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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r 23. 2022

봉쇄 중이지만 잘 지냅니다

카뮈의 《페스트》를 읽으며

 새벽 5시,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다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이곳은 밤이 빨리 오는 지역이라 사람들이 한국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커튼을 열어 밖을 보니, 아무래도 평소보다 불 켜진 집이 적다.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거나 새벽시장에 가는 대신 잠을 더 푹 자게 된 것이겠지.

 연길시 전면 봉쇄, 오늘로 2주째다. 어제는 6번째 지역구 핵산 검사를 받았다. 길림시, 장춘시 등 길림성 전체에 갑자기 천여 명에 달하는 코로나 감염 환자가 발생하자, 지난 3월 10일부터 연길시도 부랴부랴 봉쇄에 들어간 것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봉쇄가 시작되기 전날 밤 9시경, ‘내일부터 연길시 모든 학교의 대면수업은 원격수업으로 전환되고 학교 출입은 금지될 예정이니, 학교의 모든 교원과 학생들은 내일 아침 6:00~6:30 사이 원격수업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챙겨나가라’는 긴급 문자를 받았다. 길에는 택시도 버스도 다니지 않고, 통행 허가를 받은 필수 차량만 다닌다. 식당, 백화점, 대형슈퍼 등 모든 공공장소는 문을 닫았고 아파트 앞 소규모 편의점과 약국만 문을 열었는데, 자신의 집 호수에 해당하는 홀/짝 일에, 출입증을 지참한 세대 당 한 사람만 식료품 구입을 위해 나갈 수 있다. 배달음식도 없고, 택배도 없다. 이미 주문한 택배들은 모두 자동 취소되었고 타오바오 등 인터넷 주문도 사이트 내에서 사전 차단된다.



 ‘발각 시 책임을 엄중 묻겠다’는 정부의 엄포 한 마디에 이 많은 사람들이 반대나, 원망, 꼼수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협조한다. 며칠 전에는 핵산 검사를 받고 아파트 출입문 관리가 잠시 허술한 사이, 산책이나 좀 할까 하고 텅 빈 거리를 혼자 걷다가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건강 바코드와 출입증을 보여 달라 길래 없다고 하니, 왔던 길로 당장 돌아가라고 했다. (이런 위반이 두 번 반복될 경우 구류처분된다는  나중에야 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소한 실수가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실감했다. 또 지난 일요일에는 자가격리 상태에서 아파트 단지 전체가 단수되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집안에 틀어박혀 무얼 하며 지낼까.

 나는 잦은 외식과 타오바오, 운동 강박에서 잠시 벗어났다. 지난번보다 더 못생긴 족공만두(足工饺子)를 한 차례 더 만들었고, 호박죽도 처음으로 시도해 보았다. 거울 앞에서 혼자 ‘코카인 댄스’를 추고는 신나게 웃기도 했다.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 앞에서 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년 동안이나 늘, 읽어야지 생각만 했던, 카뮈의 ‘페스트’를 읽기 시작했다.  책은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왔다는 듯,  무심하고 다정한 문장들을 천천히 펼쳐 보인다.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겸손할 줄을 몰랐던 것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54~55쪽)


 그때부터 페스트는 우리들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시의 문들이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 같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에 그냥 적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93쪽)


나가서 누릴 수 없는 따뜻한 봄날이 어느덧 창밖에서 시작되고 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민음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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