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천우 Sep 15. 2022

긴 밤, 답 없는 물음만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를 읽다

나카지마는 오른손을 쭉 뻗어 권총을 내 머리에 겨눴다. 나는 눈을 감았다. 요란하게 끓고 있는 주전자 소리. 그 소리 뒤로 멀리 들려오는 바람과 구름의 노래. 이젠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어떤 신뢰도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밤과 낮이 서로 자리를 바꾸듯이. (90쪽)


20대 때, 제목과 표지가 멋져 무심코 읽었던 소설. 40대가 되어 소설 속 배경인 북간도에 살고 있는 지금, 이 책을 '운명처럼' 다시 만났다. 


공간적 현실감을 얻은 소설 속 문장들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십자가로 연결되는 영국더기 언덕, 해란강변 둑방길 아홉 번째 버드나무의 강 쪽으로 뻗은 굵은 가지, 윤동주 묘소 근처, 넓게 펼쳐진 옥수수밭 느긋한 잠자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연변에서 이 소설을 썼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연변, 간도(사잇섬), 동만 등 이름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가 복잡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도는 공식적으로는 중국의 영토였으나, 내용적으로는 조선인들이 개척한 땅이었다. 인구의 구성을 봐도 조선인이 전체 인구의 80퍼센트 정도였으며, 교통이나 경제 활동도 만주의 다른 지역보다는 조선과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327쪽, 해제)


조선인들이 저 두만강을 건너와 간도를 개척했다. 강 건너, 오른쪽에 조선인 부락 삼둔자촌이 보인다


... 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조선 사람들이었다. 길가에 앉은 구두장이, 콩물 장수, 오이장수, 호박장수, 산살구장수 등도 모두 조선 사람들이었다... 길을 걸어가면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대개 조선말이었고, 그 사이사이 빈틈을 메우듯 중국말과 일본말이 비집고 들어왔다...(289-290쪽)


소설 속 주인공, 김해연을 따라, 나도 100여 년 전 용정 거리로 소환된다. 그리고 소설 속 깊숙이 감춰졌다가, 소설의 클레이맥스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네 명의 서글픈 청춘들을 만난다. "우리들은 천국에 가지 않겠다"를 과감히 외치며 반종교,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중학생들, 청춘의 희망을 품고 조국의 독립과 혁명을 꿈꾸었던 그들. 결국, 천국은 커녕 '잔혹한 식민지 현실'이라는 지옥을 나뒹굴며 민생단, 일제 앞잡이, 창녀, 배신자, 미치광이 살인자가 되어 . 그렇게 '500여 명의 혁명가가 적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죽어간' '민생단 사건'이, 역사 교과서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그 참혹한 밤의 노래가 펼쳐진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프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 비극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인간 본연의 어리석음 때문일까, 아니면 일본과 중국 사이, 민족의 독립과 공산주의 혁명 사이에 낀 조선의 현실 때문이었을까?


조선독립을 위해서는 먼저 중국 혁명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박도만도 맞고 조선의 독립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민족주의 공산주의자 박길룡도 맞다. '경술년 망한 나라 소생'으로 독립이나 혁명에는 일말의 관심 없이 하이네의 시와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만을 갈구했던 김해연도 맞다. 하지만 틀린 사람도 악인도 없 모두가 처벌받는다. 당시, 간도에 살던 조선인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빼앗기고 남의 땅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꿀 수밖에 없다...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은 죽지 않는 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존재... 그들은 경계에 서 있었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민생단도 되고 혁명가도 될 수 있었다. (247,248쪽)


한국어를 쓰고 한국어로 사고하며 40여 년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한국인으로 살아온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 본다. 이를테면, 지금의 신장 위구르족 같은, 명백히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와 역사, 문화도 그토록 다르건만 중국이라는 생소한 나라를 조국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거기다 무고한 차별과 멸시,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상황이라면. 도무지 삶에 닻을 내릴 수 없는, 스스로의 존재를 혐오하게 되는 그 경계인, 잉여인의 고통이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초모정자산에서 내려다본 실제 봉오동 전투 지역, 고려둔, 후안촌, 봉오동 하촌, 중촌, 상촌 등 곳곳에 조선인 부락이 있었다. 저 풍경이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 조선인들의 피로 물들었던 이곳, 연변의 산천이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 김치 먹고, 한국 TV 프로그램 '6시 내 고향'을 즐겨보며, 연변어(한국어)로 가족들과 소통하지만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조선족 동료들을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세계가 그 열망을 도와준다고 믿는다'고 '단, 온 세계가 그 열망을 도와줄 때까지 계속 간절히 원해야만' 한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간절히 열망해야, 15년 후에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가슴 먹먹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일까. 흰 종이에 쓴 까만 문장만으로, 어쩜 이렇게 생생하고 서정적이면서도 비극적이고 처연한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일까. 소설가는 참, 멋지다, 소느님.


세상이 이토록 잔인한데, 과연 인간에게 무슨 힘이 남아있는 것일까요?(234쪽)


인간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단지,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 시스템의 문제일까? 결국은, 고통과 비극의 의미와 목적을 묻지 말고 그저 받아들여만 하는 게 인간의 숙명적 조건인 걸까? 빛과 어둠, 거짓과 진실의 경계는 어디인 걸까?


 북간도의 긴 밤, 답 없는 물음만 오래도록 맴돈다.




*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문학과 지성사, 2008.


이전 22화 봉쇄 중이지만 굶지 않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