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어제 동네 마트에서 와사비맛 감자칩이 품절됐다. 이 얘기를 이렇게 비장하게 꺼내서 미안하다.
하지만 내겐 정말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감자칩은 단순한 과자가 아니다.
월요일 저녁, 넷플릭스 드라마, 와사비칩 한 봉지,
이 조합은 나에게 일종의 현대적 의식이자 소소한 구원이었다.
그런데 계산대 앞에서 직원이 말했다.
“아, 그거 이번 주 입고 안 됐어요. 다음 주나 돼야…”
나는 괜히 숨을 크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안 풀리지…”
원래라면 그냥 돌아섰을 것이다. 나는 괜히 깊은 한숨을 쉬었다.
카트엔 두유 한 팩, 달걀 한 판, 빨래 세제 하나.
그러니까 지금 이 감자칩은, 그냥 과자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텨낸 나에게 주는 작은 포상이었다.
그런데 그게 없다는 말에 생각보다 멍해졌다.
무언가 빠진 느낌. 작고 별것 아닌데, 거기서 이상한 허기 같은 게 밀려왔다.
어쩌면 지금 내가 허전한 건 감자칩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진짜로 애타게 찾고 있던 건, 이미 지나가버린 어떤 순간들.
이를테면… 아들이 나를 보며 “아빠!” 하고 두 팔을 번쩍 들던 그 짧은 순간, 아내가 내 셔츠 단추를 잠그며 “당신, 웃을 때 제일 괜찮다”라고 말하던 어느 저녁.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나 자신을 별 이유 없이 좋아했던 한 시절? 그때는 거울 앞에서 나를 피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모든 건 너무 천천히 사라져서,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것들이다.
그러다 문득, 마트의 선반 앞에서 그 빈자리를 마주했을 뿐이다.
“혹시… 진짜로 내가 찾고 있던 건 와사비맛 감자칩이 아니라, 와사비보다 톡 쏘는 어떤 기억들이었을까?”
그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번쩍하고 켜졌다.
“만약, 그런 걸 다시 살 수 있다면?”
“시간, 기억, 지나간 장면을 파는 가게가 있다면…?”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내 상상 실험은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감자칩 하나 때문에 인생을 돌아보게 된 어른의 위기 대응 시뮬레이션이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실험개요
실험 배경 : 피험자 본인, 마트에서 감자칩 하나 못 산 일을 계기로 "시간과 기억, 감정의 한 장면을 살 수 있는 상점"을 상상함
장소 : 도심 골목 어딘가, GPS에 안 잡히는 작은 가게, 간판에는 살 수 없는 것들을 팝니다라고 적혀있음
가게 운영 규칙 : 시간, 기억, 감정, 관계, 말하지 못한 말 등 ‘이미 지나간 것들’만 판매, 단, 그걸 사기 위해선 지금 내 인생의 무언가를 두고 가야 함
실험 목적 : ‘다시 갖고 싶은 것’과 ‘지금 가진 것’ 사이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그 가게는 진짜 이상한 곳이었다.
골목 끝에 기어들 듯 숨어 있었고, 지도 앱으로는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문은 낡고, 간판은 바래 있었지만 분명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살 수 없는 것들을 팝니다.'
딱 봐도 사기 같았다. ‘팔다가 안 되면 철학으로 승부 보겠다’는 태도랄까.
그런데 나는 그 문을 열었다. 왜? 전날 마트에서 와사비맛 감자칩을 못 샀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지만 진짜다.
그 감자칩은 월요일 밤 넷플릭스와 짝을 이루는 신성한 루틴이었고, 그 루틴이 깨진 순간 내 마음속 어딘가가 톡 하고 금이 갔다.
밤새 뭔가 허전했다. 그 허전함은 감자칩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점심시간에 자판기 커피를 마시다 말고 이 가게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문을 열자 종이 냄새, 먼지 냄새, 오래된 시간 냄새 같은 게 확 풍겨왔다.
안쪽에는 진열장이 하나 있었고, 그 뒤로는 영화에서 본 듯한 노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왠지 이런 가게는 알바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노인이 나와주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나를 보며 말했다.
“찾으시는 게 뭔가요?”
나는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
“혹시… 아들이 저한테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렀던 그 장면… 그런 것도 팔아요?”
말하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싶었다.
그런데 노인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은, 인기가 많은 물건이죠. 아빠들, 특히 월요일에 많이 오시죠.”
그리고 그는 진열장 아래 서랍을 열고 작은 유리 캡슐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정말로 있었다.
작은 유리 캡슐 안에서 채 자라지 않은 목소리, 불안정한 발음, 그리고 낯선 단어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아기가 있었다.
“아… 빠…”
나는 순간 울컥했다. 기억은 희미했지만, 그 장면만큼은 감정의 결로 박혀 있던 순간이었다.
들리는 건 단 한 마디인데, 그 안에 사랑이 처음 이름을 얻는 느낌이 있었다.
“이걸… 제가 살 수 있을까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나는 긴장하며 물었다.
“얼마인가요? 카드도 되겠죠?”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 장면은 돈으로 살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장면에 담긴 손님의 감정을 두고 가셔야 합니다. 다시 보더라도, 처음 들었을 때의 벅참, 그 감정은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나는 말없이 캡슐을 바라보았다.
그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벅찼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그리고 그걸 듣고 내가 얼마나 울컥했는지를 안다.
지금은 그 단어가 현관에서, 거실에서, 부엌에서도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들리는 익숙한 소리가 됐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 처음의 떨림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결국 캡슐을 내려놓았다.
“그 장면을 잃는 건 괜찮지만, 그 기분을 잃는 건 싫네요.”
노인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웃음엔 말 못 할 공감이 묻어 있었다.
우리는 가끔 그 장면 자체보다, 그 장면을 통해 느꼈던 나의 반응을 그리워한다.
처음 “아빠”라고 불렸을 때, 그 말보다 더 놀라웠던 건 내가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만큼 기뻤던 나 자신이었다. 지금은 너무 익숙해진 단어. “아빠.”
하지만 어쩌면 그 이름은 들을 때마다 한 번쯤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단어인지도 모른다.
가게를 다시 찾은 건, 며칠 뒤 퇴근길이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모든 게 꼬였다.
엘리베이터는 고장 났고, 점심에 나온 국은 미지근했으며, 회의 중에 내 말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현관을 열자마자 아내의 말이 날아왔다.
“현관문 좀 조용히 닫아. 애 공부하고 있잖아.”
그 말에 반응도 안 하고 신발을 벗던 그때, 문득 아주 오래전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처음 만나던 시절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어쨌든 별것도 아닌 농담을 하고 웃었는데, 그때 아내가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당신, 웃는 거… 괜찮네.”
그 짧은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었다.
그 말 한 줄 덕분에 그날은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거울 속 내 얼굴이 덜 어색하게 보였고, 괜히 버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도 인사하고 싶었다.
그때의 기분. 그걸… 다시 느낄 수 있다면...
나는 다시 가게로 향했다.
문을 열자 그 노인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치 손님이 나간 뒤 의자에서 한 번도 안 일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노인이 말했다.
“이번엔 어떤 장면을 찾으시나요?”
나는 대답했다.
“아내가… 저한테 처음으로 ‘당신 웃는 거 괜찮네’라고 했던 장면요. 그걸 좀 다시 보고 싶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유리 캡슐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서, 조용한 카페 한편 햇살과 먼지 사이로, 그때의 내가 웃고 있었고, 그때의 그녀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당신, 웃는 거… 괜찮네.”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은, 딱 하나의 부드러운 기억처럼 빛났다.
“이것도 파시는 거죠?”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다만 대가가 있습니다.” 이젠 익숙한 멘트다.
“뭘 두고 가야 하죠?”
노인은 말했다.
“지금 아내가 당신에게 하는 작고 사소한 칭찬 하나를 잃게 됩니다. 이를테면, ‘오늘은 옷 잘 입었네.’ ‘이제야 좀 사람 같네.’ ‘냉장고는 잘 채워왔네.’ 같은 것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런 말들. 확실히… 점점 줄어들고 있긴 했다.
그리고 한마디 듣기까지의 난이도는 옛날보다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 몇 마디가 어쩌면 내가 하루를 마무리할 때 ‘그래도 괜찮았다’고 느끼는 마지막 끈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히 캡슐을 돌려주었다.
“요즘은 아내의 칭찬이 희귀해서 더 좋습니다. 가끔 나오는 게 더 귀하잖아요.”
노인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우리는 종종 말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 한마디에 목이 메곤 한다.
“괜찮네.” “수고했어.” “그거 잘했더라.”
이 짧은 말들이 사람을 견디게 하고, 다시 해보게 만들고, 내일로 끌고 간다.
말은 사라지지만, 그 말로 만들어진 기억은 남는다.
그리고 사랑이란, 그 말들을 자주 주고받지 못해도, 서로 안에서 오래 간직하는 마음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가게를 세 번째로 찾은 날은, 특별히 아무 일도 없던 날이었다.
비도 안 왔고, 기분 나쁠 일도 없었다. 회의는 평범했고, 출근길은 막히지 않았다.
딱히 불행하지 않았는데, 딱히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그날 하루 종일 내가 계속 곱씹고 있었던 건 이유 없는 ‘덜 괜찮음’이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건물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나, 이 얼굴을 좀 더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그렇게 또 나는 그 가게 문을 열었다. 노인은 여전히 같은 자리, 같은 자세.
내가 들어서자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이번엔 어떤 걸 찾으시나요?”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 말했다.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던 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괜찮다고 생각했던 어느 평범한 날. 그런 장면, 혹시 있나요?”
노인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안쪽 책장 쪽으로 갔다.
책도 아니고 진열장도 아닌, 아주 낡은 서랍을 하나 열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든 건 누렇게 바랜 종이 사진처럼 흐릿한 유리 캡슐 하나.
“사실 이런 걸 찾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은 스스로를 미워하는 데 너무 바빠서, 그런 기억이 있었다는 걸 잊어버리죠.”
캡슐 속에는 스무 살 쯤의 내가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방.
낡은 조명 아래, 침대에 반쯤 누운 채 음악을 듣는 모습.
그냥 평범한 날.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는 장면이었다.
그 얼굴엔 분명히 쓰여 있었다. “이대로도 괜찮아.”
거창한 계획도, 대단한 이유도 없이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낸 나를 나 자신이 받아들이고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말했다.
“이걸… 갖고 싶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질 수 있습니다. 단, 대가가 있습니다.”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 문장.
나는 약간 체념한 얼굴로 물었다.
“이번엔 또 뭘 두고 가야 하죠?”
노인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지금껏 이룬 ‘성과로 증명된 자기 자신’을 두고 가야 합니다. 그때의 ‘괜찮음’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아도 자신을 믿을 수 있었던 순수한 감정이었으니까요. 지금 그걸 다시 갖는다면, 당신이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이 한동안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조용히 아팠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의 나를 내가 이룬 것, 내가 해낸 것, 내가 감당한 것 위에 겨우 올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내려놓는다면… 나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될까 봐 두려웠던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캡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그날의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서 괜찮았던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을 수 있어서 괜찮았던 겁니다. 그 믿음, 지금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인은 이번엔 미소도 없이 그저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그게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본 고개 끄덕임 중 가장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매일 더 잘해야, 더 멋져야, 더 무언가를 이뤄야 겨우 나를 좋아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가끔은, 그 믿음이 나를 가장 멀리 데려다 놓는다.
사실, 가장 깊은 자기 확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순간에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잠시 멈추기만 하면 천천히 되살아날 수 있다.
나는 이제 상상 실험을 끝내기로 했다.
가게 문을 나서며 나는 알게 됐다.
어차피 살 수 있는 건, 없다. 시간도, 기억도, 감정도.
아무리 간절해도 다시 손에 넣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해진 건 이것이다.
과거를 사기 위해 지금을 대가로 지불하는 일은, 언제나 가장 비싼 거래다.
왜냐하면 그 대가는 너무 조용하게, 너무 익숙하게 우리를 통과해 버리기 때문이다.
한 장면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지금의 한 사람을 놓치고, 한마디를 다시 듣기 위해 지금 내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꺼버린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알아차리게 된다.
모든 걸 되살릴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이 유일하게 소중하다는 걸.
나는 이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트에서 감자칩을 고르고, 아들의 말끝에 피식 웃고, 아내의 잔소리를 들으며 오늘 하루를 견딘다.
하지만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이제 나는 ‘살 수 없는 것들’을 되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되도록 자주 바라보고, 되도록 천천히 잊기로 한다.
인생은 살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되돌릴 수 없는 말, 다시 못 꺼내는 표정, 놓쳐버린 손, 지나간 감정.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 무엇보다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것, 즉 이 순간을 최대한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 내가 곁에 있는 사람을 보는 방식, 지금 내게 들리는 말에 반응하는 마음, 지금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
그 모든 것이 시간보다 더 깊고, 기억보다 더 선명하고, 감정보다 더 오래 남는다.
감자칩은 다음 주에도 다시 들어온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오늘만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오늘도 조금 서툴고, 조금 부족해도 이 하루를 살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