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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r 30. 2022

K가 왔다, 북한을 보러 갔다

도문(图们) 일광산(日光山) 나들이

 긴 겨울 방학을 맞아 항주에 있던 딸 K가 연길에 왔다. 같은 중국에 있어도 코로나 때문에 2년 만에야 겨우 얼굴을 본다. 그동안 딸은 키가 2cm쯤 더 자라고 센캐 화장을 즐기는 멋쟁이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화장이 너무 진한 거 아니야? 엄만데도 딸 얼굴 알아보기가 힘들어.”

“내가 알아서 할게.”

오! 엄마의 잔소리를 부드럽고도 단호하게 끊어낸다. 이런 스킬은 또 어디서!


따뜻한 항주에서 온 딸은, 영하 20도, 살을 후벼 파는 북방의 칼바람을 견디지 못한다. 떡볶이, 순대국밥, 돼지갈비, 꿔바로우와 냉면 등 몇 군데 맛집만 택시로 후다닥 다녀오고 대부분을 따뜻한 집안에서 보낸다. 전기장판 위에서 뒹굴며 각자 하고 싶은 일을 맘껏 즐기다 보니 잠자는 시간이 점차 늦춰져 기어이, 아침 해가 밝아올 때 잠이 들고 해질 무렵에야 일어나게 되었다. 오후 4시쯤 잠이 깨자마자 다시 긴 밤이 시작되니, 헤어날 길 없는 무한한 밤의 연속이었다. 해를 못 보니 점점 온몸에 힘이 빠지고 깨어있든 자고 있든 늘 해롱해롱했다.

“자지 마! 오늘은 북한 보러 가자!”

새벽 6시, 잠자리에 드는 대신, 우리는 길을 나섰다. 연길서역에서 고속철을 타니 눈 부칠 새도 없이 15분 만에 도문북역에 도착한다. 코로나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이 없다. 마침 한한 역내로 들어오는 빨간 택시가 있어 얼른 올라탔다. “르광샨(日光山)” 행선지를 말하자, 이내 한국인인 걸 눈치챈 택시기사가 책받침 같이 생긴 자체 제작 도문관광 팸플릿을 들이밀며 도문 1일 택시투어(비용 약 4만 원)를 집요하게 권한다. 일광산에 등산만 하러 온 거라며 정중히 거절해보지만 계속되는 강권. 북한을 보기 위해 도문을 찾던 한국인 관광객이 완전히 끊긴 탓에 주요 수입원이 없어진 작은 국경 도시 도문의 곤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데크길을 10분쯤 걸어 올라가니 바로 일광산 정상이다. 일광산 정상 바위 위에 오르니 맑은 겨울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바람을 타고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저 아래, 굽이굽이 느린 모습 그대로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이 내려다보인다. 그 너머,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 언덕, 낮고 초라한 시멘트 집들, 생기 없이 한적한 시골 마을이 바로 북한 온성이다. 빽빽이 들어선 건물에, 활기 넘치는 중국 쪽과는  대조적이다. 강변 양쪽으로 험악한 철조망 울타리가 두 겹씩 쳐져 있고 북한 쪽에는 일정한 간격마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초소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그 사이를 오가는 군인들 어렴풋 보인다. 이제 그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저 아름다운 강, 그  아픈 풍경을 무덤덤히 내려다본다. 200년 전에는 이 풍경이 아니었듯,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난 200년쯤 후에는 이런 풍경이 아니기를.

너무도 가까이 보이는 북한
일광산 하산 길

우리는 눈 쌓인 계단1시간쯤 천천히 걸어 산을 내려왔다. 산 입구에 만리장성 모양 매표소를 짓고 있는 걸 보니 곧 입장료를 받으려나 보다. 무료일 때 얼른 한 번 더 와야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도문강 공원을 좀 걸었다. 원래는 도문강 즉 두만강을 배경으로 한복 입고 기념사진도 찍고 두만강 풍경을 즐기며 산책도 하 곳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지 건너편을 볼 수 없도록 철판으로 다 막아 놓았다. 점심으로 낙지정식을 먹었다.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던 식당인 듯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가격은 너무 비쌌다. 소박한 시내를 좀 구경하다가 오후 4시 기차를 타고 다시 연길로 돌아왔다. “북한을 왜 봐?” 반문하던 딸이 돌아오는 기차에서, “엄마, 북한 보러 오기 잘한 것 같아.” 했다. 햇볕을 맘껏 쬔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밤, 깊은 잠이 들었다.


도문 시내, 물음표를 써 놓은 재미있는 간판
소박한 도문 시내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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