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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r 16. 2022

족공만두(足工饺子)

연길에서 외로울 땐

 어느 날, 눈을 떴는데 갑자기 만두가 빚고 싶었다.

한국에서 주부로 살 때도 한 번 빚어본 적 없는 만두.

중국인들이 새해를 맞을 때 가족과 함께 빚어 먹는 만두.

어릴 적, 엄마가 부침개와 카스테라는 자주 만들어주셨어도 만두는 한 번도 해 주신 적 없기에 어떻게 빚는지도 모르는 만두.

‘아가야, 만두가 먹고 싶구나. 난 파는 만두피는 안 먹는다.’ 일일드라마 속 시할머니가 말하면, 효성 깊은 손자며느리가  우두커니 앉아 하루 종일 빚곤 하던 만두.

혼자 이 먼 연길까지 와서, 먹을 사람이 있는 것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저 나를 위해 빚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은, 개떡인지 만두인지 헷갈리는 주물럭을 만들어놓고, 혼자 너무 흡족한 나머지 시까지 지었다. 제목은, 수공만두(手工饺子) 아닌,  발로 빚은 것 같은, 족공만두(足工饺子)


족공만두(足工饺子)

외로울 땐 만두를 빚으세요.
자고 일어나 눈곱 낀 그대로 팬티만 입고서
신나는 음악 크게 틀고 엉덩이춤 추면서 만두를 빚으세요.
심심할 때, 아무데도 갈 곳 없을 땐 만두를 빚으세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해주지 않고
두려움과 걱정으로 마음이 힘들 때
돼지고기, 두부, 숙주 맘대로 넣고 슥슥비벼
밀가루 반죽 둥굴둥글 뭉쳐 텅텅 던지고
대충대충 속을 넣어 설렁설렁 주머니를 닫기만 하면 됩니다.
맛 없어도 됩니다. 발로 빚어도 됩니다.
어차피 내가 만들어 내가 다 먹을 거니까요.
외로울 땐 만두를 빚으세요.
부질없는 고뇌가 유용한 한 끼 식사로 빚어집니다.
여전히 가진 게 없어도, 많은 걸 잃었어도
못난이 만두를 즐겁게 빚을 수 있는 나 자신만은 아직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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