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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ug 05. 2022

여행의 기쁨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

열흘간의 야매 실크로드 여행을 끝내고 북경에서 환승, 드디어 연길 공항에 도착했다.


맑은 하늘의 선명한 노을, 선선한 저녁 바람, 한글이 적혀있는 작고 정겨운 공항, 무엇보다 이곳에선 여행 내내 (실크로드 여행을 간 건지 코로나 핵산검사 여행을 간 건지 헤갈릴 정도로) 우리를 괴롭히던, 핵산검사 바코드 없는 설움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연길 거주민인 우리에게는 길림성 핵산검사 바코드 '길상마' 가 있다! 이것만 삑- 찍으면 연길 어디든 쫄지 않고 당당히 들어갈 수 있다. 공항에서 길상마만 제시하고 핵산검사를 받는데 새삼 어찌나 편하던지!


"연길 가로등이 저렇게 이뻤었나!"

"우와, 저기 해지는 하늘 좀 보세요. 명사산 꼭대기에서 월아천 사이로 본 것보다 더 예쁜데요!"

"우리 연길은 어쩜 이렇게 시원할까! 판, 밤에도 41도가 말이 되냐고? 우리 거기는 대체 갔던 거임?"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여행 파트너 H 선생님과, 무사히 다시 돌아온 우리 동네 연길 자랑을 부지런히 나누었다.


요런 센스쟁이! 짝퉁 간판 마저 반가운 연길 공항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모두 연다. 열흘간 굶주렸을 화분들에 물을 듬뿍 준다. 이파리가 좀 말라 있긴 하지만 녀석들, 용케 버텼다. 트렁크 속 빨래들을 모두 꺼내어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이런저런 염려로 티셔츠를 8장쯤 챙겼는데 실제 입은 건 단 2장, 평소 즐겨 입던 편한 티셔츠만 손빨래하며 번갈아 입었을 뿐이다. 양말, 속옷도 그렇게 많이 챙길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제일 좋아하는 것, 제일 편한 것만 손빨래하며 번갈아 신고 입을 거니 여분 1개씩만 더 챙기면 되는 거였다. 일교차가 크다는 사막이나 만년설산 천산에서 얼어 죽을까 봐, (그나마 경량 오리털을 기에 망정이지!) 긴팔 점퍼 두 개, 긴 팔 티셔도 두 개나 챙겼는데 사막 한가운데, 눈 덮인 정상에서 야영하는 게 아니라 시내 호텔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자는 거니 바람막이 점퍼 하나만 챙겨도 되는 거였다. 사실 점퍼조차 필요 없었다. 이곳은 북반구 한여름, 더워서 문제지, 그다지 추운 곳, 서늘한 곳도 없었다. 팔 토시와 창 넓은 모자로 강한 햇볕만 차단하면 되는 거였다. 지나친 염려와 강한 자기애로, 한번 펴보지도 않고 '예쁘게 개어 넣은 그대로' 열흘 내내 끌고 다니다 '예쁘게 개어 넣은 그대로' 가져온 옷들을 생각하니 정말, 고개가 도리도리. 출발할 때부터 벌써 짐가방이 꽉 차 있어 투르판의 그 싸고 달콤한 건포도 한 봉지, 둔황 특산물 살구차 한 봉지를 못 사 왔다.


여행자는 어리버리하고 준비 역시 허술했지만 대체로 순조로운 여행이었다. 몇 년간의 중국 생활 경험으로, '폰과 여권만 안 잃어버리고 돌아오면 성공이다' 애초부터 여행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다. 중국 내 갑작스런 코로나 확진자 증가로 서안과 란주가 막히자, 돌연 선택하게 된 우루무치와 투르판 다. 나쁘지 않았다. 물론 당황스럽고 속상한 일도 있었다.


투르판에서 고속철을 타고 둔황으로 내려가는 길. 웬일인지 기차는 둔황에서 130km 정도 떨어진 유원까지만 연결되어 있었다. 유원에서 둔황으로 가는 버스나 완행 기차를 검색해도 별 다른 정보가 없었다. 유원 기차역에서 1시간쯤 기다려 핵산검사를 받고 역빠져나오는데, 웬 아줌마 아저씨들이 우 향해 긴급하게 손짓하며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댔다. 또 뭘 잘못한 건가, 잔뜩 쫄아서 역 밖을 나오니 그들이 바로 유원 역에서 둔황까지 택시를 운행하는 기사들이었다. 관광객이 다 빠져나가고 오늘 일당은 종친 건가 낙심하고 있을 때, 딱 봐도 둔황행으로 보이는 관광객 두 명이 나타나니 필사적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격 협상은 없었다. 시장가 자체가 240(4만 8천 원 정도), 새로 생긴 유원-둔황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쯤 달린단다. 택시 타고 빠르고 편하게 가겠구나, 내심 좋아했는데, 웬걸. 잘 달리던 택시가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나타나자 갑자기 샛길로 빠지더니, 고속도로와 나란히 나 있는 자갈밭 황무지 길을 마구 달리는 게 아닌가.


고속도로를 옆에 두고 이런 길을 계속 달린다, 사고라도 나면 누가 우리를 구하러 올까

온몸에 불쾌한 진동이 전해지고, 핸드폰 데이터 안 터지고, 사방에는 먼지 나는 황토뿐, 타이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불안한 상황. 그 위급한(?) 와중에도 택시 기사 아줌마의 핸드폰은 잘만 터져 다음번 고객과 통화하느라 운전 중임에도 운전에 집중하지 않는 상황. 그렇게 현장법사가 지나갔을 법한 죽음의 황무지 길을 40분쯤 맹렬하게 리던 택시는 톨게이트가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올라왔다. 톨게이트비가 대체 얼마 길래, 이렇게 안전을 담보로 사람을 속이는 건지. 더 웃긴 건 별 일 없이 제시간에 둔황에 잘 도착했다는 거다. 택시 안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지나고 나니 그저, 픽, 실소 거리다.


맨 앞 빨간 원피스 입으신 분이 가이드


둔황 막고굴은 문화재 훼손 방지를 위해 가이드가 직접 데리고 다니며 굴 하나씩을 조심스레 보여주고 설명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우리는 막고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추가 비용을 내고 '한국어 가이드'를 선택했다. 점심을 먹으러 갔는지, 1시간 후에야 나타난 '한국어 가이드'. 조선족이냐고 물으니 한족이란다. 어떻게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냐니까 연길에 있는 연변대학교를 다녔단다. 자신의 한국어 실력이 변변치 않으니 몇 번 굴에서만은 중국어로 설명해도 되겠냐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 그 후로 중국어 설명보다 더 어려운 한국어 설명이 시작된다.


둔황 박물관, 45번 특별굴 모사 전시물, 저 굴을 실제로 보려면 입장료와 별도로 4만원을 더 내야한다.

-도둑이가 용꽃 금 떼갔어요. (도둑이 연꽃의 금을 떼어요)

-색깔이 달아졌어요. (색깔이 달라졌어요)

-비천상, 잉어 잉어  모양이에요. (비천상, 영어 V 모양)

-수복도에요. (설법도예요)

-사타리, 여기 묻었어요. (부처님 사리가 아닌, 공사용 사다리를 여기에다 고정시켰다는)

-태적캄 조카 그림 그렸어요. (퇴적암을 조각한 후 그림을 그렸다는)


물론 이 분이 둔황에서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세계적인 관광지 둔황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올 텐데 가이드의 한국어 실력은 다소 아쉬웠다. 지나고 나니 이 일도 역시, 실소 거리다.


만년설산, 수천 년 전의 미라, 막고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성, 사막 낙타, 포도밭, 백양나무들, 많은 낯설고 신기하고 멋진 것들을 보았다. 이라도 꾼 듯 어느새 기억 가물가물. 아무렴, 집이 최고다. 오늘은 어디서 무얼 먹을까, 어디서 잘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 표를 지 않아도, 바가지와 속임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 라면도 끓여 먹고 커피도 내려 마시고, 두리번거리지 않고 언제든 똥도 쌀 수 있는 곳. 무엇보다 코로나 검사 바코드가 필요 없는 곳.


역시 여행의 기쁨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있다. 리프레쉬된 눈으로 내 일상을 다시 체험하는 데 있다.


오늘부터 일상 탐험, 우리 집, 우리 동네 여행시작하련다. 집에서 5분 거리, 우리 동네 맛집 '화매'여름 별미 콩국수 맛보는 것부터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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