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감정의 그림자다.
금요일 오후 3시 12분.
은행 창구 앞에서 나는 22번 대기표를 손에 쥔 채, 무려 43분째 서 있었다.
앞사람은 계좌를 닫았다가 다시 열고, 도장을 꺼냈다가 넣고, 다시 꺼냈다.
“이 사람 혹시… 금융 시뮬레이션 게임 중인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분명 내가 아까 본 시계는 3시 12분이었는데, 지금도 3시 12분이었다.
두 번 확인했다. 은행 벽시계, 그리고 내 스마트워치.
심지어 핸드폰까지 동조해서, 셋 다 똑같이 안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 시계가 동시에 고장 날 확률은 로또보다 낮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이건… 내가 너무 지루해서, 시간도 같이 포기한 거다.”
그 순간, 머리에 한 가지 전기가 번쩍였다.
“만약 시간이라는 게… 실제로 내 감정 상태에 따라 흐른다면?”
기분 좋으면 슝슝 지나가고, 불안하면 분침이 폭주하고, 지루하면 그냥 ‘정지’. 무기력하면 계속 되감기고.
그리고 사랑? 사랑은… 아마도 멈춘 듯 흘러가겠지.
이 망상은 원래 여기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번호 23번이 불리기까지 진짜 20분은 족히 더 걸릴 것 같다는 점이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이 시간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인간 실험을 시작하기로.
실험대상은…
다름 아닌, 매일 출근하고, 매일 피곤하고, 매일 실수하는 중년 회사원, 바로 나 자신.
실험 개요
실험명 : 감정 기반 시간 체감 실험
피실험자 : 정 부장 (50대 초반/평범한 중년 직장인/감정 표현은 느리지만 내면은 늘 전시상태)
실험 목적 : 시간의 흐름이 실제로는 '감정'에 의해 조절된다면, 인간의 삶은 어떻게 바뀌는가?
시간 : 화요일 오후 12시 10분
장소 : 회사 식당
감정 상태 : 무기력함, 약간의 체념, 일상에 대한 회의
식판 위엔 늘 그랬듯 불고기, 콩나물국, 깍두기 세 조각.
같이 앉은 후배는 말없이 휴대폰을 스크롤하고 있었고, 나도 조용히 밥을 씹었다.
43번쯤 씹었을 무렵,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불고기 세 번째 조각이... 방금 그 위치에 있지 않았나?
깍두기는 오른쪽 끝에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가운데다.
콩나물 머리도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인 느낌이다.
그 순간, 문득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이거… 어제도 똑같지 않았나?"
아니다. 어제뿐이 아니다. 지난주도 이랬고, 지난달도 이랬다.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작년도 이랬다. 나는 젓가락을 들었다. 깍두기를 집었다가 놓고, 다시 집었다.
변화 없음. 다시 되감긴 것처럼, 모든 게 너무 익숙하고, 너무 정확해서 낯설다.
무기력한 감정은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희미한 경계는 질문을 만들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 혹시 어제 아니야?”
같은 자리, 같은 반찬, 같은 휴대폰을 보는 후배.
식기 부딪히는 소리조차도, 어쩌면 어제랑 똑같았다.
스피커에선 또 지루한 클래식. 이 음악도 분명, 어제 들었던 것 같다.
나는 후배에게 물었다.
“야, 나 이거… 어제도 먹지 않았냐?”
후배는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어제는 제육이었잖아요.”
그 말도 낯설지가 않았다. 이 대화조차, 어제도 나눈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실험적으로 깍두기를 한 조각 뒤로 밀어봤다.
10초 후,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있었다.
국물의 온도는 약간 더 식었고, 불고기는 씹을수록 질겨졌다.
루프는 완벽한 복사가 아니었다. 시간은 반복되지만, 재료는 조금씩 늙는다.
음식도, 감정도, 나 자신도.
무기력함이 깊어지면,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으면서도 어제를 반복한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 착각은 점점 현실 같아진다. 나는 그날 점심을 세 번 먹었다.
그게 오늘이었는지, 어제였는지, 작년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다 똑같다는 사실이다. 깍두기 세 번째 조각.
그놈은 오늘도, 어제도, 아마 다음 주에도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샐러드는 루프해도 어차피 비슷한 맛일 테니까.
시간 : 토요일 오전 10시 38분
장소 : 집 욕실
감정 상태 : 불안, 당황, 0.5초 안에 생애 최악의 시나리오 상상 완료
토요일 아침 10시 38분. 나는 한 손엔 샴푸, 다른 손엔 핸드폰을 든 채, 습기 찬 욕실 안에서 평소처럼 노래를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손끝이 미끄러졌다. ‘툭’ 하는 감각.
핸드폰이 떨어졌다.
모든 소리가 멎었다.
물줄기조차 멈춘 것 같았다.
공기마저 느려졌다.
그 순간, 핸드폰은 공중에 떠 있었다.
1.4초의 낙하, 하지만 내 감각은 그걸 14초로 확장했다.
먼저 든 생각은 “아, 케이스를 어제 벗겼지.” 그다음은 “강화유리도 안 붙였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재난 시나리오들!
'액정 금 갔네.', '데이터 복구에 25만 원', '보험은 어디로 청구하지?', '연락 다 끊기고, 네이버지도도 못 켜고 내 주말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핸드폰 없이 하루를? 나 그거 못해.'
나는 본능적으로 한 손을 뻗었지만, 손끝은 허공을 긁을 뿐.
떨어지는 그 화면엔 아직 음악 재생 중인 앱이 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은 '너를 잃다.'였다.
그리고 “딱” 어라? 충격음이 생각보다 작았다.
바닥을 보니, 수건 위. 기적적으로 살아 있었다.
나는 샤워기 밑에 쪼그려 앉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물은 여전히 따뜻했고, 핸드폰은 멀쩡했고, 그 짧은 공중 낙하의 1.4초는, 내 하루를 전부 태워버릴 뻔한 시간이었다.
실제로 흐른 시간은 2초도 안 됐지만, 마음은 이미 일주일치를 겪고 돌아왔다.
불안은 시간을 빨리 흐르게 만들지 않는다. 단지, 미래로 나를 ‘순간 이동’시킬 뿐이다.
파손, 손해, 복구, 갈등, 후회.
모든 것을 1초 안에 시뮬레이션하는 감정의 속도는, 어쩌면 빛보다 빠르다.
그리고 돌아와 보면, 몸은 거기 그대로 있고, 물은 아직 뜨겁고, 시간은 겨우 10시 39분이다.
그제야 알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이라는 건, 시계가 아니라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걸.
진짜로 흐른 시간보다, 내가 불안했던 정도, 내가 떠올린 미래의 길이, 그리고 내가 소모한 감정의 양이 그 시간의 ‘길이’를 결정한다.
어쩌면 시간은 항상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우리는 감정의 엔진으로 그 위를 달리거나, 미끄러지거나, 주저앉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간은 늘 이상하게 느껴진다.
빨랐다가, 느렸다가, 아예 멈췄다가.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벌써 8월?"
그렇게 나이를 한 번 더 먹는다.
시간: 토요일 오후 4시 12분
장소: 동네 공원 벤치
감정 상태: 뭉근한 행복, 갑작스러운 당혹, 깊은 울림
토요일 오후. 날씨는 맑았고, 바람은 적당히 선선했다.
아들과 함께 집 앞 공원을 걸었다.
아들은 킥보드를 밀며 앞서갔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걸었다.
세상은 잠시 조용했다. 시간도 조용했다.
벤치에 잠깐 앉았을 때, 아들이 물었다.
“아빠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요?”
나는 대답을 하려다 멈췄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답이 머리에서 입으로 가는 도중에 멈췄다.
그 순간, 바람이 멎었고, 옆에서 흔들리던 나무 잎이 정지했고, 벤치 아래 그림자가 얼어붙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건 설렘도 아니었고, 슬픔도 아니었다.
당황, 회상, 부끄러움, 그리고 묘한 감정의 정적. 그 모든 감정이 뒤엉킨 상태.
나는 오래전 기억을 꺼냈다.
초등학교 책상 위에 그려놨던 공룡 그림, 대학생 때 낙서처럼 썼던 소설, 처음 출근하던 벅찬 발걸음.
모든 것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나는 과거와 현재,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서서히 다시 흐르기 시작할 즈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똑똑한 아들 낳는 거였지.”
아들은 낄낄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 9초, 나는 멈춰 있던 게 아니라, 기억 속을 다녀온 것이었다.
사랑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사랑은 ‘지금’이라는 시간을 ‘영원’처럼 느끼게 한다.
나는 그날 아들의 질문 앞에서 멈춘 9초 동안 자신의 인생 전반을 요약해 보았다.
그 감정은 아직도 흐르지 않고, 그날 벤치에 그대로 남아 있다.
시간: 금요일 밤 9시 14분
장소: 거실 소파
감정 상태: 기대감, 침묵, 배고픔, 기다림의 무한 루프
금요일 밤.
퇴근하고 샤워도 끝냈고, 아내는 외출했고, 아들은 게임 삼매경이다.
이건 일 년에 몇 번 올까 말까 한 나만의 시간.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들고, 휴대폰을 열었다. 치킨 앱 접속.
‘허니갈릭 + 콜라 세트’ 예상 배달 시간: 41분. 주문 완료.
그 뒤로부터 시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9시 14분.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 TV를 본다. 하지만 집중이 안 된다.
뉴스의 앵커가 입은 정장을 보며 생각한다.
“저 사람 지금 치킨 안 기다리겠지….”
9시 21분. 아직 ‘조리 중’이다.
왜 이 시간에 이렇게 주문이 많은 건지, 왜 내가 배고픈 날만 배달이 늦는 건지,
왜 오늘따라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 아니라 허니갈릭을 선택했는지까지 반성이 밀려온다.
9시 29분. “어디까지 왔지?” 앱을 새로고침한다.
지도가 켜지고, 오토바이 위치가 뜨는데 그 점은 5분째 움직이지 않고 있다.
분명히 방금도 저기 있었는데, 지금도 저기다.
시간이, 지도가, 오토바이도 전부 멈췄다.
9시 38분. TV는 중간 광고를 세 번째로 돌고 있고, 나는 치킨을 기다리며 허공을 본다.
그 순간 깨달았다.
기대감은 시간의 고문 기술이다.
원래 기대는 좋은 건 줄 알았는데, 막상 기다려보면 그건 시간을 붙잡아놓고 느릿하게 조리하는 작업이다.
치킨이 아니라, 내 인내심이 튀겨지고 있는 중이었다.
딩동. 현관 벨이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났고, 문 앞까지 2.5초 만에 도착했다.
치킨을 받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감사합니다. 진짜 오래 기다렸어요…”
배달원은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근데 오늘 예상보다 빨리 왔는데요?”
기대감은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 시간은 멀쩡히 흐르고 있었고, 기다리던 건 ‘치킨’이 아니라 무언가 특별한 일이라 믿고 싶은 내 마음이었다.
나는 그날 치킨을 기다리며 24분을 2시간처럼 느꼈고, 기대라는 감정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다.
기대는 미래를 당겨오는 감정이 아니라, 현재를 늘려버리는 감정이다.
우리는 시계를 찬다. 스마트워치, 벽시계, 컴퓨터 우측 하단 시계.
하지만 정작 하루를 기억할 때, 우리는 “몇 시”를 떠올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때의 감정을 기억한다.
지루했던 회의는 영원 같았고, 불안했던 초인종은 한 계절을 훑었고, 좋아하는 사람의 미소는 단 9초인데 9년을 기억할 수 있다.
시간은 초침이 아니라, 심장의 고동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의 속도대로 늙고, 지치고, 다시 웃는다.
은행 대기표 앞의 43분은 나를 회의감으로 노화시켰고, 식판 위 점심은 돌고 또 돌아, 나를 루프 속에 가뒀고, 아들의 질문은 나를 멈춰 세웠고, 치킨을 기다리던 밤은 내 인내심을 천천히 익혀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내가 그 모든 순간을 ‘시간’이라 불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제 안다. 시간은 물리학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사건이다.
우리가 심심하면 멈추고, 설레면 빨라지고, 사랑하면 멈춘 듯 흐르고, 후회하면 과거로 되돌아간다.
그러니 혹시라도 당신이 오늘 하루가 너무 길다고 느꼈다면 아마 당신은 지금 지루한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정의 이름이 ‘무기력’이라면, 식판 위 깍두기 조심하시라.
벌써 세 번째 같은 깍두기를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느낄 때만 흐른다.
그게 우리의 진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