 나는 아니거든!”

…근데 사실, 나도 좀 배고팠다.

잔디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생각했다.

만약 잔디가 내 식욕을 대신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면?‘ 내 욕망이 진짜 이렇게 옆에 따라다닌다면? 그리고 모든 사람의 욕망이 반려 동물처럼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그때부터 또 다시 엉뚱한 상상이 시작됐다.

누군가의 옆에는 눈망울 큰 고양이가 따라가고, 어떤 이의 어깨에는 깃털이 화려한 공작새가 올라앉아 있으며, 길모퉁이에서 두 마리 욕망이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한다면?

이건 장난 같은 상상이었지만, 어쩌면 꽤 진실한 이야기다.

왜냐면, 우리는 언제나 욕망과 함께 걷고 있으니까. 다만 지금껏, 그게 눈에 안 보였을 뿐이다.


실험 개요

실험명 : 욕망이 생명체로 보인다면
목 적 : 인간의 욕망이 더 이상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고, 물리적인 생명체 형태로 눈에 보이며 따라다닌다면, 사람들의 행동, 관계, 사회적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설 정 : 각 욕망은 개성 있는 동물로 의인화되어 사람 옆에 따라붙는다.

이제 욕망은 누구 눈에도 보인다. 숨길 수 없다. 부인할 수 없다.
욕망은 당신 옆을 걷고, 때로는 당신보다 앞서 달린다.

번화한 도심.

퇴근 시간, 횡단보도 초록불이 켜진다. 우르르 사람들이 길을 건넌다.

하지만 풍경이 좀 낯설다.

어떤 남자는 커다란 공작새와 걷고 있고, 어떤 여성은 분홍색 족제비 둘을 팔에 감고 있으며, 한 초등학생 뒤에는 미친 듯이 뛰는 강아지가 붙어 있다.

그 옆엔 고양이 두 마리, 마주 보고 싸우는 중이다.

드론 카메라로 보면 알 수 있다. 도시는 욕망들의 사육장이었다.

사람들은 무표정했지만, 욕망들은 활기찼다.
가끔 주인이 눈치를 줄 때마다 욕망 동물들은 억지로 앉거나 시선을 피하거나 눈을 동그랗게 떠 “왜?”라고 묻는다.


실험 1 : 중고 거래장에서 족제비와 실랑이

장소: 서울 망원동, 일요일 오후.
상황: 나는 DSLR을 팔기 위해 카페 앞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옆에 족제비가 있었다.
털은 복슬복슬, 눈은 촉촉. 내 DSLR 가방을 끌어안고 놓지를 않았다.
감정 : 소유욕망


"이거 팔기로 했거든?"
"킁킁."

나는 가방을 당겼고, 족제비는 지퍼를 물었다.
내 눈치를 살피더니, 눈에는 살짝 눈물까지 고인다.
진심이든 연기든, 어쨌든 효과는 있었다. 얘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정확히 말하면, 이 족제비는 진짜 족제비가 아니라 “이거 팔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혹시 나중에 쓸 일 생기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이 털 달고 실체화된 존재되시겠다.
한 마디로 소유욕의 털복숭이 버전이다.

때마침 거래 상대가 도착했다.
말끔한 셔츠에 구겨지지 않은 바지, 코 끝에 은은한 콜드브루 향. 그가 가볍게 웃으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가 내 가방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상태 좋은데요. 정 들었겠어요."
"네, 뭐… 몇 번 안 썼죠…"
"진짜 파셔도 돼요?"

그와 동시에, 그의 어깨 너머로 무언가가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작고 날렵한 도마뱀처럼 생긴 무표정한 동물. 눈은 동태눈깔인데, 어딘가 계산적인 눈빛.
그 녀석은 가방을 보더니 혀를 날름 찼다.
그리고 거래 상대의 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너 이거 사면 중고 시세 더 오를 걸? 지금 안 사면 손해야…”

나도 모르게 족제비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족제비는 내 등을 미친 듯이 긁기 시작했다.
“팔지 마!! 이건 네 사진 인생의 상징이잖아!!”

상대방의 도마뱀은 코웃음을 쳤다.
“말이나 되냐. 1년 넘게 안 썼으면서.”

두 마리가 내 등 뒤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족제비는 포효했고, 도마뱀은 꼬리를 휘둘렀다.
족제비는 잽싸게 가방을 끌어안았다.

어쩌다 이게 이렇게 된 걸까. 사실 이 DSLR은 1년 넘게 서랍 속에서 먼지를 먹고 있었고, 렌즈캡조차 잃어버린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걸 못 놓는 이유는, 그 물건이 쓸모 있어서가 아니라 그걸 가진 ‘나’가 뭔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내 자존심을 붙잡아 주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말했다.

“아, 아직 좀 고민이 되네요…”라고 얼버무렸고, 죄송하다며 차비까지 물어주고 거래를 포기했다.
"아, 네. 그럴 수 있죠."
상대는 아쉬운 듯 일어났고, 도마뱀은 투덜거렸다.

“다음엔 저런 우유부단한 사람과는 거래하지 말라고. 괜히 시간만 낭비했잖아.”

한편 내 족제비는 씰룩이는 엉덩이로 내 발 옆에 찰싹 붙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잘했어. 킁킁”

결국 거래는 그렇게 무산되었다.


소유욕은 개처럼 말 잘 듣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마치 족제비 같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겠고, 필요하지도 않는데, 애착을 구실 삼아 들러붙는다.

우리가 물건을 못 버리는 건, 그 물건이 쓸모 있어서가 아니라, 그걸 가진 ‘나’가 유용했던 것 같다는 착각을 지키고 싶어서다.

그러니까 족제비가 따라오는 건 당연하다. 그건 내 욕구이자, 내 불안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다들 그런 족제비 한 마리쯤은 키우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실험 2 : 허영심은 화려한 공작이였다.

장면 : 아파트 단지 농구장, 일요일 오후 5시 40분
상황 : 아들과의 농구 대결
그런데 문제는 농구공처럼 튀는 내 아랫배와 공원 벤치에 젊은 아가씨들이 자꾸 신경 쓰인다는 것이다.
감정 : 허영심


농구공이 다시 땅에 튕겼다.
“둥- 탁, 둥- 탁.”
리듬은 엉성했고, 팔은 벌써부터 뻐근했다. 슬리퍼에 발은 쏙 삐져나왔고, 티셔츠는 땀으로 등에 붙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공을 받았다.
열 살짜리 아들은 신나서 뛰어다녔고, 나는 살짝 주저앉은 자세로 무릎을 두어 번 툭툭 쳤다.

“아빠, 그거 던져! 빨리빨리!”

나는 아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허리를 펴는 순간, 티셔츠가 말려 올라갔고 배가 반쯤 드러났다. 본능적으로 티를 내렸다.

공은 던지자마자 백보드를 때리고 나왔다.
아들은 웃었고,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땀이 티셔츠를 적시고, 숨이 턱까지 찼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화려한 깃털을 단 공작 한 마리가 사뿐히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녀석은 목을 길게 빼고 주변을 훑더니, 갑자기 휘익-! 깃털을 활짝 펼쳤다.
햇빛을 받아 일렁이는 푸른색, 초록색, 황금색.

농구코드 위에 그림자까지 예술처럼 떨어졌다.

“배에 힘 좀 줘. 어깨 펴고. 좀… 최소한, 아저씨 같진 않아야지.”

나는 이 거만한 공작새를 쳐다봤다. 녀석은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며 여유있게 웃고 있었다.
그러곤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저기 봐. 벤치.”

공작이 가리킨 쪽에는 운동복 차림의 젊은 여자 둘이 앉아 있었다.
머리는 단정했고, 얼굴엔 뭔가 미소 같은 게 떠 있었다.
딱히 나를 보진 않았지만, 공작은 이미 확신한 듯 중얼댔다.

“저들은 지금 ‘널 누구 아빠’로만 보겠지. 근데… 그게 다는 아니잖아? 너도 한 번쯤 멋있어 보이고 싶잖아. 그 나이에도. 그런 배를 가지고 있다고해도 말이야.”

나는 어깨를 쭉 펴고, 공을 다시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각도를 신중하게 조정했다. 무심한 척, 있는 힘 없는 힘 다 끌어모아 점프슛을 날렸다.

공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고, 꽝. 백보드 정면을 세게 맞고 튀어 나왔다.
아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아빠, 방금 일부러 멋있게 하려다가 망했지?!”

나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공작은 발을 들어 내 셔츠를 끌어내렸다.

“너무 티났어. 멋있는 척은 원래… 더 자연스러워야 돼.”

나는 다시 공을 잡았다. 이번엔 아무 말 없이, 걸음을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마치 ‘별 생각 없이’ 던지는 척 공을 날렸다.

슥- 공이 림을 통과하며 깔끔하게 들어갔다.

공작은 날개를 펼친 채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감탄했다.

“오! 이번엔 멋있었어!”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렸다. 벤치 쪽을 본 척, 안본 척.
아가씨들은 여전히 자기들 얘기에 빠져 있었다. 전혀 나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공작이 내 귀에 다시 속삭였다.

“저 아가씨들은 신경 쓰지 마. 중요한 건 너 스스로 멋져 보였다는 사실이지. 넌 지금 네 자신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거잖아.”

녀석은 내 어깨 위에서 부리 끝으로 내 목덜미 근처를 살짝 쪼아댔다.
나는 성가신 듯 몸을 한번 으쓱였지만, 그 깃털 한 올이 내 등에 스치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허영심은 공작이었다.
깃털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걸 펼치는 순간 너무도 의도적이라는 게 티가 난다.
내 체면을 세워주겠다며 다가오지만, 가끔은 괜히 과하게 군다.

나는 멋내고 싶은 걸 감추려 했지만, 그 마음 자체를 감추긴 어려웠다.

어쩌면 진짜 부끄러운 건 그걸 들키는 게 아니라, “아직도 누군가의 눈에 괜찮아 보이고 싶어하는 나”를 스스로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실험 3 : 해변에서 고양이와 말싸움

장면 : 해변, 여름 오후 3시 10분. 햇살은 직각으로 내리쬐고, 모래는 뜨겁고, 파라솔 아래엔 라떼 반잔이 놓여 있다.
상황 : 아내와 10살 아들과 함께 바다에 놀러옴.
아들은 물총 들고 모래사장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중.
나는 그늘막 아래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내 옆에 페르시안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는 것.
녀석은 하얀 털을 정리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선과 웃음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감정 : 성욕


해가 작정하고 내려꽂히던 날이었다.
바다는 반짝였고, 모래는 발바닥을 살짝 데울 만큼 뜨거웠다.

나는 그늘막 아래 앉아 플라스틱 컵에 든 라떼를 빨고 있었다.
얼음은 거의 다 녹아 있었고, 아들은 모래사장에서 물총을 들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엔 고양이 한 마리. 그것도 페르시안.
털은 북슬북슬, 눈은 똘망똘망.
입은 닫고 있었지만, 표정은 매우 말이 많았다. 녀석은 해변을 조용히 스캔하고 있었다.

그 시선 끝엔 누군가의 긴 다리, 누군가의 탱크탑, 누군가의 웃음소리.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만 좀 봐. 짜증나. 애 앞이잖아.”

고양이는 귀를 젖히고 살짝 하악 하고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다.

앞발로 모래를 한번 툭 건드리며 말했다.

“이게 뭐 짜증 낼 일이야. 사람인데 당연히 반응하지. 그게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나는 선글라스를 썼다. 근데 선글라스라는 게, 눈동자가 움직이는 게 다 보이잖나.
그래서 괜히 더 민망했다.

고양이는 내 무릎 위에 올라와 내 배를 툭툭 쳤다.

“시선은 돌리지 않았지만, 네 안에선 뭔가 꿈틀한 것 같은데? 볼까지 빨개지다니 무슨 생각을 한거지? 그걸 감춘다고 해서, 완전히 없던 게 되는 건 아니지.”

"아, 아,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했다고 그래..."

나는 괜히 라떼 컵을 들었다. 입도 안 댄 채, 빨대만 만지작거렸다.
고양이는 내 옆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 나이라도 그럴 수도 있지. 그게 꼭 창피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무심한 척 라떼를 더 빨았다. 빨대는 거의 공기만 뽑아냈다.
파파팍, 시끄러운 소리에 아들이 돌아봤다.

“아빠, 뭐해?”
“어… 그냥 커피 마시고 있지.”

고양이는 앞발로 내 티셔츠를 건드리며 킥킥 웃었다.

나는 고양이를 털어냈다. 녀석은 몸을 툭 떨어뜨리고는 모래 위에 다시 앉았다.
꼬리는 살랑살랑 흔들고, 눈은 여전히 해변 한가운데로 향해 있었다.


성욕은 고양이다.
어디서든 나타나고, 별일 아니어도 반응하고, 괜히 부끄러움을 당연함처럼 만들고, 당연함을 또 민망하게 만든다.

나는 아닌 척했지만, 고양이는 내가 어디를 봤는지 다 알고 있었다.

"너 아직도 눈은 돌아가 있어. 근데 애써 못 본 척하느라 더 어색해."

고양이는 내 옆에서 모래를 정리하듯 앞발로 툭툭 밀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는 그냥 본능인데, 왜 넌 날 그렇게 수치스럽게 다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해변을 바라봤다.

고양이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 파도 소리에 귀를 젖히고 앉아 있었다.


실험 4 : 후회는 부엉이였다.

장면 : 자정이 조금 지난 침실, 불 꺼진 채 어둠 속
상황 : 아내는 잠들었고, 아들은 방에서 이불을 걷어차고 자고 있다.
나는 등을 대고 누운 채, 천장을 본다. 눈은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창문 틈 어딘가에서 낯선 기척이 들린다.
그리고 이불 끝에 어두운 덩어리 하나. 눈을 뜨면 항상 거기에 앉아 있는 녀석.
그게 바로 부엉이였다.

부엉이는 밤에만 온다.
꼭 내가 잠들기 바로 직전에.

녀석은 이불 끝에 조용히 앉아 부리도 움직이지 않은 채 머릿속에 오래된 파일을 열어준다.

“기억나지? 그날 네가 왜 그 말을 했는지.”, “그때 그냥, 참았어야 했잖아.”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하지만 부엉이는 내 안쪽 어딘가를 가만히 긁는다.

가족끼리 다퉜던 날, 아들에게 괜히 짜증 냈던 순간, 잘못 말한 한 문장, 넘겨짚은 표정, 무심했던 저녁식사…

그게 꼭 헤드폰으로 트는 오디오북처럼 한 문장씩 되살아난다.

“그땐 몰랐지? 지금도 잊은 척하잖아.”
“근데 너, 지금 왜 잠 못 자고 있겠어?”

나는 돌아누우려다 말고 베개를 한 번 더 눌러봤다.
소용없다. 부엉이는 여전히 앉아 있다.

날개를 펴지도 않고, 그저 나를 보고 있다.


후회는 부엉이였다.
낮에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다가, 밤이 되면 꼭 돌아온다.

크게 울지도 않는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는다.
그저 조용히, 명확하게, 아주 오래도록 바라본다.

나는 괜히 뒤척이고, 눈을 감고, 딴 생각을 하려고 해보지만,

“그 생각이 바로 나야.”

부엉이는 그렇게 하루의 끝에서 나를 기다린다.



평일 아침 8시 45분, 도시 한복판.

지하철역 입구부터 횡단보도, 편의점 앞, 사거리 모퉁이까지 사람들로 가득하다.
출근길. 출근길의 전형적인 풍경.

하지만 눈을 잘 뜨고 보면, 사람들 곁에는 동물 한 마리씩이 따라 걷고 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옆엔 등이 굽은 회색 족제비가 작은 보조가방을 끌며 끙끙대고 있고, 앞머리를 단정히 넘긴 여자 뒤에는 깃털을 화려하게 펼친 공작이 우아하게 걷는다.

지나가는 유리창마다 자신의 모습을 흘끔 확인하면서.

어깨에 고양이를 태운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걷는다.
고양이는 그의 귓가에 대고 무엇인가 자꾸 속삭이는 듯한 얼굴이다.
누군가와 스쳤을 뿐인데, 그 눈빛을 다시 곱씹는다.

저 앞 벤치에 앉은 학생 옆에는 부엉이 한 마리가 눈을 반쯤 뜨고 앉아 있다.
전날 밤, 무언가를 놓쳤다는 기분을 끌고 나온 채로. 지하철 계단 아래쪽 거기선 도마뱀 하나가 이불 무늬 같은 걸 품고 조용히 사람의 무릎에 들러붙어 있다.

그 사람은 몇 걸음마다 한 번씩 멈칫하며, 다시 걸음을 뗀다.

그리고 그 모든 틈 사이로,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누구 발밑에 숨을까 눈치를 본다. 그건 아마도 불안일 것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감정 한 마리쯤은 끌고 다닌다.

사무실에 데려가진 않지만, 회의할 땐 늘 다리 밑에 앉아 있고, 혼잣말할 땐 테이블 위에 올라와 귀를 쫑긋 세운다.

누군가는 그걸 예쁘게 단장해서 산책시키고, 누군가는 조용히 가방에 숨긴 채 한 걸음씩 하루를 버틴다.


우리 곁엔 늘, 말없이 따라오는 감정이 있다.
작고 조용하지만, 때로는 마음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 감정들이 우리를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준다.

버린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피한다고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함께 걷는 법을 익히는 수밖에.

욕망도, 미련도 제자리를 찾아주면 무게가 아니라, 리듬이 된다.


가장 무서운 욕망은, 주인을 잊고 혼자 걷는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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