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만약 내 반려견이 나를 키운다면?

인간이란 참… 관리가 필요한 동물이다

by 한자루




나는 50대 초반의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배는 약간… 아니, 사실 꽤 나왔다.
아내에게는 “이게 바로 중년의 안정감”이라고 셀프 브랜딩 중이지만, 사실 걷는 것보다 눕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날도 어김없이 소파에 반쯤 융합된 자세로, 라면 국물 묻은 러닝셔츠 차림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리모컨은 가슴 위, 휴대폰은 뱃살 사이, 양말은 한쪽만 벗겨져 있었다.

문득 시선을 느껴 고개를 돌리자 거기, 우리 집 반려견 ‘잔디’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깊었다. 그건 단순히 견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아니었다.
그건... 평가였다.

“이 인간 또 엎드려 있네. 산책은? 정서 케어는? 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어.”

나는 그 눈빛에서 압도적인 위계 차이를 느꼈다.
그래서 상상했다.

“만약 잔디가 나를 키운다면?”
“내가 반려동물이고, 잔디가 내 집사라면?”

그리하여 나는 또 하나의 엉뚱한 실험을 시작하게 된다.




실험 개요

실험명 : 「반려견의 시점에서 본 인간 관리법」
설정 조건 : 인간(본인)은 잔디의 반려동물로 살아간다.
잔디는 집사이자 보호자, 훈육자, 그리고 건강 코치
본인은 배변, 산책, 정서적 안정, 영양관리 등에서 완전한 의존 상태 목표 : 반려동물로 살아본 인간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돌아보게 될까?


실험 1. 끌려가는 자의 슬픔

아침 6시 30분.
잔디가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귀를 곤두세운 채, 앞발로 바닥을 ‘탁탁’ 치며 나를 바라본다.

"산책할 시간입니다, 인간."
그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며 속삭였다.

"잔디야… 나 어제 회식 있었어. 이틀 치 피로가 남았단 말이야."

잔디는 무표정했다.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입구 쪽 신발장 앞에서 산책 줄을 끌고 와 툭 떨어뜨렸다.
노란 리드줄이 거실 바닥에 파도처럼 풀렸다.

나는 그 줄의 끝을 내 목에 채우는 순간, 내가 ‘사람’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되었다는 걸 실감했다.

밖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잔디는 자신만의 루트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놀이터를 지나고, 작은 언덕을 넘어, 아파트 단지를 크게 한 바퀴.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 뒤를 쫓았다. 한두 번 멈춰 설라치면, 잔디는 돌아서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익숙했다. 내가 예전, 잔디가 느릿하게 걷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향할 때 던지던 바로 그 눈빛.

“왜 저러지, 쟤?”, “산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거야?”


잔디는 나를 뛰게 만들었다.
계단도 오르게 했고, 꽃밭 앞에선 일시 정지를 시켰고, 낯선 인간들과 마주치면 ‘사회성 훈련’을 이유로 인사까지 시켰다.

나는 반쯤 무너진 다리로 겨우 벤치에 앉았다.
잔디는 내 앞에 앉아 나를 빤히 보더니, 꼬리를 한 번 흔들고 말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늙는 거야. 아니, 늙어서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아서 늙는 거지.”

그 순간, 내가 지난 몇 년간 잔디를 어떻게 대했는지 슬로모션처럼 떠올랐다.

비 오는 날 산책을 거부했던 나, 추워서, 피곤해서, 귀찮아서 "내일 하자"던 나,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잊고 있었던 나

그리고 지금, 나는 잔디에게 이끌려 움직이고 있었다. 육체도, 마음도, 말 그대로 ‘산책당하는 중’이었다.

그 길의 끝에서 나는 알았다.

인간이 동물을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사실은 동물이 인간을 '살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에게 산책을 당하고 있는가? 나를 걷게 만드는 존재는 누구였던가?

때로 우리는 누군가의 발소리를 따라 걷는 중에야,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깨닫는다.


실험 2. 식단 통제 – 먹는다는 것의 철학

점심시간.
나는 냉장고를 향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전날 남은 치킨, 맥주, 그리고 마요네즈에 버무린 참치캔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잔디는 내 동선을 차단했다.
식탁 앞에 서서, 자신의 앞발로 조그만 그릇을 툭툭 건드린다.

그 안엔 노란 단호박 퓌레, 브로콜리 다진 거, 그리고 뭔가 푸석푸석하고 생기 없는 단백질 덩어리가 있었다.

“건강식을 준비했습니다. 이건 당신의 간수치와 혈압을 고려한 저염 고단백 식단입니다.”

잔디의 눈빛은 단호했다.
나는 멍하니 그 그릇을 내려다봤다.
이거… 잔디 네 사료 아니냐? “사람은 말이야, 맛있는 걸 먹어야 살아. 그래야 기분도 좋아지고...”

잔디는 귀를 살짝 접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지난달 스트레스받을 때 먹은 게… 족발, 피자, 그리고 야식 3회 차였던 거야?”

나는 젓가락을 들고 마치 벌을 받는 아이처럼 단호박을 찔러 넣었다.
한 입, 두 입… 그리 나쁘진 않지만, 어쩐지 내 자존심이 깨졌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내가 잔디에게 사료를 줄 때의 태도.

“이거 몸에 좋아~ 먹어봐~”, “왜 이렇게 입 짧아~ 이것도 안 먹어?”


나는 늘 잔디의 기분보다 내 계획대로 잔디를 먹였다. 그게 ‘관리’고,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그릇 앞에 앉아보니, 그게 얼마나 모순된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먹는다는 건, 생존이자 선택이다. 그걸 타인의 기준으로 통제당하는 건, 존엄이 아니라 사육에 가깝다.

잔디는 날 위해 한 끼를 준비했지만, 그 눈빛엔 감시도, 통제도, 불신도 없었다.
그건 단지 “지켜보고 있다”는, 조용한 돌봄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위해 준비해 준 음식을 그 사람의 입맛이 아닌, 우리의 기대로 밀어 넣는다.

그게 부모든, 배우자든, 아이든, 강아지든.

"이게 널 위한 거야."라는 말 뒤엔 진짜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보다, 내가 옳다는 믿음이 먼저 오는 경우가 많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잔디의 그릇을 들고 조용히 말했다.

“이거… 레시피 좀 알려줘 봐. 내가 다음번엔 만들어볼게.”

잔디는 꼬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게 ‘인정’이었는지, ‘승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안에서 무언가 조용히 정돈되고 있었다.

내가 먹는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했다.


실험 3. 존재의 무게를 함께 견디는 일

어느 날 오후, 나는 거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일도 안 풀리고, 아내와는 별로 대화가 없었고, 뉴스는 답답했고, 몸은 무거웠다.
그냥... 무기력이라는 단어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그때, 잔디가 다가왔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내 무릎 옆에 조용히 누웠다. 등이 내 다리에 살짝 닿은 채로.

말을 걸지도 않고, 눈치를 주지도 않고, 그냥 옆에 있었다.

나는 잔디의 체온을 느끼며 물었다.

"잔디야, 너는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잔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나는 그 호흡의 리듬에 맞춰 나도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줄어들고, 마음이 잠잠해졌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잔디가 혼자 창문 앞에 앉아 빗소리를 가만히 듣던 날.

아무도 말 걸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잔디도 나처럼 무기력했을까? 누가 옆에 있어주길 바랐을까?

나는 한 번도 그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늘 ‘내 감정의 해소’만 생각했지, 잔디의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선 관심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잔디는 내 기분을 맞춰주는 존재가 아니라, 내 감정을 함께 ‘견뎌주는’ 존재였다는 걸.

우리는 보통 마음을 나누는 걸 ‘대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관계는 말이 없어야 더 진실해진다. 말이 섞이면 조언이 되고, 조언은 방향이 된다.

그러나 가끔은 아무 방향 없이, 함께 무게를 나누는 것이 진짜 위로가 된다.

그날 나는 잔디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너도 힘들면 내 옆에 와.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을게."

존재는 말보다 무겁고, 침묵은 때로 사랑의 가장 깊은 언어다.


실험 4. 배변 훈련 – 존중 없는 관찰은 감시다

실험 넷째 날.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잔디가 날 따라다녔다. 욕실 앞, 거실 옆, 심지어 화장실 문 앞까지.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떼지 않았다.

"너 혹시... 나 화장실 가는 거 체크하는 거냐?"

잔디는 묵묵히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요즘 섬유질 섭취가 부족해 보여. 장 트랙이 정상이 아니야. 식단 조정해야겠어.”

그 순간 나는 경악했다.
화장실에 들어간 나를 향해 잔디가 ‘변 상태 관찰 일지’를 작성하고 있는 상상을 했다.

'8월 7일 09:12 / 냄새 강함 / 긴장도 낮음 / 수분 보통 / 기분: 무표정'

나는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잔디에게 했던 게 이거였다.

똥 쌀 때마다 쳐다보고, 냄새 맡고, “잘했어~ 착하다~” 하며 손뼉 치고, 그리고 다음 산책 때 똑같은 루트로 똥 타이밍을 예측했다.

그땐 그게 관리라고 생각했다. 사랑이라고도 착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걸 당하는 입장이 되자 이건 존중이 아니라 감시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잔디가 조용히 말했다.

“이제 물 충분히 마시고, 섬유질 챙겨 먹고, 스트레칭도 잊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근데... 꼭 이렇게까지 봐야 돼?"

잔디는 짧게 대답했다.

“건강은 사생활보다 우선이야. 너도 예전에도 그랬잖아?”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조금… 미안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잔디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하루 중 가장 사적인 순간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한다며 지켜본다.
하지만 때로 그 시선은 감시가 되고, 칭찬은 조련이 되며, 관심은 통제가 된다.

돌봄과 존중은 다르다.
진짜 돌봄은, 상대가 원치 않는 순간에 시선을 거두는 것이다.



며칠간의 상상 실험이 끝났다.
나는 다시 사람이고, 잔디는 다시 내 반려견이 되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지금, 우린 다시 예전처럼 말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 침묵이 다르게 들린다. 이전엔 내가 잔디를 키운다고 생각했다.

밥을 주고, 산책을 시키고, 건강을 챙기고, 그게 책임이고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실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됐다.
잔디는 한 번도 '관리 대상'이 아니었다는 걸.

잔디는 매일 나를 보고, 기다려주고, 말없이 나의 감정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내가 힘든 날, 그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 많은 말을 했다.
“나는 네 편이야.”, “조금 쉬어도 괜찮아.”, “오늘은 네가 나보다 더 동물이네.”

세상엔 돌봄이란 이름의 통제가 많다.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던지는 조언, 배려라는 포장 속에 숨겨진 판단들.
그런 것들이 관계를 갉아먹는다.

하지만 진짜 돌봄은 말이 아니라 감응이다. 설명이 아니라 기다림이고, 지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잔디를 내가 챙겨야 할 존재로만 보지 않는다.
잔디는 나의 거울이고, 나의 속도이며,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알아채는 조용한 친구다.

우리는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매일 조금씩 감응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가장 인간다운 관계 아닐까.


그날 밤,
잔디가 내 발 옆에 조용히 몸을 기대 왔다.
나는 말없이 손을 뻗어, 잔디의 따뜻한 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바람도 멈추고, 시계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 고요 속에서, 우린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느꼈다.
말은 필요 없었다. 눈빛도, 손짓도 없이 그저 체온만으로 마음이 오갔다.
“너라는 존재 하나 덕분에, 나는 오늘도 사람답게 살아낸다.
네가 곁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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