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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투리 Apr 01. 2024

시간을 거래하는 사람들

당신의 1시간은 얼마인가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의 발걸음은 경쾌함이라기보다는 분주함에 가깝다.


저 멀리 깜박거리는 신호등을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남은 시간 15초. 횡단보도까지 건너는 거리는 50미터. 내 100m 기록은 13초. 


'아차! 계산하는데 4초나 썼네!! 일단 달려보자!'. 

오랜만에 뛴 탓에 종아리 근육이 뭉치는 기분이 들지만 시간을 줄인 자신이 뿌듯하다. 


지하철역에 들어서자마자 후반전이 시작된다. 

전광판의 지하철 접근시간에 맞춰 속도를 맞춰 계단에 내려가고 갈아타기 좋은 곳으로 미리 간다. 그래야 사람들이 몰려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빠져나갈 수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은 내 시간을 절약하도록 도와주는 AI 시스템과 같다. 덕분에 오늘은 예상시간보다 15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즉, 일이 잘 풀리는 날이다. 


커피 한 잔을 뽑아와서 잠깐 인터넷 기사들을 보며 업무시작 전 긴장을 풀어준다. 이미 지하철에 본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허겁지겁 시간을 절약해서 얻은 15분이 오늘 하루 나에게 얼마나 큰 가치였을까..?







어린 시절 회계사의 시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회계사 꿈을 포기했던 나 자신을 위로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돈을 많이 벌어도 밤늦게까지 고생하니 차라리 내 처지가 좋다는 생각이었다.


고연봉의 컨설팅회사로 이직한 동료들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억대 연봉이면 뭐 해 내 생활 없이 밤늦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하는데.. 적어도 나는 워라밸이 있잖아' 


그런데 막상 높은 연봉이 부럽기는 했다. 그래서 조금 더 연봉을 높일 수 있는 회사가 없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심지어 부업을 알아보기도 했다. 내 월급을 8시간 * 20일로 나눠 시급을 산정해서 비교해 보니 터무니없이 낮은 부업들만 나왔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이직은 두렵고 시급 낮은 미천한 일은 못 하면서 워라밸이라 일컫는 시간에 야식을 먹으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스스를 발견했다. 


'오늘은 힘든 하루였으니까 나를 위해 보상이 필요해'

'육아 때문에 바빠서'

그럴듯한 이유들이 항상 있었지만 나는 결국 내 시간을 사고 있었다.


소확행이라고 했던가. 이 시간에 행복을 느끼기도 했었지만 이마저 일상이 되면서 행복의 감정이 무뎌진 게 사실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한 워라밸은 이게 아니었다.


그렇게 새벽시간까지 허비한 나는 무거운 몸으로 다음 날 아침에 벌을 받는다.
결국 아침에 아낀 15분은 전혀 가치가 없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무거워지던 때, 나는 낭비되고 있는 내 시간들을 보며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고 이 패러다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워라밸이라는 게 어쩌면 인생에 놓인 함정은 아닐까..?' 


내 시간을 파는 게 그리 현명해 보이진 않았다. 결국 나의 노동시간만 늘리는 꼴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남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남은 시간이라도 값싸게 파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거래한다.

우리 모두 하루에 24시간을 지급받는다.

지급받은 시간의 일부를 팔아 돈을 번다.

번 돈을 모으거나 남은 시간에 쓴다.

누군가는 이 돈이 남고 누군가는 모자라다.

지급받는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 시간의 거래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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