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사물에 눌러붙는다면?
금요일 밤, 아들은 은근한 자세로 나에게 접근해 온다.
"아빠. 30분만 게임하면 안될까요?" 평소 사용하지 않는 존대말이다.
"아까 낮에도 엄마 핸드폰으로 한시간 넘게 게임했다면서?"
당연하지만 나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9시 넘었으니까 내일 해.”
“근데 아직 8시 55분인데요?”
“야, 그건 네 시계고. 아빠 시계는 벌써 9시 넘었어.”
“아빠 시계는 고장났네요.”
이쯤 되면 협상이 아니라 철학이다.
나는 결국 “됐다, 들어가.”라는 중년 특유의 종결어로 논쟁을 마무리했다.
아들은 표정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딱 4분 뒤 욕실에서 물이 콸콸 쏟아졌다.
씻겠다는 거다. 화가 나서 씻는 열 살이라니. 무섭다.
그 후 나도 평소처럼 자기 전에 샤워를 했고, 평소처럼 걸려 있던 수건을 들었다.
그리고… 멈췄다. 촉감이 묘했다.
말 그대로 “감정이 눅눅하게 그리고 덕지덕지 묻은 느낌”이었다.
물리적 습기보다 정서적 습기가 더 강했다.
기분 같아선 이 수건이 내 얼굴에 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생각했다.
“이건 그냥 젖은 수건이 아니라, 아들의 기분이 눌어붙은 수건 아닐까?”
이 수건은 아들이 사용했던 것이다. 아까 짜증과 실망을 품고 돌아섰던 아들.
문을 쾅 닫고, 샤워하고 나온 그 아들. 그 감정이 수건에 남아, 지금 내 손으로 전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나 나의 상상은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그럼에도 왠지 아주 현실적이었다.
나는 수건을 얼굴에 대고, 생각했다.
“혹시 감정이 물건에 저장된다면?”
“그리고 지금 내 얼굴에 닿은 건 축축한 수건이 아니라, 10살짜리 아들의 억울함과 분노가 아닐까?”
그 수건의 촉감은 내 감정을 통과했다. 피부가 아니라, 마음에 먼저 닿았다.
그렇게 나의 엉뚱한 상상은 시작되었다.
감정이 물건에 저장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조용하지만 더 진실할지도 모른다.
실험명 : 감정 잔여물 저장 실험
가설 : 감정은 물건에 남는다. 정확히는, 인간의 손길이 닿은 사물 표면에 그 순간의 감정이 얇게 코팅된다.
감정의 농도 : 사람과 물건 사이의 애착, 접촉 시간, 감정의 강도에 비례함.
피실험자 : 정부장(본인) / 50대 초반. 배는 나왔지만 감정은 안 나옴.
시간 : 토요일 오후 7시 38분
장소 : 거실 소파
상황 : 저녁으로 삼겹살 배불리 먹고 TV를 켜려는데...
실험물 : 아들의 짜증이 담긴 TV 리모컨
삼겹살을 다 먹고, 기분 좋게 소파에 드러눕고, TV를 켜려 리모컨을 찾았다.
그런데 없다.
소파 옆, 테이블, 쿠션 밑까지 다 뒤졌지만 안 보였다.
심지어 냉장고까지 열어봤다. (전적이 있다.) 이상하다. 리모컨은 원래 혼자 도망가지 않는다.
누군가 ‘숨긴’ 거다. 정부장의 머릿 속에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들, 정부장 주니어. 열 살, 분노 조절 잘 못 함.
며칠 전, 그놈이랑 TV 채널 문제로 싸웠다.
“넌 왜 유튜브 게임 채널만 보냐?”
“그럼 아빠는 왜 뉴스만 봐요?”
“뉴스는 알아야 살아.”
“난 아빠처럼 안 살아도 돼요.”
그날 정부장은 아들 손에 쥐어진 리모컨을 빼았었고, 아들은 입 꾹 닫고 방에 들어갔다.
오늘 리모컨이 없는 건, 그 사건의 연장선이었다. 작고 치사한 복수.
정부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놈이 리모컨에 감정을 남겼구나. 그리고 지금, 리모컨이 나를 피하고 있는 거야.”
아내가 말했다.
“리모컨, 화장실에 있더라.”
…그 놈, 끝까지 비겁하다.
나는 그 리모컨을 다시 들었다.
그 순간 정전기처럼 찌릿한 감각. 겉은 플라스틱인데 손끝이 아리다.
눅진한 짜증, 미세한 반항, 눌러붙은 감정의 저항감이 느껴진다.
정부장은 깨달았다. 이건 리모컨이 아니라, 감정을 품은 채널 전환장치라는 것을.
내가 던졌던 말, 아들이 쥐고 있던 순간의 짜증, 그게 고스란히 이 사물 속에 저장돼 있었다.
리모콘 버튼을 눌러보니 이상하다.
채널은 멀쩡히 넘어가는데, 왜인지 자꾸 아들이 보던 게임 채널로 돌아간다.
볼륨은 21까지만 올라가고, 자막은 켜면 멈추고, 꺼야 넘어간다.
나는 중얼거린다.
“이 자식… 리모컨에까지 짜증을 심었네.”
표면은 차갑고, 묘하게 떨리는 느낌. 딱 그놈의 감정이었다. 불편하고, 무뚝뚝하고, 말 없는 유치함.
그날 밤, 정부장은 TV 보기를 포기하고 일찍 자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리모컨 옆에 쪽지가 놓여 있었다.
“아빠. 내일은 같이 뉴스 봐요. 근데 신비 아파트 끝나고요,. 그리고 맨날은 안되요. 알죠?”
정부장은 슬며시 웃었다. 그리고 다시 리모컨을 쥐었다.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표면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손끝이 화해를 느꼈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말은 지나가고, 감정은 식는다"고.
하지만 진짜 감정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말 뒤에 남고, 눈빛 옆에 서 있고, 때로는 리모컨 같은 물건에 눌어붙어 숨 쉰다.
정부장은 그걸 손끝으로 느꼈다.
소리 지른 말보다, 잠깐 던진 리모컨이 더 오래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건 유치한 감정이었지만, 진심이었다. 그리고 물건은 그 진심을 기억했다.
말을 못 하니, 대신 차가워졌고, 대신 안 넘어갔고, 대신 돌아왔다.
결국 리모컨은 화해의 통로가 됐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시간보다 오래 남았다.
우리는 서로를 잊는다.
하지만 손이 닿은 사물은, 그날의 온도와 마음을 고이 간직한다.
그래서 말보다 중요한 건, 어떤 마음으로 쥐었는가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사물 속에 잠들어 있을 뿐이다.
언제든 다시, 손끝을 타고 깨어날 준비를 하면서.
시간 : 일요일 오전 8시 46분
장소 : 아파트 거실 식탁, 형광등 아래
상황 : 정부장, 일요일 출근 없는 아침에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하려다 아내의 머그컵을 집어 든 순간..
실험물 : 아내가 매일 아침 사용하는 노란색 머그컵
일요일 아침,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아내는 빨래 널고 있었고, 나는 커피가 땡겼다. 믹스커피를 찾아보니 없었다.
부엌 한켠, 아내가 매일 쓰던 머그컵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색에 흰 점이 박힌, 손잡이가 약간 깨진 그 컵.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컵에 커피를 탔다.
그리고 입을 대려는 순간 멈췄다. 컵에서 미묘한 저항이 느껴졌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데 무게가 이상했다. 손끝으로 ‘피로’가 전해졌다.
묘한 온도였다. 컵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이 식고 있는 느낌.
컵을 내려놓고, 다시 잡아봤다. 표면이 묘하게 눅눅했다. 닦았는데도 그렇다.
도자기 특유의 반짝임이 없고, 어딘가 ‘지친 피부’ 같은 질감이었다.
나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거… 컵이 피곤하네?”
그리고 퍼뜩 떠올랐다. 이 컵, 아내가 평일 내내 쓰던 거다.
아침마다 애 도시락 싸고 세탁기 돌리고 청소와 빨래 정리가 끝난 후 간신히 커피 한 모금 마시던 그 시간.
그 모든 순간이 이 컵에 ‘감정 잔여물’처럼 들러붙어 있었던 거다.
나는 마시지 못하고, 컵을 내려놨다.
그 안에 담긴 커피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말하지 못한 감정이 입에 먼저 닿을까봐.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설거지를 했다.
머그컵을 조심스럽게 닦으며 생각했다.
사람이 남긴 감정은, 물건이 기억한다.
말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훨씬 오래.
아내는 그날도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나는 컵을 바꿔줬다. 손잡이 안 깨진 걸로.
작은 컵 하나가 어떤 하루를 다 품고 있는지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시간 : 일요일 오후 3시 22분
장소 : 정부장 자택 부엌
상황 : 한국에서 온 엄마의 택배 물건 뚜껑을 여는데...
실험물 : 어머니가 보낸 락앤락 고추장통
일요일 오후였다. 집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보낸 이는, 엄마. 국제배송, 익스프레스.
테이프는 세 겹, 마치 세 겹의 걱정처럼 단단했다.
나는 상자를 열었고, 거기엔 익숙한 빨간색 락앤락 통 하나가 있었다.
뚜껑은 살짝 들뜨고, 안쪽에서 “찌익” 하고 묘한 압력이 새어나왔다.
순간, 시간이 삐끗했다.
내 주방의 조명이 깜빡였다. 식탁 위 달력의 날짜가 한 칸 흔들렸다.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뚜껑 하나 열었을 뿐인데, 공기의 밀도가 바뀌었다.
고추장 위엔 분명히 보이지 않는 ‘감정막’ 같은 것이 얇게 덮여 있었다.
표면은 매끈했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건 서운함, 안부, 고집, 그리고 오래된 기다림.
나는 괜히 한 숟갈 퍼봤다. 그 순간 혀가 아니라 가슴이 먼저 얼얼했다.
그 고추장은 매운 게 아니라 서러웠다.
맵고 짠 감정이 그대로 내 입 안에서 퍼졌다.
정부장은 화들짝 놀라 숟가락을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 앉았다.
그때 확실히 느꼈다.
“엄마가 감정을 버무렸구나… 양념보다 진하게.”
냄새도 묘했다.
매운 향 너머, 세탁기 돌아가는 냄새, 낡은 아파트 복도 냄새, 엄마 팔뚝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건 향기가 아니라 기억의 압축파일이었다.
정부장은 다시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메모지를 꺼내 읽었다.
“맵지 않게 했는데, 너는 싱겁다 할지도 모르겠다. – 엄마"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정부장은 그날 저녁 밥에 아무 것도 올리지 못했다.
고추장을 더 얹으면 엄마 마음을 너무 많이 퍼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사물에 스며든다는 상상은, 그저 엉뚱한 이야기가 아니다.
엄마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대신 고추장 위에 그 모든 말을 발라 보냈다.
말은 안 했지만, 정부장은 알았다.
그 뚜껑을 여는 순간 감정이 유출되었고, 그건 입보다 먼저 마음을 물들였다.
감정은 때로,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씹을수록 그 감정은 오래 남는다.
시간 : 수요일 오후 3시 07분
장소 : 사무실 정부장 책상
사물 : 마우스, 키보드
오후 3시. 창밖은 멀쩡했지만, 정부장 안쪽은 절망적인 흐림이었다.
그는 커피도, 사람도 다 피곤한 이 시간에 무심코 마우스를 쥐었다.
딸깍.
순간, 손가락이 튕겨나갔다.
“어?”
다시 잡았지만 이번엔 마우스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플라스틱 재질인데 마치 안에 주먹만 한 피로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움켜쥘수록 손바닥 깊숙이 묘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마우스를 내려놓고 손을 털었다.
피로가 아니라, 타인의 피로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레 키보드로 손을 옮겼다.
Shift 키는 지나치게 단단했다. Enter 키는 쾅 치는 순간 묘하게 공허한 울림이 돌아왔다.
Spacebar는 눌릴 때마다 “하…” 하고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부장은 문득 느꼈다. ‘이건 내가 일한 도구가 아니라, 내가 남긴 감정의 블랙박스다.’
이 키보드엔 지난 월요일의 급한 보고서, 금요일 마감의 불안, 수요일 점심 이후의 무기력까지 압축돼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R키를 누르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R. Report. Repeat. Reboot. Reality.
정부장은 다시 마우스를 쥐었다. 이번엔 왼쪽 버튼 아래에서 “진절머리”라는 감정이 흘러나왔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얘도 나만큼 일했구만…”
그리고 더는 클릭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마우스 위에 손을 얹은 채 잠깐 눈을 감았다.
사람은 일을 하지만 감정은 도구에 쌓인다.
마우스는 하루에도 수백 번 누른 피로를 기억했고, 키보드는 그가 삼킨 말들을 타자로 기록했다.
정부장은 책상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오늘 내가 누른 건 보고서가 아니라, 내 속마음이었구나.”
필요하면 이 키보드를 띄워 창문 밖으로 던지고 싶지만, 그건 키보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는 무심하게 Delete 키를 눌렀다.
그러나 지워지는 건 단어뿐이고, 지친 감정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시간: 금요일 밤 10시 42분
장소: 서랍 깊숙이, 오래된 담배갑 틈
사물: 아버지의 라이터
서랍을 정리하다가 정부장은 낡은 담배갑 하나를 발견했다.
뒤틀리고 눅눅한 캔버스 지갑 밑에, 마치 묻혀 있던 것처럼.
담배는 없었다. 그 안엔 초록색 플라스틱 라이터 하나가 들어 있었다.
한쪽 면이 반쯤 긁혀 나간 라이터. 가스는 오래전에 마른 듯했고, 뚜껑은 뻑뻑하게 열렸다.
“칙”
불은 켜지지 않았지만, 기억은 확실히 점화됐다.
그건 구멍가게 어디서나 팔던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된 아버지의 라이터였다.
정부장은 오래 전, 그 손에 꼭 맞았던 이 라이터를 슬쩍 만져본 기억이 났다.
손가락을 댄 순간, 라이터 표면이 지문처럼 따뜻했다.
냉장고 앞에서 삼십 분째 고민하던 감정처럼 불분명하고, 조용하고, 무겁게 따뜻했다.
불이 켜지지 않는데도, 그는 손을 놓지 못했다.
그 안에 아버지의 마지막 침묵이 들어 있었다.
꼬깃한 말버릇, 목울대에서 묻어나던 기침, 신문을 넘기던 단조로운 리듬…
말은 사라졌는데, 촉감은 남아 있었다.
그는 주방 조명을 끄고, 혼자 그 라이터를 쥐고 앉아 있었다.
라이터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봤다. 손끝에 까칠한 마찰이 남았다.
아직도 누군가의 습관처럼, 그 감각은 살아 있었다
정부장은 몇 번 부싯돌과 연결된 휠을 돌려봤다.
칙..칙...칙.
그건 마치, “잘 지내냐?” 하고 물었다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덮는 말 같았다.
정부장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버진, 거기서 따뜻하시죠? 담배 한대 생각 나시나요?”
감정은 현재에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론 사라진 사람의 온기가 사물에 눌러 앉아, 말 없는 안부로 돌아온다.
정부장은 라이터를 다시 담배갑 안에 넣지 않았다. 그냥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그 라이터는 불보다 먼저 기억을 켰기 때문이다.
물건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그 위에 말을 올려두게 된다.
다 말하지 못한 감정들, 도닥이지 못한 사과들, 속으로 삼킨 채 지나쳐야 했던 많은 마음들.
그래서 사물은 조용한 보관소가 된다.
리모컨엔 아들의 서운함이 눌어붙고, 머그컵엔 아내의 피로가 고여 있으며, 고추장통엔 어머니의 사랑이 천천히 삭아 있다.
그리고, 불도 붙지 않는 오래된 라이터 하나는 말없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안부를 전해오기도 한다.
그 침묵은 언젠가 들은 목소리보다 더 따뜻하다.
감정은 사람을 떠나도 사물에 남아 긴 시간을 견딘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사물을 다시 만졌을 때, 우리는 그때 그 감정의 체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진심은 형태를 가진다.
결국 우리 곁을 지키는 것은 그 손에 닿았던 사물의 감정일지 모른다.
말보다 오래 남는 건 그 말이 닿았던 사물이고, 그 사물이 기억하는 감정이 아닐까.
그래서 결국, 살아간다는 건 물건 속 마음을 꺼내어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