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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Jul 17. 2022

역사의 빛, 명동촌을 가다

고만녜와 윤동주

별하나에 동경과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1899년 겨울, 고만녜의 가족들은 고향 함경북도 회령을 떠나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넌다.


첫째 딸 노랑녜, 둘째 딸 귀복례, 셋째 딸 곱단이, 넷째 맏아들 진묵, 다섯째 딸이 바로, 딸은 고만 낳자고 이름 지은 고만녜, 여섯째는 어린아, 일곱째는 또 딸이라 내던졌다고 데진녜, 여덟째 아들은 진국, 아홉째 막내아들은 진용, 이렇게 아들 셋에 딸 여섯, 호랑이 같이 무서운 아버지와 살림꾼 어머니, 총 11명의 식구가, 서서 오줌을 누면 오줌 줄기가 그대로 얼어 기둥이 될 정도로 추운 북간도 명동촌에 정착한다.



여자아이라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열네 살 고만녜는, 아버지 몰래 일곱 살짜리 동생에게서 한글을 배우며 '여학생'이 되어 맘껏  읽을 날을 꾼다. 하지만 당시의 관습을 따라 겨우 열일곱 살 나이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힘든 시집살이 와중에,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마침 명촌에 새로 생긴 명동여자소학교를 다니게 된 고만녜. 그녀가 학교를 다닌 것은 그녀 평생 이때, 겨우 3년이었지만 그 이후로 그녀의 삶이, 앞으로 그녀가 낳을 자식들, 손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의 삶까지 영원히 달라지게 된다. 빛이, 축복과 거룩함이 스며들게 된다.


오늘, 학교 동료들과 연길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용정 명동촌을 다녀왔다. 윤동주 생가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진다. 문이 잠겨 있어 전화했더니 근처에 살고 있던 관리인이 와서 문을 열어준다. 조선족인 그는 보기 드물게 친절하고 우호적이다. 코로나 시국에 방문자가 없어 평소에는 닫아놓고 있다고 다. 입장료는 1인당 30元(약 6,000원).  


윤동주를 '중국조선족애국시인'으로 새겨놓았다


우산을 쓰고 곳곳의 바위, 구조물 등에 새겨진 윤동주의 시들을 꼼꼼 읽다. 하루 종일 그렇게 '요란하게' 공부해도 '짹' 한 자 밖에 못 배우는 마당의 참새, 달 밝은 밤에 나와 비밀 이야기 나누는 귀뚜라미, 나무가 없으면 바람도 없다는 깨달음, 문득 마음이 환해진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윤동주, 잘 몰랐던 그의 동시도 '서시' 만큼이나 좋다.

 


고만녜 집을 생각하며 생가 안 꼼꼼히 살다. 과연, 책에 나온 북간도의 무시무시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 외양간, 정주간(부엌 겸 거실), 모든 방들이 한데 붙어있다. 장남 동주의 방은 어디였을까, 고요하면서도 빛이 잘 드는 저기 맨 끝 방이 아니었을까.


너무 추워서 소와 닭도 실내에서 키운다
동주의 방은 어디였을까


동주의 집을 나와 건너편 송몽규의 집을 들여다 후 마을 입구의 명동학교를 방문한다. 관광지로 조성중인 듯 몇 년째 요란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명동촌 입구에는 '중국조선족교육 제1촌'이라고 쓰여있다. 명동학교 옛터 기념관 측면에는 뜬금없이 거대한 석류 조형물과 함께 '各民族要像石榴籽一样紧紧抱在一起(각 민족이 석류알처럼 서로 꼭 보듬으며 함께하자)'라는 선전 구호가 쓰여있다. 마침, 관공서 연수단인 듯 보이는 한 무리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그 거대 석류 앞에서 '여러 민족이 단합하여 위대한 중국의 꿈을 이루자'는 가이드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윤동주 생가 앞, 여러 민족이 단합하여 형제의 정을 다지자는 선전물
명동촌 일대를 '중국민족단합교육' 을 위한 선전용 관광지로 탈바꿈 하는 공사 중
명동학교의 설립자, 윤동주의 외삼촌이기도 한 김약연의 동상


광복을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 독립운동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채 이름 모를 주사를 맞던 윤동주가 순절한다. 이때 그의 나이 29세. 동주가 의학이나 법학이 아닌, 문학 공부하는 것을 그렇게 반대던 아버지 윤영석. 그는 당시 용정동산교회당묘지에 윤동주의 시해를 안장하고 윤동주가 살아생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시인'이란 호칭을 넣어 '시인 윤동주'라고 쓴 비석을 손수 아들의 묘에 세운다. 시를 쓰기 위해 태어난 동주, 그가 아버지 뜻대로 의사가 되었다면 그의 젊은 죽음이 이리 슬프지 않았을까.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


소설가 김승옥이 그린 '윤동주 묘소'


《고만녜, 백 년 전 북간도 이야기》 의 최대 반전과 감동은 '문영미'라는 저자의 이름 속에 있다. 이 책의 주인공 고만녜, 김신묵 할머니는 실존인물로 이후, 야학을 열고, 독립선언 시위에 참여하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양심수 석방을 외치며 거리에 나서는 '빛나는' 여성이 된다. 무엇보다 그녀 문익환, 문동환 목사의 어머니이 이 그림책의 저자, 문영미의 할머니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성경과 신문을 노래 부르듯 흥얼흥얼 매일 정성스럽게 읽던 할머니를 보고 자란 작가가 할머니의 북간도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이렇게 깊은 감동의 빛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매년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100여 년 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에 살았던 북간도 이주민들의 생활모습을 알려주기도 하고 '미디어문해력'을 가르치며 자신의 운명까지 바꾸는 '문해력'과 '참된 배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기도 한다.


이상주의 진보지식인 집단이 용감하게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에서 일군, '동쪽을 밝힌다'는 뜻의 명동촌. 안중근 의사가 머물 사격 연습을 하던 곳, 윤동주와 송몽규가 태어나고 시인과 열사로 자라난 곳. 고만녜 할머니가 윤동주의 절친이자 의로운 종교인의 표상, 문익환 목사를 낳고 기른 곳, 그리움과 난, 그리고 은혜의 땅. 그곳에서 흘러나와 아직도 우리를 잔잔히 밝히고 있는 그 빛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어떤 조작, 정치적 이용과 선전구호, 고통 죽음 속도 그 인간적이고 진실한 빛은 사그라들지 않고 면면히 이어질 것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연길로 돌아오는 길. 어느덧 하늘 맑게 개이고 사방에 펼쳐진 낮은 둔의 연둣빛이 더욱 선명다.




*참고자료

-문영미 글, 김진화 그림,《고만녜, 백 년 전 북간도 이야기》, 보림출판사, 2012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도서출판 소와다리, 2022(1955년 증보판)

-민윤기 편집, 《윤동주, 살아있다》, 스타북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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